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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Aug 02. 2021

배웅,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예의

배웅, 없어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예의

 

  

  등허리가 퍼렇게 시려 오는 것이 필시 소파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아직 겨울로부터 온전히 달아나지 못한 봄인지라 밤사이 거실 바닥은 얼음장이 되어 버렸다. 한기를 떨치려는 듯 몸을 움츠리며 모로 누워 보지만 잠은 이미 달아나 버렸다. 한동안 눈을 뜬 채 옆구리로부터 피어오르는 한기를 받아 내던 부갑은 느릿장 일어서며 베란다를 바라봤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다. 베란다 난간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지만 대수롭지 않았고, 툭툭 떨어진 목련 꽃을 쓸어 담는 청소부의 빗자루 소리도 소소히 여겨졌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 또한 기어이 사표를 내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는 늘상 그러한 모습일 따름이었다.


  굳이 여느 아침과의 차이를 발견했다면 그건 병풍처럼 서 있는 건너편 아파트를 송두리째 가둬 버린 안개 정도였다. 안개 따위가 그리 생경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주위로부터 고립된 공간, 문득 선명한 것은 자신이 지닌 열아홉 평 공간뿐인 듯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혼자 고립되었다는 느낌, 딱히 이유를 댈 필요조차 없는 딱 그만큼의 낯선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경험은 많았다. 정신없이 빗줄기를 밀쳐 내는 와이퍼 사이에 갇힌 비좁은 차 안이 그랬고, 혼자 낮술하고 돌아와 앉은 사무실에서도 다른 직원들과의 사이에는 기름종이를 사이에 끼워 놓은 듯한 반투명 상태의 거리가 있었다.


  잠시 동안의 고립감을 깨뜨린 건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주억거리던 검은 새였다. '푸덕' 날며 안속으로 되날아가는 데, 어딘가 낯설다 싶어 다시 보니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다. 까마귀가? 까마귀는 언제나 낯설고 흉한 재였다. 부갑은 어린 시절 교회에서 들은 노아의 홍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절되고 고립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까마귀를 날려 보냈지만, 까마귀는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부갑에게 까마귀는 언제나 비둘기보다 나쁜 피조물이었다.


  - 오늘도 늦어?


  갈아입을 와이셔츠를 들고 안방에서 나오던 아내가 묻는다. 부갑은 베란다에서 시선을 돌려 의뭉스런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는 대로 저녁 먹으러 회사 앞으로 나오겠다는 얘기였다. 부갑은 다시 까마귀가 날아간 짙은 안갯속을 주시하며 말했다.


  - 오늘은 지점장 회의가 있어서 안 될 것 같은 데, 그냥 당신이 사주지?


  - 그럼 됐어. 주말에 같이 가는 걸로 해.


  주저 없이 결론을 내어 통보하는 아내의 대답에 부갑은 '항상 이런 식이지.'라고 생각한다. 부갑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며 유리창에 비친 아내를 향해 말을 던진다.


  - 아버지 생신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아내는 와이셔츠 손질을 멈춘 채 부갑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런 건 당신이 말씀드려 주면 안 돼?


  - 그러게 어제 부천에 들러 보자고 했잖아.


  - 정옥이 시험 때문에 그런 거지, 가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


  아내는 여행 때문에라도 아버님 생신을 이번 주로 당기면 어차피 찾아뵈어야  텐데 굳이 어제를 고집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져 물었다.


  - 얘기했잖아. 그냥 꼭 가 봐야 할 것 같았다고. 왠지 마음이 그랬다고.

 

  아내는 말없이 와이셔츠를 소파에 걸쳐 놓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단단히 삐친 모양인데 이 또한 낯선 모습이 아니다. 와이셔츠 위에 넥타이를 매면서 부갑은 갈데 까지 갔다는 생각을 했다. 부갑이 아내에게 사표 얘기를 꺼낸 건 실수였다. 더욱이 일상에서 아내와의 대화가 사라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이들 육아 방식에서부터 비롯된 의견 차이 때문이었지만, 사실 아내는 시댁의 형편을 탐탁히 여긴 적이 없었다. 사는 형편이야 부갑의 대기업 부장 연봉으로 대체할 수 었지만,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부갑의 형과 가장으로서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항상 가족에 겉도는 아버지, 그리고 신앙과 결혼했다며 독신을 고집하는 시누이까지 어느 하나 아내에게 부담으로 자리하지 않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갑의 퇴직은 하나 남은 가족의 끈마저 놓아 버릴 수 있는 중대한 소스임이 분명했다. 부갑도 익히 알고 있듯이 아내에겐 경제력 없는 남편은 아무 소용없는 지푸라기일 뿐일 터였고, 퇴직 선언은 곧 아내란 폭발물의 뇌관을 건드리는 꼴이었다. 이런 사정을 수습하기 위해 부갑은 아직 사표를 제출한 건 아니라며 결혼 십 주년을 빌미로 해외 여행을 제안했고, 항상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던 아내는 내키지 않은 척 수락했다.


