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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Jan 22. 2021

그의 아들

  1 

  

  버스에서 내리자 봄바람 치고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덮쳐왔다. 얼굴을 후려 맞은 듯 고개를 급히 꺾으며 코트를 여미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여자들은 다리를 오므린 채, 두 손에 입김을 불어대며 호들갑이다. 때늦게 코트를 입고 다닌다고 나무라던 집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것 보라고, 봄 날씨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결혼과 함께 분가한 후, 삼 년 만에 찾아온 거리를 어색한 눈으로 둘러본다. 건널목으로 향하는 도로변엔 아파트 담장 너머 뻗은 개나리 줄기에 꽃이 한창 피어올라 있다. 무성하게 부푼 샛노란 꽃봉오리는 아무리 철없이 찬바람이 불어도 올 것은 오고, 또 필 것은 핀다는 생각을 요구하듯 무리 지어 흔들린다. 

  

  십구 시 오십삼 분. 약속한 방문시간보다 칠 분 이르게 도착했다. 정문에서 방문증을 발급받고 현관을 들어서자 오른쪽 모퉁이의 안내데스크에 사십 대 중반의 남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귀를 털고 있다. 처음 방문한 경찰서도 아니고 보면 익숙할 만한데,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마치 사소한 죄라도 고하는 것 마냥 주눅이 드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더욱이 이런 태도의 남자에게서는. 

  

  -조사…… 과를 찾아, 왔는데요. 

  

  -조사계요? 오른쪽으로 돌아서 쭈욱 가면 왼쪽이요. 

  

  묻는 사람의 얼굴조차 알 필요 없다는 듯 올려다보지도 않는 대답이다. 오히려 이쪽의 신원을 꼬치꼬치 캐묻는 친절보다는 낫다 싶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어차피 그쪽이 귀를 털든 발가락을 후비든 나 역시 관심 없다. 복도엔 된장찌개인지 순두부인지 음식 냄새가 저녁 아궁이 연기에 안개 깔린 동네 어귀 마냥 뒤섞여 있다. 젠장, 저녁도 먹지 못하고 달려왔다. 현관을 되돌아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노원경찰서의 형사라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마침 사무실에서 회사합병에 관한 업무협의를 마치고, 구조조정 등속의 후속조치에 대해 잡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상대가 경찰서 형사라는 사실이 귀청을 타고 흐르는 순간, 결코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어떤 일이 닥친 것처럼 모든 감각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동시에 바닥 밑 저 끝에서 달아오르는 무엇인지 모를 열기가 얼굴로 몰려 올라온다. 이내 얼굴이 붉어지고 한동안 가라앉아 있던 심장이 자맥질한다. 

  

  -노원경찰서 조사계 최 형사입니다. 몇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고일호 씨 맞으시죠?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상대의 목소리에 취조의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 

  

  -고병석 씨가 아버님 맞으시죠? 

  

  -예, 그런데요? 

  

  -동부지검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아버님께서 긴급 체포되셨습니다. 

  

  -……. 

  

  -여보세요? 예, 그래서 몇 가지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2 

  

  안내데스크에서 가르쳐준 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그저 아까의 뒤섞인 음식 냄새겠거니 생각했다. 이런, 이 냄새는 또 뭐야? 땀 냄새와 담배 냄새가 노골적으로 겉절이 되어 있다. 생각만큼이나 적응하기 힘든 분위기다. 돌아선 방향으로 맞은편에 화장실이 있고, 왼편에 항상 열려 있던 것 같은 문이 있다. 그 위로 팻말이 걸려 있다. '조사계'. 조사과가 아니라 조사계였군. 들어서자 웬만한 어른 키 높이만큼의 파티션이 미로처럼 가로막는다. 모든 경찰서가 이렇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전 일산서에서 조서를 꾸밀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입구에서 러닝셔츠와 슬리퍼 차림으로 칫솔을 들고 있는 형사와 마주쳤다. 

  

  -최…… 형사님을 찾아왔는데요. 

  

  잠시 머뭇거리던 러닝셔츠는 한쪽으로 턱짓을 한다. 

  

  -저쪽……. 

