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는, 세상 가장 조용한 곳의 너를 위하여.
[알림]
허리 부상의 회복이 더딘 바, 체계적(?) 관리를 위해 재활조로 합류함. 현재 상황으로는 정확한 회복시기를 추정할 수 없음. 재활의 특성상 남는 것은 시간이요, 생각과 마음은 바쁘고 시끄럽기 충분하니 그로 인해 수없이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한데 모아모아, 이곳에 남김.
쿠키 하나.
하늘이 무심하진 않더라. 마침 소재가 똑 떨어지니, 아팠던 허리가 다시 말썽을 일으키고. 한참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근래 들어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이리도 적당한 핑계를 몸이 알아서 만들어주니,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마음이 그나마 좀 가벼웠지. 회복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몇 달간 놓쳤던 너와의 대화를 이어가는 일이다. 물론, 대화라기엔 다소 일방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뭐, 어때? 우리가 만날 땐, 내가 많이 듣잖아. 여긴 네가 솔깃 듣기만 해도 괜찮은 곳이야.
쿠키 둘.
그 사이 너에게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지? 시즌을 치르면서 기대만큼이거나 혹은 기대에 못 미칠 만큼, 그럼에도 너는 거기에 있었지. 그라운드에 반짝이는 구슬땀을 한 땀, 한 땀 꿰어내면서. 내가 종종 말하지? 대단해, 대단하고도 정말 놀라워. 그토록 고단한 보물찾기를 이토록 무수히 반복해 내는 너의 그 위대함과 놀라움을 나만 알기 너무 아쉬워 널 불러 세웠건만, 내 어휘력으로는 충분히 표현할 방법이 마땅찮네. 그러니 이해해. 기껏 한다는 말이. 고생했어, 푹 쉬어! 뿐이라 해도.
쿠키 셋.
사과 하나 할게. 혹시 지금 노력한 만큼 경기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랬던 경기가 있었다면 그건 전부 내 탓이야. 모든 스포츠 팬들이 그렇듯, 맞아. 내가 경기를 챙겨보고 있거든. 이제는 '다시보기'로만, 라이브는 손도 안 댈게. 그러니 앞으로는 안심하고 경기하길 바라. 미안했다.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그만. 이제부터는 더 잘 될 거야. 그... .... 문자중계는 괜찮겠지?
쿠키 넷.
가끔 사람들이 물어. 멘탈코치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게 뭐냐고. 그때마다 나는 외쳤지. 이것도 힘들구요! 저것도 힘들어요! 마치 나는 이만큼 어려운 것들을 이겨내고 있다구요, 그걸 알아주세요! 징징. 젠장, 누가누가 더 군생활이 빡쎘나, 누구누구 삶이 더 고달픈가 따져보자는 것도 아니고... .... 참, 웃기지도 않은 짓을 하고 다녔지 뭐야. 솔직히 어디서도 말하지 못한, 가장 힘든 점은 이거야. 나는 멘탈코치라 불리기엔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내가, 또 어쩌면 너도, 알고 있다는 것.
쿠키 다섯.
재활이 끝나면, 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어. 지금 나를 관통하고 있는 경기(나에겐 코칭이 되겠지) 감각과 경력의 상실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거든. 빌어먹을. 9월이 코앞이야. 이곳을 통해 너와 함께 올 시즌을 치러보겠다는 내 야심 찬 계획도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아들래미는 아빠가 버젓이 집에 있음에도 또 아빠 없는 운동회를 치르겠지. 그럼에도 지긋지긋한 이놈의 재활을 끝냈을 때, 내가 이 일을 계속한다면 아마 그건 너 때문일 거야. 그래, 순전히 네 덕분일 거야.
맛없는 쿠키는 입에 넣지 말고, 쓰레기통에 넣기.
맛있는 쿠키는 혼자 먹지 말고, 같이 먹기.
밋밋한 쿠키는 더 맛있게 구워내 주기를.
내게서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 것들이 너에게로는 조금만 더 말랑하기를.
우리 조금만 힘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