  부갑은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필요한 여행이라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노력이 되리란 예감도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여행에 대한 아내의 의지는 갈수록 구체화되었고, 아내는 공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아버지의 생신을 일주일 앞당겨 치르자고까지 했다. 아내의 의견을 나서서 반대하거나 흠잡을 사람은 없을 터였지만, 부갑은 한편으로 찜찜하기도 하여 두 주 남은 지금까지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버린 아내는 다시 나올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늘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막상 거리로 나서자 구 층 높이에서와는 달리 안개는 시야를 크게 방해하지 않았다. 먼발치에 무참히 떨어진 목련꽃 봉우리가 눈에 띈다. 이미 청소부가 지나간 후에 떨어졌으리라, 나머지 놈은 내일이라도 떨어지겠지 생각하니 부갑은 자기 자신도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이라 해도 별  일 없을 것 같은 나날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맞이하는 부갑의 사정 또한 여느 정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익히 풍문은 들었지만, 설마 육 개월도 지나지 않아 인사이동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였었다. 하지만 풍문은 사실이었고 부갑은 팀장 보직을 내어 놓고 담당부장으로 내려앉아야만 했다. 순환근무제에 걸렸음에도 지점 발령을 모면했다는 정도가 위안이랄까, 이제부터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 찍힌 듯하여 어디서든 어깨 펴고 다닐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나이 어린 팀장의 업무지시는 부갑을 비껴서 던져졌기에, 정신없이 바쁜 사무실 한쪽 편에 앉아 하얀 벽만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라지만 부갑은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게 되었다. 담배를 피울 때도 직원들이 이용하는 공원을 피해 애써 멀리 돌아다녔고, 최근엔 밥을 먹기 위해 혼자 소공동까지 나서기도 했다. 그날도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설렁탕을 주문하면서 부갑은 이런 게 바로 지옥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에서의 행복은 현생에서의 관계가 승계되지만, 지옥이란 곳에서는 모든 관계가 끊어진 채 각자가 형벌을 받는 모습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왁자지껄한 설렁탕 집 안에서도 혼자 지옥에 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까짓 게 지옥이라면 누구에게나 지옥이 있겠다며 깍두기 국물을 탕에 부어 훌훌 마시고 식당을 나섰다.


  지점장 회의는 오후 내내 이어졌다. 경쟁사를 따라잡을 마땅한 돌파구 찾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었다. 더욱이 지점장들까지 모아놓았으니 결론은 어디로 갔는지 사공들만 남아서 삿대질하는 꼴이 아닐 수 없었다. 습관처럼 벌어지는 이러한 회의에 대해 부갑은 평소에도 그저 '나도 무엇인가 하고 있으니, 이번 달에도 월급 주십쇼' 하는 기능 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라고 비아냥거렸었다. 내가 계속 팀장이었다면 이따위 회의는 하지 않았을 텐데. 부갑은 슬그머니 다이어리를 내려다봤다.


  손은 다이어리 위에서 비행기를 그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아마도 알프스를 넘고 있는 듯 마테호른처럼 뾰족하게 솟은 산맥을 넘고 있다. 결혼  주년 유럽여행. 다음 주까지만 버티면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리라. 물론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리란 믿음도 자신도 없지만, 떠나기 전부터 돌아올 날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으리라 당조짐 한다. 


  낙서를 보며 다이어리를 뒤적이던 부갑은 며칠 전 모든 교과서가 낙서투성이라며 아내에게 꾸중 듣던 정옥이가 떠올랐다. 그날 부갑은 조용히 딸아이 방으로 가서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 아빠가 재밌는 낙서 가르쳐 줄까? 여기 오른쪽 귀퉁이에 자동차를 그리고 다음 페이지마다 조금씩 앞으로 그려 넣는 거야. 이렇게.