  

  역시 성의 없는 말투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귀를 후비거나 양치질할 때만 손을 쓰나, 턱으로 뭉뚱그려 저쪽이라니. 그쪽에만 해도 몇 개의 파티션에 몇 개의 책상이 있는지 모를 터인데. 고개를 돌려보니 다행히 파티션 위쪽에 명패가 붙어 있다. 채주영.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 씨가 아니라 채 씨였나? 그 방을 향해 방향을 틀자, 익숙한 모습의 남자가 철제 등받이 의자에 등을 걸친 채 거만하게 혹은 지친 자세로 앉아 있다. 누가 보더라도 취조에 지친 피고소인의 표정이지만, 나름대로는 경찰서 환경에 적응했다는 어설픈 행세를 풍기는 이 사람이다. 여기가 맞군. 남자는 나를 먼저 확인하고는 가래 걸린 듯 낮고 끌끌 거리는 소리를 낸다. 

  

  -고맙다. 

  

  안 올 줄 알았나 보다. 그렇겠지. 생각이 있다면 당연히 안 올 줄 알아야겠지. 고맙다고? 고마운 걸 아는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나? 파티션을 돌아서니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는 책상 오른쪽에 젊은 형사가 앉아 있다. 형사가 알아보고 말을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셨네요. 

  

  -예…… 약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 일인걸요. 길이 많이 막히죠? 

  

  -예……, 뭐……. 

  

  형사는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철제의자에 앉으라고 권한 후, 자 이제 한 번 해볼까 하는 표정으로 맞손을 비비고는 키보드를 꺼내 무엇인가를 입력한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시식하는 듯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무엇인가 입력하는 행위가 있는 동안 아무 말도 없다. 무엇인가를 입력하는 행위는 한참을 계속한다. 엔터키를 치는 듯 거칠게 자판을 내려치고, 이내 프린터가 위잉 거리며 내 쪽에선 보이지 않는 활자 먹은 종이를 뱉어낸다. 이제 질문을 하려나? 뽑아진 종이를 한 번 훑어보더니 또다시 무엇인가를 입력한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조서를 꾸미는 책상은 앞쪽이 막혀 있어서 피의자건 참고인이건 다리를 펼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실내의 분위기나 냄새는 끼어들 틈이 없다. 이건 도무지 불편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세상이 달라지니 경찰서도 달라진다. 개인 피시에 프린터가 연결된 것은 물론이고 엘시디 모니터까지 달려 있다. 서류뭉치와 타자기로 채워졌던 책상이 그만큼 넓어졌다. 독수리타법으로 타이프를 찍어대던 모습도 이제는 고전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모양이다.   

  

  -아드님, 아버님과 말씀이라도 하시죠? 한 말씀도 없으시네……. 

  

  보기에 뚱했던지 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던진다. 

  

  -……. 

  

  할 말이 없다.    

  

  3 

  

  꼭 일 년 전 일산서에서 나의 신분은 지금과 달랐다. 그때의 나는 피고인이었고, 내가 참고인으로서 진술해 주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이 의 아들이라는 나를 폭행죄로 고소했었다. 그때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유리한 대답만 진술했고, 불리한 진술은 에둘러 피해 갔다. 결국, 서로의 주장이 상이하여 대질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갔었다. 지금의 난, 그때에 비하면 상당히 여유롭다. 나는 참고인일 뿐이다. 내가 입을 한 번만 놀리면 이 사람의 인생은 또 한 번의 파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 사람의 고통으로 그친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법률적으로 이 사람은 우리 형제의 호주이며, 상식적으로 아버지이다. 그렇게 쉽게 그쳐질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안 볼 수만 있다면 교도소에라도 집어넣고 싶어 했고, 그 생각은 한 번도 지워진 적이 없는 바람이었는데, 어쩌면 지금이 그 기회일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은 점심시간이 막 끝나가던 때였다. 팀장이 불러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사무실 문이 열린 채로 이 사람이 서 있었다. 초췌하고 꿰줴줴한 상태로 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국내 최고의 보안시스템을 자랑하는 이 건물에서 이 몰골로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까?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은 잠시, 25층을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울화가 끓어오를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걸었다. 점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눈에 띄었다. 혹시 동료직원의 눈에 띌세라 눈도 발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그만 걷고 어디 가까운 다방에라도 가자고, 허리가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고 붙들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완력을 쓴다면 몰라도 말만으로는 나를 붙들 수 없었다. 는 나를 따라 침을 퉷퉷 뱉으며 열심히 쫓아 걸었다. 어차피 목소리가 커질 터였고 그렇다면 우리 부자가 대화를 나누기에는 공간이 좁거나 타인의 시선이 닿는 장소는 애초부터 적합지가 않았다. 

