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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Jan 03. 2021

가르마 바꾸기

방금 머리를 감고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기엔 예전보다 피부도 거칠어지고 주름도 깊어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젖은 머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르마가 지워져 있다.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거의 30년을 유지해 온 가르마의 방향을 바꿨었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나중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습관적으로 바뀐 가르마 방향으로 손이 움직였다.

그러나 어쩌다 이전 방향으로 틀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남자는 한참을 서서 

거울 건너편에 비친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이내 다시 훌훌 털고 

새로운 방향의 가르마로 전환하지만

사실 그냥 놔두면 이전 방향으로 움직인다.

심지어 남자는 파마까지도 했었지만

그의 머리와 머리카락이 기억하는 

30년의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어찌어찌하려 해도 

어째지지 않는 그런 무엇인가가 있다.

그의 머리와 머리카락이 기억하는 30년의 시간을 

돌릴 수도 또 굳이 그걸 돌려놓을 이유도 없다 싶어

남자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려 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니다.


-2015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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