  처음엔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옥이는 호기심 가득 찬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림을 그려 넣은 부갑은 책을 덮고 모서리를 잡은 채로 한 장씩 미끄러뜨려 넘기기 시작했다.


  - 자. 이제 잘 봐. 어때? 자동차가 움직이지? 아빠 어릴 때는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뚜뚜뚜뚜 하면서 달려가는 걸 그렸다. 만화영화도 이렇게 만드는 거야.


  그러자 큰 미소를 띠며 정옥이가 묻는다. 그런데 아빠는 그림을 어떻게 렇게 잘 그려요?


  - 아빠?


  언제였더라. 되짚어 보면 처음은 정옥이 또래였을 때 아버지가 그려  비행기였다. 아버지가 그 비행기와 한반도 지도를 책상머리에 붙여 놓고 틈날 때마다 똑같이 그려보려 끄적 그렸었다. 아버지. 부갑이 지닌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란 것 고작 이 정도였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인생에 개입되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부갑은 섬뜩해하곤 했다. 부갑은 회의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가족 사랑을 컨셉으로 한 신제품 포스터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렸다. 엘이디 창에 '어머니'라고 뜬다. 어머니와도 사실 모자지간이라고는 하지만 전화 한 통 주고받는 일이 드물었다. 전화 한 통화에도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못 하는 부갑도 부갑이지만, 어머니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냉장고 문을 열다 허리를 겹질렸을 때도 당신의 아들에게 연락을 취하기보다 오히려 외숙모를 찾았다고 했다. 여느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식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고립시키고,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하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계신 분이다.


  회의 중에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던 부갑이었지만, 보란 듯이 전화기를 귀에 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채 회의실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다. 그렇지만 되돌아가 앉을 이유도 없다. 부재중 통화 버튼을 누르며 회의실을 나와 창가에 섰다. 안개가 지독했던 아침과는 달리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부서질 듯 쾌청했다. 이런 하늘을 배경 삼아 남산에는 연한 빛깔의 봄꽃이 흐드러지고 있다. 웬일로 전화를 다 하셨지? 


  어머니는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전화하셨어요? 그런 어머니의 반응이 없다. 여보세요? 엄마? 거듭되는 부갑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던 정적 끄트머리에 비로소 작은 흐느낌이 전달되었다. 어머니가 울고 계다. 순간 현실로 옥죄어 오는 불안감. 아버지에게 또 맞으셨나? 모든 혈관이 자맥질한다. 부갑의 머릿속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꼬리를 물 지나가고 심장 박동 빨라지는데, 어머니가 겨우 말을 태워 보내셨다.

 

  - …… 느이 아버지, 죽었댄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어린 팀장을 불러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서둘러 낡은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택시를 잡으려다 일주일 동안 참았던 담배를 샀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도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온다. '당신이 어제 가자고 할 때 가 뵀어야 했을걸,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나.'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겠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아내의 놀라움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부갑은 그런 아내의 반응이 어색했다. 아내는 아버지를 불편해했다. 취향과 성격을 떠나서 아내는 자신의 삶과 가족의 안식을 파괴하는 존재로 여기는 듯했다.


  아버지는 가끔씩 부갑이 없는 낮시간에 집으로 찾아와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셨다. 처음엔 용돈이 부족하신가 보다며 어쩔 수 없이 내어 드렸다지만 내막이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돈을 받은 날은 며칠씩 노름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오래된 병이었음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 정말 이러시면 다시는 아버님 안  거야!


  아내는 정말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눈치챈 머니는 종종 '내가 더 오래 살아야 며느리에게 흉한 모습도 덜 보일 텐데…….'하셨지만, 사실 그것은 어머니의 말이 아니어도 모두에게 공유되는 암묵지 같은 감정이었다. 그런데 정정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먼저 가신 것이다. 순간 부갑 마음속 한편으로 지고 있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슬그머니 다행이라는 생각 꿈틀거렸다. 부갑은 고개를 들어 홰홰 생각을 털어 내었다.


  타다 남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버리고 옆에서 어물쩍거리던 택시에 몸을 실었다. 부천 00 병원이요. 목적지를 밝히고 부갑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빈소 마련이 시급한 사안이지만 딱히 어찌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택시기사가 성산대교로 가겠다며 신촌 방향으로 머리를 틀자, 불현듯 잊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체 없이 일일사를 통해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문의했다.


