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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Aug 09. 2023

인생은 언제나 길 위에 있고

컴필레이션 - 하이웨이 스타, 그리고 너를 위해


하이웨이 스타 Highway Star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라디오에서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가 흘러나온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쭈~욱 뻗은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그래 이 맛이지! 외치며 비로소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내 차 라디오의 고정 스테이션에서는 한국에서는 찾아 듣기도 힘든 추억 속의 팝과 락이 언제든지 터져 나온다. 어려서부터 AFKN과 FM 라디오를 통해 팝송과 락음악을 들어온 지라 캐나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호강이라며 만 7년을 보냈다.


너를 위해


집으로 돌아와 밀렸던 설거지를 하면서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더니 내미가 진저리를 친다. 한때 노래방 가면 모든 남자들이 불러 젖히던 노래라고 설명하다가 아뿔싸 여기 라디오에선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을 수 없으니 딸내미는 모르는 노래다. 그나마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건 한때 가뭄에 콩 나듯 나오던 BTS 뿐이다. BTS는 국뽕을 가장한 향수였다는 걸 7년 만에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군밤타령


캐나다에 살지만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미국이나 캐나다 뉴스를 보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한국 기사에서 그 모자란 부분을 짜 맞춘다. 명절이나 절기도 한국 뉴스로 봐야 실감이 나고, 때때로 일기예보를 보며 서울 사람들 우산 챙길 일을 걱정하기도 한다. 어제는 한국 뉴스에서 정월대보름을 얘기했고, 여기선 오늘이 그날이다. 중국 사람이 많아 캐나다에도 음력설은 있지만 우리의 그 설은 아니다. 날씨나 확인할 겸 TV를 틀었더니 아침 방송 일기예보 배경음악이 귀에 익숙하다. 군밤타령이다. 연평 앞바다에 어허라얼싸 불던 돈바람이 밤새워 캐나다까지 달려와 에헤라 귀를 호강시킨다.


달무리


아침에 한국에 계신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거기도 땅콩이 있냐며 대보름달이 이쁘게 떴으니 올해도 건강하고 운수대통하라 신다. 저녁 무렵, 엄마가 올려다보았을 그 달이 지구를 반바퀴 돌아 지금쯤이면 도착했을까 싶어 뒷마당을 기웃거리는데 맞닿은 담장 너머로 북적거리는 인기척이 있다. 호기심에 까치발로 넘겨보니 중국에서 이민 온 뒷집 남자가 전통 복장을 입은 그의 부인과 함께 향을 피우며 꽤나 부산스럽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대보름은 중화권에선 공통으로 치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정월대보름이면 쥐불놀이에 부럼을 깨며 내 더위를 팔아야 하는데 올여름은 코로나부터 팔아버려야 하지 않겠냐며 하늘을 보니, 밝게 온 세상을 비추던 보름달 주변으로 달무리가 졌다. 국민학교 육 학년 담임 선생님은 가곡 달무리를 가르치며 하늘에 달무리가 지면 이튿날 비가 온다고 말씀하셨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음악과 과학을 한 방에 가르치신 이른바 컨버전스에 능하신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겨울비는 내리고


이튿날 아침, 모처럼 토요일에 출근하는데 달무리 때문일까 역시나 비가 온다. 비처럼 음악에 제대로 녹아내리는 장르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네 정서가 겨울비에 대해서는 더욱 각별한 것 같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는 우울한 하늘과 일 월의 노래이고, 보낼 수 없는 내 님이 떠나려 할 때도 겨울비는 내려와 머리를 적신다. 그런데 한 겨울 추위가 풀리면서 기온이 어설프게 영하권에서 머무르는 날이 많은 이맘때쯤, 캐나다에서는 가장 조심스러운 기상현상 중에 하나인 프리징 레인 Freezing Rain이 내린다. 대기와 지표면의 기온 차이 때문에 빗방울이 지표면이나 지표면에 가까운 물체에 닿으면서 얼어버리는 얼음비라는 현상이다. 보기에는 예쁘고 환상적인데 그 속에서 걷거나 차를 타거나 아무튼 이동을 하려면 엄청 조심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런 날은 학교도 쉰다. 다행히 비가 그치면 대부분은 그렇게 비(액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음(고체)도 아닌 채로 있다가 몇 시간 안에 녹아서 사라진다. 아무튼 캐나다에서 어설픈 날씨에 겨울비가 내리면 바보 같지만 움직일 생각 말고 집에서만 우뚝 서있어야 한다.


노벰버 레인 November Rain


겨울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특히 우리에게 건즈 앤 로지스 Guns & Roses의 노벰버 레인 November Rain은 매우 독특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그 이유로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느끼는 특별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 노래는 사기다. 우리에게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인만큼 일 년 중 가장 건조하고 가문 계절이다. 그래서 십일월이라는 그룹 이름도 그렇듯이 11월에 내리는 비는 뭔가 애매하고 드물고, 겨울인가 가을인가 싶기도 하고, 때늦은 비처럼 오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진 것 같고,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는 것 같고, 바위처럼 단단할 것 같았던 우리의 사랑이 무슨 일인지 갑자기 모래처럼 흩어져내리는 것 같고 그런 정서가 있었다. 그런데 웬걸 캐나다에서 살아보니 11월은 온통 비가 내린다. 시월의 마지막 날인 핼러윈을 전후로 날씨가 궂어지기 시작하면서 11월 들어서는 거의 한 달 내내 비가 온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굽굽하고 우중충하고 짜증 나는 날씨의 연속이다. 그때 알았다. 한국에서 지니고 있던 정서적 분위기는 내가 만든 짝퉁이라는 걸. 11월의 비는 그렇게 어쩌다 내리는 비 또는 오지 말았어야 하는 비가 아니다. 일상적인 비다. 