  

  회사에서 제법 떨어진 시립공원에 다다랐을 때, 이 사람은 첫 번째 벤치에 무너지듯 걸터앉으며 가쁜 숨을 푸푸 내뱉었다. 주변엔 겨우 봄이 시작하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차도의 갑갑함을 털어내려 나온 노숙자 몇몇이 군데군데 벤치와 정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법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잔디밭을 우회하는 소로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한 연인들이 시간을 붙들어 두려는 듯이 서서히 걷거나, 근처 대입학원 수강생들이 시시덕거리며 뛰어가곤 했다. 무엇보다도 서로가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담배 있으면 한 대 줘봐라. 

  

  -……. 

  

  -……. 

  

  -사서 피우시지요. 담배 한 대 사 피울 돈도 없이 여긴 어떻게 오셨을까. 

  

  나의 비아냥은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나름의 비책이다. 하지만 이 사람과의 대화는 항상 낮고 느리게 진행되다가 급격히 높고 가파르게 변한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그러니 돈 좀 다오. 

  

  -명호네 결혼 부조금을 통째로 들고나갔다더니 그게 언젠데 여기 와서 행패를……. 

  

  -행패라니? 

  

  눈을 부라린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눈을 부라리면 자식은 고개를 떨구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렸는지……. 

  

  나의 말엔 종결형 어미가 없다. 존대하고 싶지 않지만 존대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내버려 두라. 너거들 옴마이 말만 듣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들 여기는데, 그건 니들이 모르는 거이구. 내 사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진 말라. 내래 이렇게 살다 뒈지면 그뿐 아니 갔니. 내래 요 모양이니 너나 잘하고 살라.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해 너무나도 뻔뻔한 이 사람과는 삼십 년이 넘도록 수도 없이 묻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저 같은 자리로 맴돌기만 했다. 대화는 결국 실랑이 끝에 몸싸움으로 번졌고, 그 와중에 나는 를 때렸다. 정황상 넥타이가 잡힌 멱살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정당방위라고 진술했지만, 어찌 되었건 난 아버지를 때렸다. 태어나서 누구든지 사람을 때려본 것은 처음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구타 한 번 하지 않았다.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체질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었다. 며칠 후 이 사람은 진단서를 첨부해서 나를 근친 폭행으로 고소했다. 

  

  

  4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고일호입니다. 

  

  -피의자 고병석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 

  

  채 형사의 형식적인 문답이 시작되었다. 경찰서를 한두 번 다녀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조서를 꾸민다는 것이 얼마나 형식적인가를. 자판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던 채 형사가 모니터 너머로 슬쩍 고개를 들며 못 들었느냐는 듯이 묻는다. 

  

  -피의자 고병석과의 관계요! 

  

  대답하기 싫었다. 난 초등학교 이후 그를 아버지라 불러 본 기억이 없는 듯했다.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대상을 남의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관계, 정말 대답하기 싫었다. 

  

  -아들입니다. 

  

  하지만 어쩔 것이냐. 그럴 거면 이곳에 오지를 말았어야지. 

  

  난 의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싫었다. 비릿한 무엇인가가 풍기는 의 냄새, 머리를 감거나 담배를 피울 땐 종종 퉷퉷거리며 뱉어대는 마른침, 눈만 감으면 벼락 떨어질 듯이 내질러지는 코골이 습관, 어느 것 하나 맘에 드는 것 없이 진저리 쳐지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가 내게 준 것도 없고 받은 것도 없지만, 고스란히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밥을 먹을 때면 밥상 앞에서 꼭 재채기를 한다. 거실 창 밖을 내다보거나 누워서 TV를 볼 때면 엉덩이 쪽 바지춤에 손을 넣곤 하는 버릇까지. 그런데 가끔 딸아이의 습관에 배어 있는 를 발견하고는 망연해지기도 했다. 