  -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시신기증을 서약하셨거든요.


  장례식장에서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니 대학병원 쪽으로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대학병원 담당자는 친절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어디서 돌아가셨나요? 집 근처 기원에서 돌아가셨답니다. 아! 그래요? 사고사는 시신기증을 받을 수 없는데……. 어떡하죠? 그래도 혹시 가능한지 일단 알아보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예,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부갑은 곧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 택시 탔어요. 길이 안 막히니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장례식장은 세브란스로 알아보고 있어요.


  어머니는 형사가 관내를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치르고 말자고 하시면서도 그 어렵다는 병원을 어떻게 잡았냐고 물으신다. 부갑이 시신기증을 얘기하자 어머니는 쉽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 왜, 서약서에 도장을 찍네 마네 하면서 큰소리 났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어머니는 장기기증과 헷갈리시는 눈치였지만 부갑은 굳이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보다도 원하는 빈소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했다. 부갑은 살아서야 어쨌건 간에 죽어서만은 허술한 병원으로 모시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는 가족만의 문제였지만 장례는 부갑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천 병원에 도착하니 응급실 대기 의자에 멀뚱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형과 눈가가 붉어진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 요즘 돈이 좀 생겼다고 한참 미쳐 있었댔다. 그래도 형하고 오전 내내 옥상에 심을 꽃과 채소까지 정리해 놓고, 흙도 일구어 거름까지 쳐 놓고는 점심이라고 국수 한 사발 챙겨 먹고 기원 간다고 나간 지 한 시간도  돼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지 뭐냐. 심장마비 랜다. 어제도 내기 바둑 두고 새벽에 들어와서 '나, 가슴이 아파.'라고 하는 걸 하두 미워서 나가 죽으라고 했더니 '다 됐어.' 하던 걸, 진짜루 나가서 죽어버렸다. 글쎄.


  어머니는 설명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소리를 늘어놓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형이 멍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 부갑아. 아부지 저깄다. 볼래?


  부갑은 보고 싶지 않았지만 안 봐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어정쩡한 자세로 부갑이 따라나서자 어머니도 같이 일어섰다. 영안실이 없는 병원이라 아버지의 시신은 응급실 한켠에 모셔져 있었다. 맞은편 구석에 있는 침대 앞에서 흰색 커튼을 젖히자 거무죽죽한 얼굴에 눈은 채 감지도 못하고, 입을 반쯤 벌린 익숙한 모습의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왼손은 팔치가 접혀 들려진 상태로 굳어 있었고, 앞섬이 풀어헤쳐 진 자주색 점퍼 안쪽의 앞가슴은 다리미 자국처럼 벌건 심장 제세동기 자국이 남아 있다. 머니가 눈을 쓸어내리는데 아무런 반응 없이 누워 있는 이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이고, 부갑이 그토록 원망하던 그 사람인가. 이 사람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침 대학병원 담당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부갑은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일단 모시러 가고 있으니, 담당형사의 허락을 받아 놓으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오늘 중으로 검사 지휘서가 내려오지 않게 되면 기증처리가 안 되니 그냥 장례를 치야 한다고 했다. 혹시 몰라서 장례식장도 예약해봤으니 일단 옮기시려면 답을 달라고 했다. 부갑은 주저 없이 그리하겠다고 했다.


  응급실로 돌아오니 어머니와 형은 다시 간이 의자로 돌아와 있었다.


  - 세브란스에서 오고 있대요. 장례식장도 병원에서 예약해 놓았다네요.


  - 잘 됐구나. 그러면 여러 사람 편하지.


  신촌 토박이인 어머니는 아직도 대부분의 친지 분이 근처에 살고 계시기에 싫지는 않으신 표정이다. 부갑은 곧바로 담당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담당형사는 아직 사체의 사진도 찍지 못했고, 검찰의 지휘도 받지 않아서 원칙적으로는 곤란하지만 정히 사정이 그렇다면 일단 경찰서에 방문해서 조서를 꾸민 후 옮겨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은 저녁에 직접 대학병원으로 들러서 찍겠다고 한다.


