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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Jul 01. 2024

코르닐리아 400계단 내리닫기

코르닐리아 기차역으로

 코르닐리아(Corniglia)에서 하염없이 지중해를 조망하다 문득 해가 바다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눈치챘다. 

 지중해 테라스 마을, 코르닐리아에 일몰이 몰아닥친다. 

 천혜의 요새처럼, 키높은 나무에 동그랗게 놓여진 새둥지처럼 자리한 마을. 

 이제 아쉽지만 다음 마을인 마나롤라(Manarola)를 거쳐 마지막 행선지인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로 향해야 할 시간. 


 그리고 잠시 고민의 시간이 엄습했다. 

 마나롤라를 거쳐 리오마지오레까지 다시 트레킹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차를 탈 것인가. 

 친퀘테레 도착한 첫날 이미 마나롤라에서 엽서 그림 같은 일몰에 취했던 터라, 마나롤라는 스킵하고 바로 리오마지레로 가야하는데 두 마을을 트레킹으로 섭렵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는 직감이 오싹하다. 

 해가 뉘엿뉘엿지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간이 이미 많이 늦은 터. 체력도 체력이지만, 해가 지고 나면 처음 걷는 길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수도, 산속 어딘가에서 미아가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무엇보다 어둑어둑해지면 이내 깜깜해지는 산속의 어두움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가로등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도 없다. 하여 다시 친퀘테레 낭만 기차에 오르기로 신속히 결정.




 기차 시간을 감안해서, 그리고 다른 마을들 중심에서 기차역까지의 경험을 살려 넉넉잡아 20분이면 되겠지 하며 코르닐리아 마을 어귀에서 로제나 한잔할까, 맥주를 시원하게 한 잔 할까 낭만 고민에 잠시 빠져있었다. 저녁 식사 때 좋은 이탈리아 와인을 한 병 비우는 것으로 타협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아뿔싸.

 까마득히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이 마을이 천혜의 요새같은 테라스 마을이라는 점. 마을 중심에서 기차역까지는  400개 가까이 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했던 것. 


 오늘 트레킹 코스는 모두 마감!이라고 선언한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트레킹 시작!모드로 급 전환됐다. 트레킹의 정의에 충실한 걸음걸음은 아니나, 이미 5km 이상을 그것도 산길 구비구비 걸어온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다. 또 내리막이라 그것도 연이은 400개 가까이 되는 계단이라니. 계단폭도 넓어서 이것을 한번에 넘어야 할지 두 번 나눠야할지 애매한 보폭. 천근만근인 다리가 만근억근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래도 지중해를 바로 옆에 두고 내리닫는 길이 영 멋없는 길은 아니라 또 천만다행이다. 눈은 즐겁지만 다리는 힘겹다. 이 불협화음이 언제쯤 끝이 날까. 큰 욕조에 받은 따뜻한 물에 들어 앉은 것 처럼 온몸이 조화로운 지경에 빨리 다다르고 싶다.



마을과는 멀어지지만, 바다와는 점점 가까워진다.

 

문득 생각한다. 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너무나 상식적인데 너무나 상식적인 그 진리를 또 이 시간에는 바로 적용하지 못했다. 알면 모하리. 지식은 늘 뇌에 어디 숨어 지식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지식은 남처럼 저편에 계시다 코앞에 닥치면 그때서야 체감이라는 순간 접착제로 척 달라붙는다. 인간 모두가 겪는 일을 다 남의 일처럼 치부하다 인생 마지막에서야 공감하게 되거나, 남의 부모님 장례식에는 그렇게 다녀도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은 코앞에서야 아니 닥쳐야 아는 우매한 인간인 것을. 


 오를 때는 마냥 올라갈거 같기만 하고, 정상에 있을 때는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그 정상에 계속 있을 것만 같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는 법. 일이 잘 될 때는 마냥 잘 되기만 할 것 같고, 으쓱하고 자기 쓰담쓰담 모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건강검진 포르포폴 맞은 것 처럼, 순간 상식/지식 망각 모드에 빠져, 이내 오만하고 무례해진다. 그러다, 또 잘 안될 때는 하염없이 지옥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을.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회전목마처럼 반복되어 신물나도록 보고 들은 상식을 왜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지.  


 '하여 일이 잘 될 때, 오만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 길로 가서는 안되며 문을 열고 싶더라도 아니 열었더라도 이내 닫고 돌아서서 제 길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인간 모든 역사가 모두 밋밋한 숭늉맛이었겠지. 더 어려운 것은 기쁜 일을 기쁘게 온전히 누리지도 못하면서, 이내 오만의 길에 빠져 헤어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 기쁨을 기쁨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온전히 경험하는 것도 어찌보면 아주 어렵다. 기쁨의 순간에 또 걱정이 앞서고, 슬픔의 순간에 마음은 딴 곳을 향햐는 것을 눈치챈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오만하지 않으면서 기쁜 것은 기쁘게 충분히 누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일까. 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집 나간 망아지처럼 한 곳에 붙들어 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코르닐리아 기차역에 들어섰다. 

 기차 시간을 확인했지만 아직 40분여분 이상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친퀘테레 기차는 마을의 모양새 대로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대로 모두 '안단테 안단테'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는 기차. 이탈리아 시간에 맞춰진 지역 시간은 정시에 운행하는 기차가 없을 지경이다. 이탈리아 시간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고무줄 같기도 하다. 제 시간에 오는 기차를 단 한대도 본적이 없을 지경이다. 그냥 오려니 하면 그 때서야 플랫폼에 철판을 깐 기차가 뻔뻔하게 나타나신다. 어쩌면 지극히 인간다운 이탈리아 문화. 휴머니즘이 나라 문화에 깊게 올리브 오일처럼 끈적인다. 


 별수 없이 다시 역을 서성이다, 주변 탐험 모드로 다시 진입. 

 ('호기심 천국'인 나로서는 일분 일초라도 시간이 나면, 늘 탐색 모드로 즉시 진입한다) 

 문득 기차역 주변 긴 산책길을 발견하고 주변을 서성인다. 

 오늘은 끈임없이 걷게 될 운명인가 보다. 

 



코르닐리아 마을 집들이 입고 있던 파스텔톤이 이제 바다에 걸렸다. 

이내 손에 묻은 분필처럼, 털어도 털어도 온몸에 파스텔톤 흔적이 묻어난다.

친퀘테레가 '나'이자 내가 '친퀘테레'다.


저 멀리서 다음역으로 향하는 기차가 플랫폼으로 치닫는다. 

이제 친퀘테레 마지막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노을과 일몰을 입은 기차가 또 다음 마을을 향해 힘차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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