  

  거듭 말하지만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민다는 것은 언제나 형사나 바쁠 뿐이다. 게다가 형사도 그의 손놀림이 바쁠 뿐이지 이런 정도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이미 다른 사람의 조서로 활용했을 법한 뻔한 질의 내용이 담긴 조서 양식에 이름과 주민번호 등이 새롭게 바뀔 뿐이다. 질문과 응답은 이미 형사의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다. 그저 물을 뿐이다. 피의자 특히 나 같은 참고인은 그냥 멀뚱이 타자 소리를 듣다가 간혹 묻는 상투적인 질문에 예, 아니오 정도의 답변만 하면 그만이다. 그런 면에서 채 형사는 조금 더 친절하다. 비교적 운신이 편했던 누나가 이미 사흘 전에 출두하여 신원보증을 서고 참고인 진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까지 불려 오게 된 배경을 사려 깊게 설명해 주었다. 

  

  -이런 사건은 사실 뻔하잖습니까? 원래 이런 일은 쉽게 처리되거든요. 그래서 어제 검찰에 이관했는데……. 

  

  채 형사는 말을 끊으며 '탕'하고 엔터키를 내려쳤다. 이내 프린터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자판기를 내려다보며, 

  

  -하필 그 까다로운 검사가 배정되는 바람에……. 

  

  검사는 고소인이 제기한 사기 건에 대해 사기성 여부가 있는지를 신원이 확실한 아들에게 묻고 보완하라고 되돌려 보냈다. 아울러 별도의 출두요구가 있을 시 피고소인이 도망가지 않고 출석할 것을 보증한다는 다짐도 받아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그래야 구속을 피할 수 있다는 협박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걸 내가 어떻게 보증하지? 어쨌거나 채 형사는 지금부터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겠다는 시그널을 나에게 보낸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현재 거주하고 계신 아파트를 매도하려고 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지금 분가해서 살고 있지만, 어머니와 누나에게서 아파트를 판다거나 이사한다는 얘길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매도의 의사가 없었는데 부동산에 내놓았다는 말이군요. 고…… 일호 씨. 말씀 잘하셔야 합니다. 아버님은 지금 사기혐의로 고소되셨어요. 

  

  -예. 분명 아파트를 팔 계획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 듣거나 물어서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아파트가 어떻게 장만한 집인데, 어머니의 평생의 설움이 배어 있는 그 집을, 그래서 등기이전 문제로 경매에 넘겨졌을 때도 그렇게 좌절했던 집인데, 그 집을 팔아 치울 리는 만무했다. 

  

  -그럼, 사기가 맞네요? 인정하시는 겁니까? 

  

  -…….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드나든다. 

  

  

  5 

  

  노름이었다. 아버지의 노름 벽은 스물아홉 부근 총각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결혼한 어머니, 청첩장 받아 본 동네 아주머니들이 잘 알아보고 결혼하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그저 지나가는 말이려니 했다는 외할머니. 그것을 알면서도 서둘러 장가 들린 친할머니, 돌아가실 때 그래도 며느리가 안쓰러우셨는지 너는 이쪽에선 얻어먹을 것이 없으니 친정 근처에서 살도록 하라고 하셨다는 할아버지. 도대체 이 집구석의 사달 나는 꼬락서니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만을 싸잡아 비난하는 고모들. 

  

  처음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육이오가 터지던 해, 그러니까 열다섯 살에 월남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야무지고 총명하기로 고을에 소문이 났었다고 고모들은 얘기한다. 그러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선지 이남으로 내려온 이후 십여 년 만에 희망을 잃고 삶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이유가 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솔직히 관심 밖의 일이다. 설령 누군가 얘기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억되지 않는다. 어쩌면 열다섯 살 이래로 별로 써 볼일도 없을 것 같은 이북 사투리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 보면 그의 재능은 아까운 면이 많다. 상황의 비현실적인 비약과 지나치게 주관적인 기준이어서 그렇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논리적인 면도 있다. 정규과정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정작 한자, 영어, 독어, 일어 등을 거드는 것을 보면 학습능력과 이해력 또한 타고난 듯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의 젊은 시절 노트를 통해 셰인의 아란 랏드와 카사블랑카를 알았을 정도로 예술과 풍류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의 어떤 벽을 느꼈던 것일까? 자신의 재능 중에 하필 가장 소질 없는 종목을 선택해서는 가족에 기생해 왔다. 

