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찬이의 혜화동에는, 그곳에서 한 번도 살아 본 적 없는 내가 살고 있다.
"(창경원 옆) 시립 박물관 마당에 전시된 전차 안에서 그날 밤을 새웠어. 저 멀리 동숭동 고갯마루에 불빛이 우리 집 같은데 뭐가 그리도 서러웠는지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난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 이튿날 엄마한테 죽어라 맞았지. "
대학로에 위치한 동성 고등학교 출신의 태경 선배에겐 혜화동과 동숭동에 얽힌 추억이 많다. 그래서 복학생 시절, 자취방에서 술 한 잔 기울일 때면 안주 삼아 추억 한토막 던져놓고는 컥컥 잠기는 목소리로 동물원의 혜화동을 읊조리곤 했다. 하지만 동물원의 혜화동이 거기, 선배의 혜화동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 희찬이는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으면 캐나다에 사는 나를 떠올린다고 한다. 희찬이의 혜화동에는 그곳에서 한 번도 살아 본 적도 없는 내가 살고 있다.
동물원의 혜화동은 잔잔한 포크송이지만 그 정서적 폭발력은 엄청나다. 아마도 노랫말이 지닌 보편적 정서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지니고 있을 법한 그러한 정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보편성이 틀림없지만 그러한 보편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에 맞닿아 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자고 하면 우리 모두는 종로를 떠올리고, 오륙도 떠나가는 연락선이라고 하면 누구나 부산 앞바다를 떠올리지만, 혜화동을 들으면서 정말로 김창기가 친구를 만나러 찾아 간 종로구 혜화동을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자신만의 기억 속으로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달려간다. 이 노래에는 저마다 지니고 있는 오래되었음직한 어떤 기억을 소환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혜화동은 그렇게 전축 바늘처럼 가느다란 저마다의 기억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든다.
혜화동
동물원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 덜컹 거리는 전철을 타고 세상 밖으로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전철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가장 크고 시끄러웠던 객실과 객실 사이의 차량 이음새 부분에는 창이 없어서 밖을 볼 수는 없지만 밑은 볼 수 있었다. 말표 운동화를 신은 발밑으로 매우 단단해 보이는 검붉은 철교와 그 아래로 한강수가 흐르고 있었다. 둘러 쳐진 찢어진 가림막 사이로 얼핏 지나치는 중도의 모습도 보았던 것 같다.
그날은 친구들과 동대문에 있던 실내 수영장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기억한다. 기차나 전철도 처음이었다.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터라 어린 나이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기도 했을게다. 하지만 누구와 함께였는지, 정말 수영을 했는지도 자신이 없다. 영등포구 개봉동(지금은 구로구지만 예전엔 영등포구였다)에서 동대문이라니 거의 서울의 끝에서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는데. 보호자 없이 열두어 살 아이들끼리만 나선 길이었다.
양말 춤에 곗돈을 숨겨서 신촌까지 심부름도 다녔으니 혼자 길을 나선 게 처음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닿지 않는, 멀리 있는 어딘가를 향해 홀로 떠났던 첫 번째 기억으로 남아있다. 태경 선배의 가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경험은 종종 홀로서기, 자유, 더러는 새로운 출발 따위로 포장될 법도 하지만, 왠지 그저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이 구절에서만 반응하는 단편적인 기억일 뿐이다.
하지만 혜화동이란 노래는 그렇게 단편적이지 만은 않다. 혜화동은 3차원의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이 더해진, 말하자면 시공간에 대한 노래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오래된 친구, 떠난 지 오래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묻어난다. 그러니까 지나치는 시간 속에서 막역하게 멀어지고 사라지고 스러져가는 시공간과 그것에 대한 그리움의 얘기인데, 이상하게도 그 그리움의 주인공은 언제나 내가 된다. 그 이유는 멀리 떠나는 친구를 만나러 전철을 타고 오랜만에 옛 골목을 찾아가는 길, 그 길에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삶이 있고, 저마다의 혜화동을 만나기 때문이다. 멀리 떠나는 친구도, 그를 찾아가는 친구에게도.
|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혜화동이 있다
아무렴 누구나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이 하나쯤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상도동, 누군가에게는 팔판동, 누군가에게는 오류동, 누군가에게는 만수동이나 염리동, 그리고 나에게는 광명리가 혜화동 골목이었다. 물론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드넓었던 골목은 다시 찾아가 보면 여기서 어떻게 그리 뛰어놀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좁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이 또한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지만 이미 연로해지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의 그 골목에 들렀던 적이 있다. 운동장만큼 넓지는 않았어도 축구도 하고 다방구, 술래잡기, 오징어 이상까지 못할 게 없었던 그 골목. 역시나 다시 가 본 골목은 중형차 한 대조차 제대로 지나가지도 못할 만큼 좁은 길이었다. 끝없이 길고 멀었던 골목과 골목도 몇 발자국 코 앞에서 끝나고 이어지고 있었다.