  응급실 간호사의 말도 '원장님을 뵙고 원무과에 수납'하면 언제든지 병원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부갑이 원장을 찾아가자 자기의 소견으로는 심장마비로 추정되나, 변사의 경우 부검을 해서 사망원인을 명확히 하기 전까지는 추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왜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사체검안서를 발부하는지에 대해서도 구구절절이 설명했다. 그러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갑이 원장실을 나와서 곧바로 원무과에서 수납하고 응급실로 내려오자 대학병원 담당자가 앰뷸런스와 함께 도착했다.   


  뒤이어 응급실에 도착한 누나에게 경찰서로 가서 형사를 만나도록 하고, 부갑은 앰뷸런스에 동승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한숨 돌리게 된 부갑은 비로소 부고 띄울 걱정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구가 없었다. 철저하게 혼자 셨다. 부갑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누구와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집으로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도 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온 동네 기원을 뒤질 때면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남모르는 바둑 상대와 마주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 것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아버지의 전부였다. 그나마 몇 차례 있었던 방문자 사기 또는 폭력 등속의 사유로 아버지를 찾아온 형사뿐이었다.

 

  시신을 영안실에 모셔 놓고 사무실을 방문하니, 누나의 연락을 받고 먼저 도착해 있던 상조회 측과 장례식장 측이 조심스러운 애도의 표정으로 부갑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서약한 시신기증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었다. 언제 쓰겠냐며 누나가 지난달에 가입했다는 상조회 정도가 그나마 준비라면 준비였는데, 시신기증 문제로 그 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장례식장 측과 약정사항을 협의하는 중에 대학병원 담당자가 찾아왔다. 조금 전에 긴급회의를 열었고, 부검이 필요 없다는 검찰 지휘서가 내일 오후 한 시까지 내려오면 특별히 기증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이런 결정은 규정과는 달리 매우 이례적이란 말을  번씩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왜 이렇듯 이례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대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병원 측에서 규정을 들어 시신기증을 거부하면 장례 절차에 관한 가족의 고민은 깨끗하게 해소될 터인데 말이다. 부갑의 가족은 무리해서라도 시신기증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정상적인 장례를 치를 것인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정은 부갑의 몫이 컸지만 이리 보아도 옳고 저리 보아도 옳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빈소가 마련되었기에 사실상 첫날의 문상은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버지를 끔찍이도 아끼셨던 고모께서도 도저히 거동할 수 없어 보이는 몸을 이끌고 찾아오셨다. 부축을 받은 채로 영정 앞에 서서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니 결국 주저앉아 큰 곡을 뽑아내셨다. 고모에겐 세상에서 하나뿐인 동생이었기에 애정은 각별했고, 그만큼 어머니에겐 힘든 시누이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노름증은 처음엔 기원에서 내기 바둑으로 시작해서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다가 결국은 사기나 폭력 등의 사고로 이어지곤 했다.


  때로는 가게를 담보로 돈을 융통하거나, 옷가지 등속의 물건을 들고 집을 나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어린 부갑을 불러 세워 놓고 가족을 부탁한다며 다짐을 받곤 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아버지를 찾아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녔고, 집안 꼴은 엉망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고모는 아버지 편이었다. 남자가 밖으로 겉도는 것도 다 여자 하기 달렸다는 얘기였다. 이북에서 혈혈단신 월남하신 고모부는 지극히 성실하고 가족에 헌신적인 분이셨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동안 곡을 하다 멍하니 영정을 바라보고, 다시 곡을 하기를 반복하던 고모는 상주 노릇 하는 부갑의 손을 한 번 붙들고는 빈소 안쪽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누우셨다. 누워서 어머니와 나누시는 얘기를 얼핏 들어보니 많은 부분의 오해는 풀리신 듯했다. 고모에게 조심스럽게 시신기증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셨다.


  - 그러면 제사는 찌 치르고?


  - 글쎄요. 일 년에서 길게는 사 년까지 걸려야 연락을 준다니 그 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요.


  - 그거이 참, 살아서 못 받던 대접을 죽어서나 받을 수 있간? 아무튼, 늬들이 효자다. 아바이가 생전에 다른 아바이 처럼 해주지는 못했드래도 , 너희들이 잘해야지. 


  고모는 알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기시고는 고모부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셨다.

 

  담당 형사는 밤 열한 시가 지나서 영안실로 찾아왔다. 그리 피곤해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졸음 기를 달고 있던 영안실 직원이 벌떡 일어서며 맞았다. 형사가 수첩에 적힌 아버지의 신원을 얘기하자, 직원은 실수라도 하지 않을지 몇 번을 확인한 후에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냉동문을 열어 아버지를 꺼냈다.