  

  평생을 얹혀사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어머니가 온갖 품을 팔아서 낫 가래로 긁어모으듯이 찔끔 모아놓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쥐고 나가서는 며칠씩 안 들어오던 아버였다. 언젠가는 도저히 맨 정신엔 안 되겠던지 한 잔도 못하는 술 몇 잔 들이마시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의 손엔 내 팔뚝만 한 가위가 들려 있었다. 어린 누나의 목을 부여잡고 돈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아버지. 골방의 이불 쌓인 발 재봉틀 위에 숨어서 하늘을 향해 제발 우리 아버지 이러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떨면서 기도하던 열 살 아이의 애절한 기도를 외면한 하나님. 

  

  등교 전과 방과 후, 쉬는 시간에는 항상 교내 매점에서 학우들에게 빵이나 준비물을 팔아야 중학교조차 다닐 수 있었다. '형, 나 인문계 가고 싶어'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상고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던 날, 동생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나 역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던 날 밤, 왕복 15킬로미터에 달하는 중학교까지 이를 악물고 달렸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안양천변에 앉아 소리 내어 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누나와 내가 외할머니댁에서, 동생은 큰집에 얹혀살며 학교에 다니고, 어머니는 가재도구를 비나 겨우 피할 수 있는 허름한 창고에 맡긴 채 여관과 철야 교회를 전전할 때도 이 사람은 가족에게 져야 할 의무를 잊고 살았다. 

  

  '내가 네들에게 해준 게 없는 건 알지만 서도 그래도 아바이다. 아바인 아바인거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대우 만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불가침의 신성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망각한 채 자신에 대한 자식의 의무는 당연시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해 종종 접하는 근친 상해나 폭행, 살해 등의 뉴스 중의 상당수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 살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수도 없는 가족회의를 했다. 주변의 지인들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아버지를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 일러 주기도 했다. 그러던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를 죽여버리는 꿈을 꾸곤 했다. 얘기했듯이 지금은 어쩌면 그러한 방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사기는 아닙니다. 

  

  아……, 그런데 나의 이런 대답은 무엇이란 말인가? '끄응-' 아버지가 소리 없이 내쉬는 안도의 한 숨을 느낄 수 있다. 채 형사가 두 번째로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분명히 집을 팔 생각이었다는 말인가요? 

  

  대답을 그렇게 한 이상 망설이면 안 된다. 

  

  -......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명의자인 어머니는 팔 생각이 없었다……? 

  

  채 형사가 무엇인가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듯이 나를 다시 쳐다봤다. 채 형사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지만, 그는 자판을 두드리면서 마치 아우 달래듯 말하곤 했다. 특히 앞뒤가 막히는 이런 대목에선 단호하게 채근하듯 물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신의 재산을 인정하라는 거지요. 가족의 재산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행사할 권리를 요구하였을 겁니다. 평생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평생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라는 사족이 붙었다. 나의 의식은 이 사람이 고의적인 사기 범죄자는 아니겠지만, 가족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형사에게 전달하고픈 모양이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구십사 년도에 이혼하신 걸로 되어 있네요. 

  

  -예……, 그렇지만 여전히 사실혼 관계입니다. 

  

  

  6 

  

  이유야 어찌 되었건 경찰서에서 위장이혼이었노라고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어떻게 끄집어냈는지 사실혼이란 단어는 내가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순발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방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으려 했을망정 아버지의 행패가 꼴도 보기 싫다고 집을 떠난 적은 없다. 법적으로 이혼했으면 남남인데 뭘 그리 연연하느냐고, 차라리 홀가분하게 갈라서라고 자식들은 오히려 그런 어머니를 탓해 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너희들 때문에……'였다. 

