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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Jul 06. 2024

Oh 나의 아이폰 - 리오마지오레 일몰의 저편에

 일몰의 해를 가득 실은 기차가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 기차역으로 도착한다.

 마나롤라(Manrola)에서 잠시 내려 엽서 같은 일몰을 다시 느낄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그 역을 못내 지나치고 바로 리오마지오레 역으로 내리 도착. 그래도 몇 분 밖에 되지 않는 여정.


 기차길에 멈춰선 듯 이미 어둠이 내리는 선로 위에 정차하는 기차. 두리번 두리번 해보지만 기차문은 이내 열리고, 사람들은 연신 기차를 재빠르게 빠져 나간다. 잠결에 홀린 듯 사람들을 따라 내려, 플랫폼 인듯 아닌 듯한 플랫폼을 빠져 나왔다.



  몬테로소 알 마레에서 시작하여 리오마지오레로 차례차례 5개 마을을 건너오거나, 혹은 그 반대로의 여정이 일반적이라고 했는데,  그냥 깔끔히 무시하고 우선 마나롤라의 일몰에서 시작하여 몬테로소 알 마레에서 예정에 없던 트레킹으로 급전환된 일정이 이제 마무리될 시점에 이르렀다. 이런 여정도, 트레킹도 우발적인 행위였지만, 오히려 시계추처럼 짜여진 회사생활과 그에 맞추어진 개인생활에 길들여져 있던 꼰대같은 일상이 파헤쳐진 것 같아 오히려 감사함이 몰려온다. 이제 그렇게 낱낱이 파헤쳐진 처절한 일상이 내 하루하루가 될 날이 언젠가는 닥칠 것이고,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애써 그려가는 숙제가 산더미 같을 날들이 뻔히 예견되는 터라, 이제 그런 시간의 무한함을 채울 채비를 서서히 해야한다는 직관이 등 뒤의 식은땀처럼 내린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시점. 리오마지오레를 검색하면 대문짝만하게 늘 검색되던 또 다른 엽서 그림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런 '엽서 대조여행'도 오늘로서 끝이리라하며, 수수께끼 풀듯이, 미로 안을 헤집고 다니듯이 길을 찾아나서야 하지만. 또 그렇게 정해진 루트가 아닌 발길 닿는 대로, 기분이 내키는 대로, 정처없이 눈이 향하는 아니 발이 향하는 곳으로 우선 마구 내딛기 시작했다.


친퀘테레의 또 다른 보석 리오마지오레, (보석의 종류도 많으므로 친퀘테레 마을은 모두 보석의 종류의 하나로 칭하겠다. 내 마음대로 ~~),


그곳에서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또 다른 풍경을 상상한다.

고요한 바다와 다채로운 집들이 어우러진,

예술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밤이 내린 리오마지오레 포구.

아담한 사이즈에 또 더 정감이 간다.



여기 저기 아이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마을을 정처없이 떠돈다.






해가 저물어가는 그 시간,

엽서 속 풍경을 찾아 나선 나는,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고,

낯선 길을 헤매다 작은 포구를 만났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 포구에서,

바다로 스며드는 어둠과 아련한 빛을 바라보고,

다시 포구가 내려다 보이는 아담한 절벽에 올라,

아이폰을 꺼내 순간을 담으려 했지만,


    그 순간, 아이폰은 무중력 상태로 무심히 떠올랐다.

공중을 가르는 그 짧은 찰나,

절벽이 삶의 터전인 나무 덩굴에 아슬아슬 걸린 아이폰,

내 손이 닿지 않는 그 곳에서,

뻐꾸기가 놓은 알처럼 살포시 자리잡았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으나,


그 순간 낙뢰맞은 듯 번쩍이는 지혜가 엄습한다.

동공이 커지며, 헬퍼를 애타게 갈구하는 간절함이 용솟음친다.


근처 바에서 맥주를 마시던 두 주민을 레이더에 포착.


    '착해 보인다!'
        아니, 착해야만 한다.

용기를 낼 틈도 없이 도움을 청하고,


역시 이탈리아 감성으로 무장한 그들은 흔쾌히 도와주신단다.

    씨 씨 씨. (Si, Si, Si = Yes, Yes, Yes)


간단하지만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어깨에 맨 내 가방을 던져 아이폰을 떨어뜨리고,

두 주민이 외투를 펼쳐 기다리는 무난한 작전,


심장이 터져나올 것 처럼 쿵쾅거렸지만,

내뜸 가방을 내던졌고,

아이폰은 덩굴에서 떨어졌다.


Oh Oh Oh


그러나,

아....

외투에 닿아 한 번 더 튀어 오른 아이폰.


순간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매트릭스 총알 피하기 장면이 오버랩된다.


하얗게 빈 머리가 더 하예진다.


너무 간단한 계획이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이탈리아 주민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을까.


바닥에 떨어질 듯한 순간,

이내 어디론가 사라진 아이폰.


이탈리아 감성으로 무장한 주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비바체 비바체

    공중부양했다, 냅다 다시 내던져진 내 소중한 아이폰을

안단테 안단테로

주변 어두움에서 구출하듯이 건져내어,  

1000배 커진 동공으로 아래를 샅샅이 뒤지던 나에게

쉬크하게 흔들어 보인다.

(그 사이 나는 100살은 늙은 것 같다.)


그의 해맑은 웃음이 불안하다.


폭풍우 속 항구에 도착한 것 같은 그 기분,

리오마지오레에서의 아찔했던 순간,

머리는 산발, 동공은 너덜너덜.


건네받은 아이폰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겠다.


몇십년 만에 다시 상봉한 이산가족 만나듯이

애틋하게 조용히 쓰담쓰담.

다친데는 없는지 사지는 성한지 살피고 또 살핀다.


껴져있던 화면이 켜지는 순간.


Oh Oh Oh


화면이 보인다.

사진도 그대로다.

리오마지오레의 기적,

홍해를 가르는 기적 따위는 저리가라다.


이 모든 것이 꿈인가 싶다.




리오마지오레의 엽서 같은 그림을 찾아 헤매다,

도움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이

가장 소중한 선물로 남았다.


여행지에서의 예기치 못한 일들,

그로 인해 더 흥미롭고 특별해진 여정,

어려움을 마주할 때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 그리고 항상 조심하라.



저기 저기 해안 절벽 나무 덩굴에 나의 아이폰이 뻐꾸기 알처럼 매달려 있었다. 아니 나의 친퀘테레 모든 사진이 저기 매달려 있었다.


이런 물리적, 외적, 내적 갈등과 오두방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구는 조용하고 평화로워,

어둠이 스며들고 빛이 아련히 비치는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한다.





리오마지오레 마을의 엽서 그림은 내일 아침에나 다시 찾아야겠다.

샴페인 한 병과 이탈리아 샤퀴테리로 놀란 가슴을 쓰담쓰담 진정시켜야 겠다고 조용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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