  형사는 앞 품이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있는 시신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영화와 달리 형사의 주문에 직원이 이리저리 대응할 뿐, 형사는 시신에 손 하나 대지 않다. 눈과 그 부근, 입, 목 등 안면을 중심으로 셔터를 눌러 대던 형사가 직원에게 옷을 벗기라고 주문한다. 직원은 잠시 잊었다는 듯 가위를 들고 와서는 소소히 떨리는 손으로 가위질하면서 옷을 걷어내는 데, 옷은 결국 'ㄴ'자 모양으로 굽어진 왼팔에 걸려 벗겨지지 않았다. 직원은 마치 아케론 강을 건너기 위한 동전이라도 쥔 듯 손아귀를 꼭 쥐고 있는 왼팔에 가위질을 더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갈갈이 찢어진 옷가지를 끌어모으며 부갑에게 아버지의 몸을 제 달라고 요청했다. 부갑이 가로누운 아버지를 손끝으로 붙잡고 있는 동안 직원은 이제 아랫도리를 가위질하기 시작했다.  


  - 이런, 똥이 묻었네요.


  팬티에 새끼손가락만큼의 똥이 묻어 나왔다. 직원은 똥이 떨어지지 않도록 찢은 바지를 웅크려 말아 쥐고는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옷가지가 쓸려나가면서 발가벗겨진 아버지의 몸뚱 뚝, 바로 눕혀졌다. 순간 부갑은 무엇엔가 놀란 사람처럼 혼란스러워졌다. 중학교 일 학년 이후로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몸뚱어리를 본 것인데, 마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차가운 바닥의 한기를 받아들이던 자신의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형사가 터뜨리는 플래시 섬광과 묘하게 뒤섞여 마치 시간과 장면이 멈춰진 한 장의 스틸 사진처럼 부갑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더욱이 그 짧은 순간, 부갑의 눈에 들어 온 건 시커멓게 축 늘어진 아버지의 음이었다. 자신의 그것과 아들의 그것이 닮았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아버지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 그러곤 자신을 비롯한 삼 남매를 만들기 위해 용두질하던 아버지의 젊음이 스쳐 갔다. 이제 쓸모없어진 물건, 저곳으로부터 자신이 비롯되었다.


  - 옷은 가져가시겠습니까?


  직원 옷가지 뭉뚱그려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으며 물었다.  


  -  가져가야 하나요?


  부갑이 엉겁결에 대답하자 직원은 망설임 없이 '그러시면 병원에서 소각하겠다.'며 봉지를 들고 일어섰다. 부갑은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형사에게 시신기증 상황을 설명하고 예상되는 지휘 결과에 대해 물었다. 손을 씻고 있던 형사는 증인도 있고, 시신이 깨끗해서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검사의 판단은 알 수 없는 일이니, 내일 아침에 서부지청 담당 검사에게 전화해서 얘기해 보라고 했다.


  형사들이 돌아가고 빈소로 돌아온 부갑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장례 절차로 골치가 아팠다. 부검지휘라도 떨어지면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런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 시신기증이 거절될지도 모르니 장지도 알아봐 두어야 했다. 마침 외할머니 장지를 알아보던 외삼촌이 김포에 있는 공동묘지를 추천했고, 어머니는 자리 볼 겸해서 다녀오시겠다고 다. 어머니는 여전히 시신기증에 뜻이 없으신 눈치다.

 

  이튿날 아침은 문상 준비로 부산스러웠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찾아온 외삼촌과 함께 장지를 확인하러 김포로 가셨다. 불확실한 장례절차에 대한 대비 라지만 어머니는 밤새 생각이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형사가 일러준 대로 아홉 시에 맞춰 검사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 검사는 아니었지만 접수되면 확인하고 바로 처리해주마는 언지 받았다. 그리고 열 시 반쯤 오정경찰서 형사에게서 지휘서 내려왔으니 와서 찾아가라는 전화가 왔다. 이제서야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부갑은 대학병원 담당자에게 전화로 결과를 알려 주었고, 어머니께도 연락해서 장지 계약을 치르지 말라고 일러 드렸다.


