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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쟁이 Apr 18. 2024

가속, 노화 중 입니다 (2)

(2) 인식의 한계

인식의 한계는 행동의 한계를 결정한다. 서울촌놈이 지방에는 스타벅스가 있나?라는 농담 섞인 질문을 하면서, 서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관성을 가지는 것이 쉽고도 대표적인 예시다. 이에 삶이 우리 인식의 기준점이라면, 우리는 현재 내 삶의 경계를 벗어날 수 없다.  


어릴적 우리는 수많은 상상을 통해 생각을 발전시켰다. 허무맹랑하지만 아이언맨 등이 마치 내 옆에, 우리 사회 속에 실존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점차 공부, 성적, 경쟁 등이 우리의 삶에 밀려들어온다. 그래도, 우리에겐 삶과 분리된 우리의 자아가 있다. 시험과 경쟁에 노출되지만 친구들과 함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마시는 술이나, 내일의 일이 급한데도 꽃이 피니까, 날이 좋으니까라는 핑계를 대면서 놀러나가는 낭만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다 점차 낭만을 잊어버린다. 내일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 몸을 생각하며 술을 멀리하고, 사회인으로서 프로의식을 보여야만 하기에 내일의 일에 더욱 완벽을 기한다.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투쟁한다. 물론,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고 사회라는 정글에서 생존하는 모든 개인들은 존경의 대상일 따름이지만, 그들에게서 낭만과 상상은 탈각되고 그들의 인식은 현실적 삶과 동면의 양면처럼 달라 붙게 된다.


더 이상 내 삶을 넘어서는 것들을 상상하기도, 생각하기도 어려워 지는 것이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비트겐슈타인




이에 오래전부터 철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삶을 넘어서는 것들을 추구하며 그 너머(beyond)에 강한 열광을 보내는 자아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철이 들지 않았기에 10살 가까이 나는 친구들의 의견에 틀림이 아닌 다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추종이 있었기에 전공이라는 틀을 너머 다양한 활동을, 지식을 탐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인들은, 삶을 넘어서지 않기에 그 너머의 것들에 대한 탐구를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점차 한가지 당연한 것, 바로 내일의 우리의 삶 역시 탐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며,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개체의 소멸에 가까워진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노화가 신경쓰여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영양제를 챙겨먹느라 힘든데 '늙고 병들어간다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반론은 신체에 한정해서는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 생각, 관점 등이 노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에 있어, 현재에 존재하는 자아를 현재까지 중 가장 늙은 버전이라고만 생각한다. 내일을 인식하지 않으려 하기에 역설적으로 오늘이 생의 가장 젊은 자아라는 사실은 탈락시킨다. 이에 우리는 간과한다. 우리 모두는 오늘보다 내일, 더 '늙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느리게 늙는 방법을 역설하며, "30 ~ 40대가 부모세대 보다 빨리 늙을 것으로 예상" 된다며 가속 노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정의한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는 "1년을 보내면 우리 몸도 1년치만 늙어야 하는데, 몸이 1.2년이나 1.5년, 2년치 만큼 늙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내 상태가 가장 늙었다고 생각하면 어떤 관점이 생겨날지 한번 생각해보자. 아마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인식이, 삶의 방식이 그래도 옳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름의 시간동안 본인들이 생존해오면서 체득한 방식이기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점을 바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늙는다고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내일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의 관점과 생존 방식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또래 직장인들을 만나면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있다. "대체가 너무 가능한,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삶을 사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들은 대체 불가능성을 추종하며 자기계발을 통해 무언가 배우려고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현재 지금 이 순간의 내 인식이 낡은 틀로 구성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지식은 현재의 패러다임과 관점이 미래의 것과 정반합을 이뤄나가면서 생겨난다. 그러나 우린, 미래를 추종하면서 미래와 시너지를 내야 하는 현재의 우리 인식의 틀은 점검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어느 시점에 형성된 삶의 방식과 삶의 형태를 고수하며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아마, 대학 이후 취업, 가정의 유무와 상관없이 한 명의 독립된 사회인으로 성장한 그 순간 즈음일 것이다. 이후 점차 시간이 지나며 1년, 2년을 보내며 우리네 인식틀은 노화를 거듭한다.


거부하고 싶어도 세상의 문법은 변화한다. 이에 우리의 인식틀은 상술한 가속노화처럼, 1년을 보냈는데 2년이, 2년을 보냈는데 5년치씩 가속해서 늙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매일 매일 사회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을 넘어서는 인식을 가져라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언이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직장 혹은 가정과 결부되어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사회인들에게 삶을 넘어서는 인식을 가지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가속 노화를 막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3) 반성적 평형'으로 마무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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