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반
이 나이에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 앉았다.
물론 거기에서도 딱히 개기지는 못하고
투덜대고 따지고 황망해하다 결국 깨어났다.
도대체 어떤 현실의 요소가 무의식 세계를 침범한 것인지,
프로이트의 해석에 대한 알량한 지식이나
인터넷 꿈 해몽에 기대어 볼 것도 없이
악몽임에 틀림없다.
며칠 전 신병교육 마쳤다는 상수 아들 성준이 때문은 아닐 테고,
그나마 생각이 끌리는 건
무엇인가 어떤 상태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혹은 공포가 아닐까 싶다.
이왕 잠이 깨어버린 김에, 이불을 걷어내고
일 층 소파로 내려와 앉아서 곰곰이 헤아려 본다.
도대체 그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랏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우리 가족의 상황일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당장 유가(일주일 내내 유튜브만 보다가 끝나는 휴가) 끝나고
복귀해야 하는 회사가 군대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일절 개기지 않는 숙맥
청맹과니에 귀머거리이니
그 또한 그리 타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꿈속에서는 거의 환갑 바라보는 나이에 스무 살 애들에게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던 걸 떠올리면,
육십갑자 한 바퀴 돌아오는 삶의 궤적에 대한
소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는 어쩌면 다시 읽고 있는 토지 때문일 수도 있겠다.
처음 읽었을 때는 소설의 방대한 양과 장엄한 시대의 넓이에 질려
그 서사를 쫓아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십 년 만에 다시 접하는 토지에서는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회한과 삶의 질곡이 슬며시
엿보이기 시작한다.
어제는 호열자로 죽은 강청댁이 용이네로 시집오던 때,
한 움큼 쥐어 보여주던 할미꽃 대목에서 감정이 터져버렸다.
나는 그러고도 계속 용이, 길상이, 서희, 봉순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간도와 서울, 지리산과 진주며 부산을 떠도는
수십 년의 인생을 목도해야만 한다.
다시 보니 분명 선생의 대단한 필력이긴 한데
그런데 비단 그뿐이었을까.
돌아간다는 생각 끝에는 어쩔 수없이 삶의 마지막 순간도 포함된다.
그 주체가 나 자신일 수도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일 수도
다른 어떤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돌아갔다'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지나갔다'에 가깝게 쓰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돌아간다'라는 것과 '지나간다'라는 것의 차이는
굳이 직선적이니 윤회적이니 하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지만 '간다'라는 술어가 일러주듯이 방향이 다를 뿐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나이란 말인가.
하기야 지천명의 오십 대에 훌쩍 접어들고 보니
나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건 아니지만,
지난 시간 속에서 아우성쳤던 많은 나의 목소리들이
꽤나 개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는 한다.
어제 아침에도 양치 중에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자식들이 나처럼 살면 어때서?'
아이들의 삶은 분명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네들이 헤엄칠 바다는 내가 지나온 세상과는
다른 바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다를 헤엄칠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의 말(言)을 주고자 했다.
그네들의 세상에선 그것이 가장 강력하거나 아니면 꼭 중요한
무기 혹은 연장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바다를 뒤로하고
또한 나의 바다를 뒤로하고
아이들의 바다를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
이것이 캐나다까지 나와 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커튼 사이로 미명이 스며드는 것을 보니 이제 동이 트는 모양이다.
도대체 왜 다시 군대로 끌려가게 되었는지는
속시원히 정리되지도 못했지만
어차피 찾아질 해답도 정리될 주장도 없는 시작이었다.
물론 아침에 집사람에게 꿈자리를 얘기하면
피식 웃고 넘기고 말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란 걸 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군대뿐 아니라 이십 대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 또한
나에게는 악몽인 것을.
출근을 위한 마지막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돌아가야 하는 시간....
어즈버! 일상이란 것이 나에게
군대와 같은 악몽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