  오후 한 시가 되어서 누나가 검찰지휘서 사본을 받아 들고 왔고, 이후로 모든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니 치러야 할 장례절차가 없어졌기에 오히려 할 일이 없어졌다.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 사무실로 찾아온 대학병원 담당자에게 시신기증에 관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주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온 가족이 모여 배웅할 수 있도록 발인 일에 맞춰 대학병 실습실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이제야 다소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문상객을 받고 있는데, 점심 무렵, 몇몇 직원들을 대동하고 팀장이 조문했다. 일 때문에 저녁에 들르기 어려울 듯하여 미리 왔다며, 그런데 왜 발인시간과 장지가 안 적혀 있느냐고 묻는다. 조심스러운 척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자 정해진 수순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하시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주 자리로 돌아갔던 부갑이 문상을 마치고 돌아가는 직원들을 배웅하러 나서는데 팀장이 슬쩍 옆에 붙어서 조만간 명퇴가 있을 것이라 귀한다. 더러 차라리 명퇴하란 얘긴가? 이게 문상 와서 할 소린가 싶으면서도 귀가 번뜩 였다. 긴, 때가 되었다. 생리적 나이가 아니라 사회적 나이로도 나도 갈 때가 되었다. 어차피 스스로 사표를 내는 것과 직을 종용받는 것의 차이 모호해진 지도 오래되었다. 


  회사 사람들이 돌아가자마자 성경책과 찬송가를 손에 든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입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에서 함께 출발한 목사님과 교인들이었다. 아버지는 내세를 굳게 믿었으며, 오로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일념으로 교회만큼은 꾸준히 다니셨다. 신앙과 결혼하였다는 누나조차도 생활에서 증거되지 않는 믿음은 헛된 믿음이라고 누차 얘기했어도, 아버지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며 천국행을 확신했었다.


  시신기증이 확정되었기에 염은 물론 입관 절차조차 없다고 목사님께는 미리 말씀드렸지만, 성도들과 함께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예배는 드려야 마땅하겠다고 했고, 이를 어머니께서 수락하시면서 입관 없는 입관예배가 치러지게 됐다. 아버지가 선택한 일은 아무나 할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는 훌륭한 일이라며 못내 탐탁지 않게 여기던 어머니의 맘을 부추겨 흔드신 분 목사님이셨다.


  예배를 집도하며 목사님은 거듭 강조했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바대로 천국은 으며, 박 집사님은 분명 믿음으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생을 떠나면서도 삶의 모범을 보이신  집사님께서는 어 없어질 육신을 맡기어 세상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배 중에 '며칠 후 요단강 건너서 만나리'라며 찬송가를 부르는데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영정 사진을 들여다보던 부갑의 눈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눈물이다. 그것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부갑은 울지 않을 줄 알았다. 기억 속에 아버지는 그림 따위나 그려 주던 단편적인 모습 외에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어린 부갑에게 조차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는 기억밖에 떠올릴 것이 없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그만한 자식을 키우고 있어서였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스스로를 옥죄어 놓고 평생을 고립되어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신기증은 그나마 마지막 가는 길에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민 게 아닌가 생각하니, 어쩌면 아버지는 이런 방식으로 관계 개선을 지향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은 그렇게 찾아오셨던 것 같다. 정옥이 아직 갓난쟁이를 벗어나지 못했을 때였는데, 사이즈도 맞지 않은 아이 내복을 쇼핑백에 담아 들고 집으로 불쑥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기겁하여 부갑에게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렸다. 부갑은 노친네의 권태와 노망이라고만 생각했지, 막내아들이 낳아 준 첫 손주가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가족을 향해 내민 손짓이라고는 잠시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쩌면 부갑은 아버지를 용서할 기나 명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러한 기회조차 빼앗겨 버렸음에 대한 원망의 눈물일지도 몰랐다.