크림슨 앤 클로버 Crimson & Clover


그런 게 또 하나 있으니 크림슨 앤 클로버 Crimson & Clover란 노래다. 하얀색이 아닌 크림슨 색의 클로버라니 중고등학생이었던 당시에는 뭔가 특별한 의미와 상징이 담긴 비유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처음 캐나다에 오던 해, 아들과 집 앞 공터에 나갔더니 클로버가 지천에 널렸는데 그게 다 진분홍색이었다. 특별하거나 새삼스럽거나 생경스럽거나 보기 드문 일이 아니라 우리가 '아, 노란 개나리가 폈네.' 이런 거와 다르지 않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 꺾어 드리는 분홍 진달래 같은 거다. 그러니까 이 노래도 그냥 일상에 있었던 진한 그리움과 추억에 대한 노래라는 점을 정서적 배경에 깔고 들어야 한다. 글쎄 뭐랄까, 지금 내가 서리서리 넣어두었던 오래된 추억을 구뷔구뷔 꺼내 펼쳐놓듯이, 지금의 내 모습 또한 저 크림슨 빛깔의 클로버 꽃망울에 송이송이 맺혀 있게 될 것이다.



본 투 비  와일드 Born to be Wild


아무튼 오후가 되어서 프리징 레인이 잦아들고, 퇴근길 라디오에서는 슈퍼트램프 Supertramp의 '테이크 더 롱 웨이 홈 Take The Long Way Home'에 이어 스테픈울프 Steppenwolf의 '본 투 비 와일드 Born To Be Wild'가 흘러나온다. 가수는 야생에서 태어났다고 노래하는데, 캐나다에서 야생이란 게 나에게는 그저 너른 들판에서 일하다 벌겋게 햇볕에 목덜미 달궈진 농부 이미지뿐이다. 그래도 이런 노래를 한국에서 들을 수 있겠냐고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손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유튜브에서 찾는다. 토요일 오후, 도로에 오가는 차량은 드물고, 마침 한적한 외길, 그리고 우리 노래는 확실히 따라 부르기에 찰지다. 경찰이 있다면 잡혀갈지도 모를 만큼 볼륨을 높이고, 나가수가 되어 고래고래 목청을 키워본다 -실제로 퀘벡주에선 음악소리가 너무 크다고 운전자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지간히도 민폐를 싫어하는 바, 교차로 신호대기 중에 볼륨과 함께 목소리도 낮추었는데, 어쩐 일인지 뒤따라오던 양머리 문양의 픽업트럭이 차선을 바꿔 내 옆에 나란히 선다. 흙 묻은 픽업트럭의 수염 기른 젊은이는 눈이 마주치자 웃는 표정으로 엄지 손가락을 한껏 치켜세운다. 야생에서 태어난 것 같은 젊은 픽업트럭 맨은 나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읽은 것일까. 그걸 지켜보다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 걸까. 아니면 목청껏 불러 젖히던 노래가 들렸을까. 설령 들었어도 그는 이 노래를 모를 테니 상처보다 깊은 나의 전쟁 같은 사랑 또한 모를 것이다.


프리버드 Free Bird


신호가 바뀌자 픽업트럭 맨이 거칠게 나를 앞질러 가는 걸 보니 그의 엄지 손가락은 나의 노래 때문이 아니라 내 차의 속도 때문이었나 보다. 인생에 속도가 중요할까 싶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속도보다는 방향이었다. 모두가 눈 주위를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한 방향으로 달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완전히 바닥을 뒤집어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그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 나의 방향을 캐나다로 이끈 노래는 분명 레너드 스키너드 Lynyrd Skynyrd의 '프리 버드 Free Bird'였다. 구로디지털단지 정류장에 앉아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밤하늘엔 둥그런 달이 구멍처럼 뚫려 있었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프리버드가 나를 그 구멍 속으로 날아오르게 했었다. '만약에 내일 내가 떠난다면 당신은 나를 기억할까. 자유로운 새처럼 높이 번 날아보지 않을래?' 그날 맹목적으로 달리던 인생의 속도를 멈추고 방향을 돌려세웠다. 처음처럼 시작하기엔 왠지 캐나다가 괜찮아 보였다.


(벝) 아이 스틸 해븐트 파운드 홧 아임 룩킹 풔 (But) I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저만치 앞서 가는 픽업트럭을 쫓을 생각은 없다. 멀리 야생으로 나서야 하는 젊음을 상대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거의 집에 다 왔을 무렵, 라디오를 다시 틀었다. 하필 유투의 아이 스틸 해븐트 파운드 홧 아임 룩킹 풔가 나온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그랬으니 너희는 그러지 말라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다면 열정적으로 한번 도전해 보라고 얘기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항상 검지도 희지도 못했고,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못했으며, 마치 프리징 레인처럼 얼어있는 것도 그렇다고 녹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문득 유투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식상한 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예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생은 길 위에 있고,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나는 길목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이 가볍고 상쾌한 솜털 구름같이 느껴지면 살이 쪘고, 반면에 이 질문이 힘겹게 짊어진, 수고하고 무거운 짐같이 느껴지면 언제나 살이 빠지곤 했다. 그리고 나의 시간엔 대부분 비쩍 말라있었다. 순간, 유레카! 이틀에 걸친 끄적거림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살을 좀 뺄 때가 되었나 보다.



음악은 이미지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형태의 소스로 저장되었다가 재생될 때 다시 그 공감각적 형태로 기억을 소환한다. 우리는 이름하여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고, 나에게 추억은 음악을 틀면 활성화되는 이미지 파일들로 저장되어 있다. '그 남자의 음악다방'에서는 음악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추억의 이미지를 통해 소시민적 삶의 단면을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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