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당근의 두려움

by 주비


"그래도 직장 열심히 다니시려고 치료받는거 아니세요?"

"네...뭐"

"퇴사하고나선 뭐하시려고요?"

"글쎄요"

"그래도 뭐할지 준비는 해놔야하지 않을까요?"



야근으로 심해진 목과 어깨 통증 때문에 도수치료를 받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참, 도수치료사에게 훈화 말씀을 듣다니. 목 디스크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없이 우울했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목 디스크라니.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적에도 매한가지였다. 홀리데이는커녕 끝없는 워킹데이였다. 나는 늘 느릿느릿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쫓기듯 잰걸음을 놓았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더 힘겹고 버거웠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 맞아? 이토록 삶이 우울하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절망스럽다.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근 후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집 앞 마트 좌판에 놓인 채소들 사이로 당근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호주에서 레일 위로 쏟아지는 당근들을 분류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레가 깨물어 먹지 않은 단단하고 선명한 주황빛의 최상급 당근부터 여기저기 갉아먹히고 멍들고 푸석해 착즙 주스로 쓰이는 최하급 당근까지. 어떤 것은 혹이 3개 달려있기도 하고, 하트 모양, 동그란 모양, 고구마 모양 등 가지각색의 당근이란 당근은 다 있었다. 그래도 매대를 차지하는건 언제나 반듯하고 빛깔 좋은 최상급 당근뿐이었다. 그러나 최상급 예쁜 당근이 아니라 하여 이 제각각으로 못난 놈들을 당근이라 부르지 못할까? 하트 모양 당근인거고, 혹 3개 달린 당근인거지.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모두 다른 모양인데, 나는 왜 유독 최상급 당근이 되려 애를 쓰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걸까.


문득 겁이 났다. 세월이 흘러 고작 주스로만 쓰일 초라한 못난이 당근으로 남아있으면 어쩌지. 항상 그랬다. 나는 늘 그 불안감에 사로잡혀 꼼짝 못한 채 살아왔다.

한 달, 두 달, 세 달… 어느덧 회사에 다닌 지도 반 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마다 굳어진 내 표정, 내일도 똑같은 날의 연속이구나, 하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그러던 어느 출근길, 나는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으셨다구요?' 그저 일을 다할 뿐인 응급실 의사의 무심한 물음일 뿐인데도 나는 애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출근길은 물론, 업무중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과 어지러운 증상이 잦아졌다. 결국 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미래가 오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내며 살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치료를 받으며 이전처럼 '시간이 약'이라는 절대적 해답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다행히 무기력에 짓눌리던 몸이 차츰차츰 가벼워지는 듯했고, 조금씩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호등이 막힘없이 푸른 불로 바뀌고, 지하철도 마침 딱 맞춰 도착하는 날. 사소한 우연들이 기분을 끌어올려 오늘은 운동이라도 해볼까 하는 긍정적인 결심까지 닿게 되는 날. 오늘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내 결심은 퇴사였다.

누구는 한강뷰 아파트에 산다더라, 누구는 어디서 결혼했다더라. 이러쿵저러쿵 들려오는 소식들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심란했다. 서울에서 번듯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딸을 자랑스러워할 엄마, 고생은 뼈빠지게 하면서도 선배에게 인정받고 후배에게는 똑부러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 당장 버겁기만 한 현재의 삶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 집 계약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노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어른이 된 지 한참인데도 감당하기 벅찬 마음들이 한데 모였다. 그렇게 단순한 두 글자, 퇴사라는 결심에 닿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지나왔던가. 결국 나는 오롯이 나 하나만 믿어보기로 했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0화평온함을 무덤 속으로 느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