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생후 4개월에 우리 부부는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에 왔으면 중국사람처럼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음식도 샹차이(고수)를 즐겨 먹고 현지인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녔습니다.
중국에 간지 5,6년쯤 되니 중국생활에 적응은 물론, 택시를 타도, 시장에 가도 이제는 외국인 티를 내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혹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끼는지 남방에서 왔냐고 묻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외모나
행동거지가 남다르다고 느끼는지 어디서 왔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로 한국사람이라 하면
"아~! 북조선에서 왔구먼" 합니다.
그나마 제일 잘 봐주는 사람이 한국에서 몇 년 살다 왔냐고 묻는 사람입니다.
중국 조선족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사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저는 중국사람들의 이런 질문들에 작은 쾌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내가 이곳 중국에서 현지화에 성공해 가고 있구나'하며 말입니다.
얼마 후,
우리 가족은 한국방문을 위해 장춘공항에서 한국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장춘세관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큰아이들 둘이 먼저 통과했고 뒤를 이어 막내 세라를 안고 저의 여권을 중국세관원 앞에 내밀었습니다.
대뜸 세관원은
"신분증을 주시오" 합니다.
"그 여권이 신분증 아닙니까?"
"이것 말고 신분증 말이오"
"아니 여권이 신분증이지 또 무슨 신분증을 말합니까?"
세관원이 짜증 난 말투로
"당신이 저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이 한국여권이 있는 것이지 당신은 원래 중국사람 아닙니까?"
헐~!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요, 나는 원래 한국사람인데요." 했더니 신경질적인 말투로
(쑤완러 쑤완러 따오 호비엔 취 덩이덩)
"됐어요, 됐어요. 저 뒤에 가서 기다리세요."
어잉~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문제가 된 것은 이 모든 말을 제가 유창한 중국어로 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했거나, 더듬더듬 서툰 중국어로 했다면 이런 대우는 받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나와서 기다리며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희'는 아하~ 내가 이곳에 살면서 중국 현지화에 완전히 성공했구나! 세관원도 중국사람으로 봐줄 만큼...
'비'는 중국에서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은 외모에서 완연히 구분됩니다.
근데 내 외모가 이제는 한국사람으로 여길 만한 곳이 없는가 봅니다.
잠시 후, 그 세관원은 내게로 다시 와서는 그래도 의심스럽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안해서인지
내 여권을 이리저리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조바!(가시오)" 하고는 사라집니다.
세관에서의 작은 충격 때문에 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사우나에 갔습니다.
중국 때(?)를 다 씻으려고...
사우나에서 나오자마자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로 바꿨습니다.
한 달 여동 안 한국에서의 시간을 접고 다시 중국에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백화점에 가서 새 옷 한 벌 사 입고 구두까지 갈아 신었습니다.
중국연길로 향하는 비행기 안입니다.
제 옆좌석에 앉은 신사가 제게 묻습니다.
"친정 가세요?"
"......???"
헉! 친정이라니...?
내가 한국으로 시집간 중국사람인줄 아는가 봅니다. 잘 차려입고 친정 가는...
'그래~, 한국사람이길 포기하자
이제 나는 중국사람이다. '
이만하면 현지화에 성공한 것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