  입관 예배가 끝난 오후부터 조문객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지만 어머니의 친지 분들과 부갑의 동료, 친구들을 제외하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생전에 고인을 알던 사람은 하나도 찾아오지 않는 이상한 문상부갑은 생전에 아버지 다른 사람의 문상을 다녀 본 적이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겨우 조문객의 발길이 끊어진 새벽녘에 부갑은 옷가지들을 이불 삼아 빈소 앞에 누웠다. 아무리 결정된 사안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불효라는 생각에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카데바라 불리던가? 마지막 본 아버지 육신이 이제는 갈래갈래 찢어져 희희덕거리는 어린 학생들의 손에 들려지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잠시라도 눈을 감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부갑은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1층 현관 앞에서는 상주로 보이는 몇몇 사람이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부갑은 큰 숨 한 모금 들이마시고 새벽하늘을 바라본다. 이제 이곳에 아버지는 없다. 카론에게 쥐 줄 노잣돈 한 푼 들려 보내지 못했지만 무슨 소용이겠는가, 모든 것은 사라졌는데. 부갑은 담배 한 대를 물고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이제 아버지로 인해 불안한 시간들도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영안실로 돌아오는데 뜻밖에도 빈소 밖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 아버님 참 너무하시네. 어떻게 끊은 담밴데…….


  아내의 말은 부갑이 다시 담배를 물게 된 것이 너무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날아가 버린 알프스의 소망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결코 빈말은 아닐 게라고 부갑은 생각한다. 그러나 뜻밖으로 부갑의 지친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던 아내는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말투로 말을 건다.


  - 당신 이런 모습 처음이다. 당신이 이렇게 슬퍼할 줄은 몰랐어.


  그러한 아내를 부갑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답한다.


  - 나도 몰랐던 일이야.


  - 그런데 아버님, 기증 말이야. 당신이 정말 반대했었어? 난 왜 기억이 없지?


  - 당장의 일이 아니니까 별생각 없이 넘겼었겠지.


  부갑은 아내의 눈을 바라보다 문득 아내가 건성으로 묻는 게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


  - 옥신각신 끝에 사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난 반대하지는 않았어. 난 아버지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관심 없듯이 시신기증 따위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중요한 건 내가 지금 그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야.


  아내는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큰 눈으로 부갑을 쳐다봤다.


  - 내가 사람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한 게 언제인 줄 알아? 바로 오늘이야. 난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이 없지만, 오늘은 마치 자랑처럼 아버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지. 누가 묻지 않아도 내가 얘기하고 있다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만 듣고 그렇게 알지. 아버지의 진짜 삶은 숨겨진 채 말이야.


  - 아버님은 정말 천국에 가셨을까?


  느닷없이 아내가 물었다.


  - 당신도 천국을 믿어? 난 어제 아버지를 보면서 죽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 …….


  - 설령 내세가 있다 해도 아버지의 천국은 지옥과 다르지 않을 거야. 어차피 거기서도 혼자 계실 테니.

  부갑은 피로와 눈물로 붉어진 눈으로 아내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 당신은 초상이 무슨 뜻인지 알아? 없어짐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래.


  - …….


  별거 없잖아. 없어진다는 것은 그냥 없어지는 거라구.  

 

  이튿날도 몇몇 빈소에서는 발인 준비로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하지만 발인도 장지도 없는 아버지는 오전 아홉 시영구차가 아닌 앰뷸런 다시 옮겨졌다. 약속한 대로 대학병원 직원 앰뷸런스 앞에 멈춰 서서 흰색 보를 잠시 걷어 주었다. 아버지는 염조차 치르지 못한 채 삼 일째 씻지도, 썩지도 못한 어제의 알몸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어머니만이 아버지를 붙잡고 '이렇게 갈 거면서'라며 오열했을 뿐, 가족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이렇게 갈 거'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앰뷸런스가 지하 주차장을 떠나 대학병원 실습실로 옮겨지는 것으로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부갑은 조촐한 가족 행사 마친 후, 마치 손님 배웅하고 뒤돌아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빈소로 돌아와 집으로 가져갈 을 챙기고, 장례 사무실에서 비용을 정산했다. 마지막으로 빌려 입은 상복을 반납하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가족은 어머니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서둘러 장례식장을 나서기로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형은 콧소리를 내며 아버지의 십팔 번 봄 처녀 제 오시네를 흥얼거렸고, 아이들은 시험을 앞두고 며칠 밀린 교과 수업에 대한 부담으로 두런거렸다. 조수석에 앉은 부갑도 곧 시작될 알프스 여행에 한 아내의 새로운 고민과 상관없이 회사로 복귀하는 즉시 명퇴 신청을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차가 병원 정문을 나서자마자 부갑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사월의 햇살이 너무나 포근했기 때문이다. 어린 부갑을 골목 어귀에 세워 놓고 이제부터는 네가 가족을 책임지라며 집을 나갔던,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어느 해 봄볕 따가웠던 그날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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