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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7. 2023

내가 고구마를 살려고 합니까?(워 야요 마이 띠과마?)

오해


중국에 온 지 6,7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교수님 댁 사무엘과 요한이에게 케이크로 인해 실망시킨 것이 미안해서 고구마과자를 만들어 주려고 고구마를 사러 집 앞시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때에는 시장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요 황과마?' (오이 있습니까?)

'요 바이차이마?' (배추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서툰 발음으로 말해도 금방 알아차리고 내가 찾는 물건을 잘 챙겨줍니다.

 

이 날은 새로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배운 중국어로 좀 더 긴 문장으로... 멋있게...


저는 근사한 우리말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내가 고구마를 살 수 있습니까?'

워(나)

야오(요구하다, ~하려고 하다) 그 당시 저는 이 단어를 '할 수 있다'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사다)

띠과(고구마)

마(의문사)

그리고는

'워 야오 마이 띠과마?나 나름대로 조합하고

몇 번을 연습하고 드디어 집 앞의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연습했건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워 야오 마이 띠과마?" 했더니

"선머?"(뭐라고요?) 합니다. 그래서 다시 "띠과" 했더니

"메이요"(없습니다)

고구마가 없어 못 산 것은 안중에도 없고

내가 한 중국어를 시장사람이 못 알아듣고 "선머?" 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가 너무 작은 소리로 말해서 못 알아들은 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다음 가게로 가서 '내가 고구마를 살 수 있습니까?'를 생각하고 이번에는 큰소리로 "워 야오 마이 띠과마?" 했습니다.

이번에도 "선머?" 합니다.

다시 "띠과" 했더니

"메이요"

다음가게로 발길을 옮기며'아~ 성조가 틀렸구나?!'

다시 성조를 기억하며 발음을 연습합니다.  3성, 4성, 3성...

자신 있게 큰소리로 그리고 성조를 기억하며 "워 야오 마이 띠과마?"

"선머?"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띠과"

"메이요"

아니?, 왜? 내가 하는 중국어를 중국사람들이 단번에 못 알아듣지?

고구마가 없으면 처음 물어봤을 때 없다고 말할 것이지 굳이 다시 "선머?"라고 되묻는 것인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선머?(뭐라고요?)"라고 되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내 중국어를 중국사람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집 앞의 야채가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다른 동네 시장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고구마를 사겠다는 생각보다 내 중국어를 알아들어줄 때까지 연습하겠다는 생각으로...

낯선 시장의 야채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워 야오 마이 띠과마?" 했더니

인상을 찌그리며 "선머?" 합니다.

이 가게에도 고구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면서 기분이 야릇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중국어를 못한다 해도 면전에서 귀찮아하는 표정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하자!'

용기 백배하여 옆가게로 갔습니다.

"워 야오 마이 띠과마?" (내가 고구마를 살려고 합니까?)

이번에는 웃으며 "선머?"(뭐라고요?) 합니다.

결국 이곳에도 고구마는 없습니다.

기분이 상당히 나빴습니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를 비웃기까지 합니다.

이 시장사람들은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중국어 못 하는 나를 귀찮아하고 비웃는 중국사람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내가 아무리 중국어를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나는 왜 이리도 중국어를 못하는가?

역시 나는 외국어에 소질이 없는가 보다...ㅠㅠ

이제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중국어를 배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너무너무 화가 나서 절대로 중국어를 배우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전쟁의 패잔병처럼 낙심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매일 공부해도 '워 야오 마이 띠과마?'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열등감과 중국어 못하는 외국인을 무시하는 중국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내 마음은 이미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나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는 과기대학생(명초)이 집에 왔습니다.

낮의 일을 이야기하니 뭐라고 말했는지 그대로 말해 보라고 합니다.

"워 야오 마이 띠과마?"

명초는 내 말을 듣자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웃고 나더니

"그 말은 내가 고구마를 살려고 합니까?, 혹은 나는 고구마가 필요합니까? 그런 뜻이에요."

"뭐라고?"

"시장사람들도 얼마나 웃스웠겠어요? 아님, 사모님이 정신병자 줄 알았겠죠?"

아~!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집 앞의 시장에서는 내가 한국사람이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니 그나마 이해했는데

다른 동네의 시장에서는 그냥 내 말을 듣고 이상하다 생각하고 웃은 것뿐인데

나는 그것이 비웃음이라, 나를 무시한다 생각했습니다.

중국 상인들이 내가 한 중국어를 한 번에 못 알아들어 "선머?"(뭐라고요?)라고 되묻고 중국어를 너무 못해서 비웃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고정된 생각이나 가치관이 오해를 불러왔습니다.

내 것에만 사로잡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나의 것으로 해석된 것입니다.

그 선량한 중국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비웃는다고 생각했으니...

 

그러고 보니 중국사람들이 내가 한 중국어를 정확하게 알아들은 거네요.

역시 난 중국어에 소질이 있나 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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