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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May 27. 2024

Manarola에서 엽서같은 일몰에 빠지다

엽서같은 일몰이 환상인 마나롤라

La Spezia(라 스페치아)의 오후는 유난히도 맑고 상쾌했다. 프랑스 남부 여정을 마무리하며 바로 이동한 터라 여독이 쌓여가고 있을 즈음이었지만 여행의 설렘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기차역에서 친퀘 테레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으며, 내가 곧 마주할 다섯 개의 보석 같은 마을을 상상했다.

 

라 스페치아에서 가까운 순서로 리오마조레 (Riomaggiore)- 마나롤라 (Manarola) - 코르닐리아 (Corniglia) - 베르나차 (Vernazza) - 몬테로소 알 마레 (Monterosso al Mare) 의 순서대로 Cinque Terre, 즉 5개의 땅, 5개의 마을이 들어서 있다. 5개의 마을을 다 섭렵하는 것은 다소 부담이고 2개 정도의 마을을 여유롭게 산책하며 찬찬히 들여다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첫번째 방문지를 마나롤라 (Manarola)로 정했다. 이미 오후 4시가 넘어가는 시간. 2월의 해는 유럽 여름의 해처럼 길지 않은 것을 감안, 일몰의 아름다음이 예술이라는 마을인 마나롤라를 우선 낙점한 것.


라스페치아 중앙역을 떠난 기차는 이내 첫 번째 마을인 리오마조레에 도착하고 있었다. 터널에 들어서는 가 싶더니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리오마조레가 나를 맞이했다. 뛰어 내리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기차에 그대로 몸을 뉘였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며 정오의 강함은 잃었으나 여전히 따뜻한 햇살이 플랫폼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리오마조레는 첫 만남부터 나를 매료시켰다.



마나롤라 (Manarola)

리구리아 해안의 험준한 절벽을 따라 기차가 달리며 설레임이 밀려왔다. 기차로 다시 몇 분을 달려 도착한 마나롤라. 이곳은 친퀘 테레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겹겹이 층지어 서 있는 다채로운 집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다채로운 색깔의 파스텔 집들이 바다로 흘러내리는 듯한 풍경은 지금도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다채로운 집들, 활기 넘치는 좁은 골목길, 그리고 바위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부드러운 오후 햇빛 속에서 마을은 마치 살아 숨쉬는 듯했고, 어느 구석을 돌아봐도 엽서 속 장면 같았다.



 

 오후가 점점 깊어갈수록 나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마나롤라의 상징적인 일몰 사진이 촬영된 명소였다. 바위 절벽에 완벽한 자리를 잡고, 나는 쇼를 관람할 준비를 했다.



 이내 해가 서서히 지며 하늘과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늘은 금색과 주황색의 따뜻한 색조에서 핑크와 보라색의 차가운 색조로 변해갔다. 해가 점점 더 낮아지면서 마나롤라의 집들은 내면에서 빛나는 듯했고, 그 생생한 색깔이 아래의 반짝이는 바다에 반사되었다 마나롤라의 일몰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가슴 깊이 새겨질 아름다움이었다.



 마지막 햇살이 사라지면서 마을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집들의 불빛이 깊어가는 황혼 속에서 반짝이며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무르며 평온함의 여운을 애써 만끽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 저녁 풍경이 또 다채롭다.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식당은 붐비기 시작했고, 아늑한 트라토리아에서 신선한 해산물 파스타와 또 한 잔의 훌륭한 지역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나롤라에서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평온함과 인생의 작은 기쁨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작은 감사의 마음을 상기했다. 마나롤라에서의 일몰은 친퀘 테레 여행의 하이라이트일 뿐만 아니라 평생 소중히 간직할 추억이 될 것이다. 마나롤라를 방문하는 것은 마치 일몰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문득 내 인생의 후반부가 이렇게 황홀하게 아름다웠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마음에 일었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에 대해 무감하고 남일과 같이 치부하지만,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의 흐름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노을 위로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나의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더 진실되고 차분하며 긴 여운이 있는 잔잔함으로 가득차길 기도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진 않겠지만 병원에 누워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닌, 선한 영향력을 긴 호흡으로 아름답게 비추는 그런 삶이길 잔잔히 읇조리는 동안, 이탈리아 5개 해변 마을의 첫 여정은 또 그렇게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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