기억을 거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 골목이 형성된 동네 구조는 변하지 않아 서로의 기억을 더듬어 위치를 찾아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몇몇 대문에는 새로 바뀐 주소 밑에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예전 번지수가 있었다. 158-7번지. 어머니에게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는 골목이었겠지만, 우리 삼 남매에게는 기억의 가장 먼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스탤지어의 골목이다.
그때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그러니까 요샛말로 홀로그램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랫칸에 세 들어 살던 신자네, 창문이 우리 집 마당 수돗가와 붙어 있던, 우리 누나를 좋아했던 양수네, 이번엔 우리가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왕렬이네, 중학생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중경이가 일하던 청과물 상회, 내 동생이 쏜 새총에 눈이 맞아 온 동네가 난리가 났던 형제 닭집네 형제, 오십 원짜리 쌍쌍바, 쮸쮸바로 가오 잡던 우리 상회(골목에서 권투 하다 내 코피를 쏟아내게 한) 종필이. 그들도 모두 어디선가 어떻게든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골목에서 오래전, 내가 동생을 안고 찍었던 사진처럼 지원이가 승원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러니까 아래 그림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두 세대의 사진이다.
이후로 가족사진을 이렇게 시공간을 교차하는 형태로 찍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결혼 10주년 기념 유럽여행이다. 신혼여행에서 10년 후 아이들이 생기면 함께 다시 오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여행을 떠났었다. 그리고 신혼여행 사진에 있는 그 장소 그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다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둘이었는데 이제는 넷이 되었다면서.
| 멀리 떠나는 친구가 되어 다시 혜화동을 다시 틀다
한동안 그렇게 떠나보내는 그리움의 노래로 여겨오던 혜화동이 어느 순간 정반대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그렇게 말하는 친구가 바로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친구 희찬이가 나를 자신의 혜화동에 살게 만든 이유다.
갑자기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민이 결정되고 온 가족이 비행기에 오르는데 두 달하고 달포 밖에 걸리지 않았다. 느닷없이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내일이면 멀리 떠나게 됐다고. 다행히도 마흔 중턱에 이르러 장가를 드는 친구 덕분에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오랜 친구들을 만나보고 떠날 수 있었다. 혜화동은 그렇게 나에게는 떠나온 그리움이 되었고, 희찬이에게는 떠나보낸 친구의 그리움이 되었다.
'그래 나에게도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한달음에 달려와 준 그런 친구들이 있었지.' 노래는 향수를 부르고 또 위안을 낳는다. 그리고 그건 침잠하는 정신에 위로가 되고 살아가는 육신에 힘이 된다. 오늘도 나는 '잊고 지내던 친구 혹은 내일이면 멀리 떠난 친구'가 되어 동물원 2집 앨범을 턴테이블에 얹었다. 역시 혜화동은 비닐(LP)로 들어야 제 맛이다. 아마도 혜화동은 아날로그 감성에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모양이다.
| 그들은 과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났을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당신과 나의 혜화동
떠나든 떠나보내든 혜화동은 해원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임에는 틀림없다. 턴테이블 바늘이 일으키는 향수를 쫓으며 지나간 시간과 오래된 친구, 그리고 그런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고 반추하는데, 문득 노래 후반부에 이르러 궁금해진다. 그들은 과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났을까, 아니면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다시 만났을까.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노래, 보내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그 순간순간의 과정과 삶의 시간이 녹아서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재의 노래가 아닌가 싶어졌다.
어즈버 비로소 동물원의 혜화동은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과정으로써의 현재의 노래, 그리고 과정으로써의 미래의 노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혜화동은 어제의 그리움만이 아니라 약속했던 미래의 어떤 그날을 위해 어제를 떠나보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와 당신의 노래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덜컹거리는 전철에서 홀로서기를 배우던 열두 살 소년이나, 쓸모없어진 전차 안에서 눈물로 다짐하던 한 아이의 새로운 출발과 미래에 맞닿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終>
음악은 이미지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 뿐만 아니라 공감각적 형태의 소스로 저장되었다가 재생될 때 다시 그 공감각적 형태로 기억을 소환한다. 우리는 이름하여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고, 나에게 추억은 음악을 틀면 활성화되는 이미지 파일들로 저장되어 있다. '그 남자의 음악다방'에서는 음악에 얽힌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추억의 이미지를 통해 소시민적 삶의 단면을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