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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8. 2023

실망한 케이크

사무엘, 요한아 미안해!

중국 노동국사택에 살 때의 일입니다.

우리 집 바로 옆 통로에 한교수님이 2층에 사셨습니다.

마리아 첫 번째 생일을 지낸 다음날

사무엘과 요한이가 놀러 왔습니다.

 

마땅히 아이들에게 줄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전날 전산과 학생들과 마리아생일파티를 하고 남은 케이크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 케이크 먹을래?" 했더니

"예!" 합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던지...

저는 바느질을 하고 있던 차라

"그래, 조금만 기다려... 이것, 마저 하고 줄게."


아이들이 흥분했습니다.

케이크와 연관 있는 모든 기억을 떠올리며 케이크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 케이크 먹어봤어요."

"우리 형아 생일 때 아빠가 케이크 사 왔어요."

 

그리고는 "케이크 언제 먹어요?"

"응,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다시 케이크 이야기로...

"다른 형아랑 케이크 먹었어요."

"우리 동네 케이크가게 있어요."

또 그리고는 "마리아집에 케이크 있어요?"

"응, 우리 집에 케이크 있어... 이거 다하고 줄게."

"예!" 대답도 씩씩하게 잘합니다.

 

사무엘과 요한이는 한국에서 먹었던 케이크를 기억하며 케이크 먹기를 학수고대하고 내가 케이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어제 학생들이 사 온 케이크를 내놓았습니다.

"자~, 먹어볼래?"


그런데...

 사무엘은 흥분되고 상기되었던 표정이 사그라지더니...

먹어보지도 않고 고개를 내 저었습니다.

그래도 요한이는 한입 베어 먹더니 이내 포크를 내려놓습니다.

 

'아! 이게 아니구나!'

 

아이들이 먹을 제대로 된 간식 하나 없던 중국에서의 그 시절...

케이크란 말에 아이들이 한국에서 먹던 맛있는 케이크를 기억하며 흥분했는데...

아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사무엘, 요한아, 미안해~

아줌마 용서해 줘~

 

사무엘과 요한이가 이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도 사무엘, 요한이만 떠올리면 이 일이 생각나서 마음 한구석이 저려 옵니다.

 

그 시절 어른들만 힘들고 불편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사무엘, 요한이 처럼 5,6세의 아이들이 놀 곳도 없어 베이비 마리아가 있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것이 전부였고,

케이크란 말에 그렇게 흥분할 만큼 먹을 간식도 없었던 그때, 그 시절.


곧바로...

케이크로 실망한 사무엘과 요한이를 달래기 위해 고구마 과자를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고구마를 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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