  

  내가 아직 군대에 있을 때, 누나의 위문편지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했다는 얘기가 대수롭지 않은 듯 짧게 적혀 있었다. 가족이 흩어져 연명할 때 다행히 아는 분의 도움으로 철거 촌에 얹혀살게 되었는데, 철거가 확정되면서 입주권을 얻게 되었다. 형편상 당연히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이를 통해 호구지책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철거예정지마다 찾아다니면서 명의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세대주 명의를 확보하는가 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이혼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혼이란 것은 주민등록등본에 어머니가 나의 동거인으로 올라야 하고, 어머니를 내 의료보험에 등록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비록 위장일 망정 그 편지를 받았을 때,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진 듯 다행스러워했던 나의 위안을.    

  

  그랬다. 어머니는 술과 여자 빼고 안 해 본 장사가 없었다. 어버이날, 어머니는 오히려 꽃을 팔러 나가셨고, 나의 중학교 근처 골목시장에서 혁대와 신발주머니를 팔기도 했다. 심지어 이불 등속을 지고 아들이 다니는 대학교 앞으로 오신 적도 있었다. 삼류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랬고 나는 어머니가 창피했다. 그리고 머리가 크고부터는 그런 상황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누나는 남자의 무능력에 대한 혐오를 넘어 기피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누나와 얼마 전에 전화통화를 했다. 먼저 경찰서를 다녀온 그날이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아버지를 가장 닮은 누나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가장 우호적인 편이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이 벌을 주셨지. 그중에 가장 괴로운 형벌이 '너희들은 정녕 죽으리라'와 출산의 고통인 줄 알았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살기 위해 땀 흘려 일해야만 하는 노동의 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 아빠는 그게 너무도 힘들고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으로서 그 말에 동감해. 나도 힘들다며 피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언제 가족을 위해 힘들게 땀 흘리는 걸 본 적이 있어? 난 책임지는 아버지를 원했다구. 우리가 언제 돈 못 벌어 온다고 타박한 적 있었냐구? 

  

  -그래. 그건 우리 가족 모두가 원했던 거구. 하지만 어찌 되었건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 아니니? 

  

  -물론 그렇지. 채원이가 아버지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건 상상에서조차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채원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데,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아버진 아버지라는 명백한 공리(公理)를 어쩔 수는 없겠더라구. 게다가 그건 자식이 선택할 문제도 아니니까. 

  

  -그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우리 가족에게도 또 너에게도 좋은 일일 거야.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문제는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이냐 하는 점이라구.  무조건 낳아 줬으니 그래도 애비다라고 만 하면 되는 건 아니잖아. 아버진 언제나 나에게 부정(否定)의 대상이었어. 나라면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없겠거든……. 그 사람은 아버지라 불릴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네 맘 알아……. 하지만 우리가 자격을 따져서 부모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잖아. 자격이 없다고 부모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격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야. 지금도 나와 채원이에게 까지 이어지는 삶의 구속에 대한 문제라구. 그 사람은 자신의 세계에서 혼자 살지만, 난 그 사람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꼼짝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왔어. 그래서 난 이미 군대에 있을 때부터 내 인생은 유전(遺傳)도 아니고, 더 이상 애비의 아들도 아니라고 단절을 선언했다구. 

  

  통화는 오래 나누었지만, 대화는 맴돌았다. 누나는 기도하자고 했고, 너는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했다. 난 그 크신 아버지도 내가 찾을 땐 대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아파트 복도로 나가 담배를 빼어 물었다. 뭔가 생각해야 할 것만 같은데 아무 생각도 떠올라주지 않는다. 담배연기 마냥 머릿속도 하얗다. 그저 배설 후의 기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7 

  

  -그러니까 부동산에서 확인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명의도 없는 사람이 팔겠다는 아파트를 덥석 계약금까지 넘겨받고 이제 와서 사기라고 한답니까? 

  

  채 형사의 말에 의하면 매수인은 근처에 있는 여자중학교 교사 부부라고 했다. 별 관심 없이 들어서 남편이 교사인지 아니면 여자 쪽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쪽도 어지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축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물었다잖아요. 아버님 집이 맞느냐? 정말 팔려고 하는 거냐? 나중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 

  

  -아니 그럼 매물을 내놓는 사람이 그런 질문에, 아니요, 제 집도 아니고 문제가 있는 집인데 사주실래요 라고 하겠습니까? 부동산에서 철저히 확인했어야죠. 그런 거 하라고 정부에서 허가해주고 복비 받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도의적으로나 상황논리로 보거나 명분 없는 싸움이기에 끝까지 부동산을 물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채 형사도 이미 정답을 가지고 조서를 꾸미고 있을 것이고, 이따위 진술이 결과에 영향을 주진 않을 터이다. 나 역시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경찰 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것도 이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벌써 계약금은 써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사기 친 돈 내놓으라고, 혹시 남기나 했느냐고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령 쓰다 남았어도 뒤처리 비용으로 내놓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모든 짐은 어머니의 몫이다. 지난해 나를 고소했을 때도 어머니는 아파트의 실소유권을 인정해 준다는 각서를 써주고 겨우 고소를 취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사태는 내게 원죄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작년의 그 원죄를 갚으러 온 것이다. 

  

  -그러면 공탁을 거세요. 

  

  -공탁이요? 

  

  회사 동료에게 일이 있어, 합의를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공탁금이란 게 쓰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공탁금이라면……, 얼마 정도 있어야 하죠? 

  

  -보통 삼사백만 원 정도 하는데, 어디 보자 저쪽에서 계약금이 칠백만 원이고, 이쪽에도 하자가 있으니까……, 한 사백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것이 채 형사의 복안이었다. 부동산에서는 어차피 두 달 영업정지를 피할 수 없는 바에 뭐 밟은 셈 치고 빨리 끝내자는 쪽으로 맘을 굳혔다는 귀띔이 이어졌다. 그렇게 된다면 교사 부부의 계약금은 결국 공탁금을 수용한 부동산에서 물어주게 될 것이고, 이 사람은 어머니의 사백만 원을 들여 칠백만 원짜리 베팅에 또 한 번 성공할 것이다. 

  

  

  8 

  

  경찰서를 나서서도 피차 말이 없다. 애써 건넬 말도 또 들을 말도 없다는 듯 엇비슷하게 걷고만 있다. 버스정류장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추며, 겨우 혼잣말하듯이 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마을버스…… 를 타면, 은행사거리까지 갈 수 있겠네. 

  

  이 동네에서만도 몇 년을 살았는데 버스노선을 모를까. 딴생각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기대를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아……, 예서 글루 가나? 난 들를 데가 있어서…….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웃기지 말라는 건지, 쉰 소리로 와줘서 고맙다는 말만 한 번 더하고 건널목 앞에 버텨 선다. 그가 들러야 할 곳이 어딘지는 말하지 않아도 오감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어제 아파트 경비를 서고 오늘 하루 종일 경찰서에서 시달린 예순여덟의 이 사람은 이 순간에도 가족이 바라는 대로 할 용기가 없다. 희망을 가져 볼 용기가 없다. 

  

  희망이란 바라되, 갖지 못한 자의 몫이다. 그런데 바랄 것도, 가질 것도 없는 사람에게 희망은 무슨 의미일까. 아니 그보다, 살아갈 의지와 희망을 놓아버린 사람에게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희망은 가지려는 자 보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바라는 것일 수 있다는 역설이 역겹다. 

  

  나 역시 건널목 앞에 선 그를 말리지 않는다. 바라는 것과 상관없이 삶은 그냥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재의 끈은 내가 잡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희망을 꿈꾸어 본다. 단순히 내가 물려받은 염색체와 여자가 물려받은 그것의 조합만으로 다음 세대의 형질이 결정된다고 치부하기엔 삶이 너무 궁핍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그랬듯이, 나의 선택에는 아이들의 의지가 반영되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내 몫의 삶을 살면서 변화를 잉태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부단함이 단 일 퍼센트만이라도 딸아이의 유전형질로 형성되어진다면, 난 오늘도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물려받은 헛된 것들이 딸아이에게 대물림 하지 않도록 오늘도 단절을 시도할 것이다. 그것을 믿고, 그래서 견뎌낼 수만 있다면 시간은 어떤 형식으로든 맺혀 있던 것들을 변화시켜 줄 것을 믿는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아버지는 건널목을 포기하고 아파트 담장의 개나리를 지나고 있다. 찬바람이 꽃무리를 휘젓고 지나간다. 철없는 날씨는 저 꽃을 이기려고 하는 걸까?    

  내 코트도 벗어야겠지만, 저 꽃도 조만간 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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