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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쟁이 May 02. 2024

'배움'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 (1)

(1) 문과 기피 현상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이다. 부존자원과 막대한 내수시장도 없이 오직 인적 자원을 동원한 노동 및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반세기만의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일구어 냈다는 교육을 어릴적부터 받아 그런지, 교육과정에서 오랫동안 멀어졌어도, 키워낼 자식이 없어도 언제나 교육 이슈에는 관심을 가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명확한 주관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신화들의 붕괴가 이어지고 경제 성장이 둔화되며 기존의 교육 모델 역시 도전 받고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설정했던 문과계열의 기피 현상은 그 중 대표격이다. 당초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문과와 이과 블루칼라의 연합은 해체 과정에 놓이게 되었으나, 블루칼라의 지위하락에 이어 문과 계열의 선호도 감소로 이젠 와해 직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사실, 시대의 변화폭이 더욱 커지고 기술은 고도화되며 개별자들의 생산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실에서, 저숙련 및 중숙련 노동자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문과 기피 현상의 대두가 낯선 이유는, 기존의 관성으로 유지되던 영역들과 법적인 안전장치로 유지되던 현상들이 점차 힘을 잃어가며 드디어 가시화 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이에 지난날의 블루칼라, 오늘날의 문과계열, 아마 근 미래의 이공계열까지 '이중노동시장'과 극단적 양극화로 수렴되는 것 역시 정해진 운명이 아닐지 조심스러운 걱정이 든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겐 저출생이란 사회적 화두가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경제에 큰 도전과 위기가 될 상황 속에서 중숙련 노동자는 은퇴한 잉여자원이 아닌, 새로운 직무를 해내야 할 필요자원으로 치환될지도 모른다. 중장기적으로는 불행이 될 우리의 저출생이 단기적으론 우리의 노후를 책임져줄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로인해 우리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은퇴하지 못하고 배움을 지속해야 하는 숙명에 놓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이한 질문을 던져도 훌륭한 답을 해주는 친구들에게 갑툭튀로 "이과형 인재의 수요가 줄고 문과형 인재의 수요가 늘어날 경우가 미래 어느 시점에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물어봤다.



고학점 of 고학점인 A씨는, "공대 공부양으로 한학기면 다 커버 가능할 것 같은 현재의 문과 대학 교육과정을 고려하면, 문과형 인재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명 머신이라 불리는 B씨는, "최근 1기압에서 실현된 다이아몬드 합성 실험을 예를 들며, 사회에 미약한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기술 시대인 이상, 불가능"하다며 돌아갈 수 있다면 이과를 선택할 것임을 역설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문과형 직무를 준비하는 C씨는, "문과 대부분의 직렬에서 AI가 사용되면서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인문학은 생산이 아닌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에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선별하느라 고생 중인 D씨는,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문과형 직무는 트레이닝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기에, 생각치도 못한 직무가 생겨나면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현재로서는 불가능 하다고 전망했다.


반면, 문과 출신으로 DX, AIX 영역에 있는 E씨는, "이과형 인재의 수요가 준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적당한 기술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가정할 때 문과형 인재의 수요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누구나 선망하는 공대 학과 출신인 F씨는, "문이과 구별 자체가 현 고등교육 과정생들에게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종합하자면, 전반적으로 제시된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으며, 문과형 인재의 사회적 효용성에 관해 기술과 결부되지 않는 한 매우 부정적임을 알 수 있다.


'문과'와 '이과'를 명확하게 구분한 전세계 표준 정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이과 구분이 1924년 경성제국대학의 학생 모집에서 그 기원을 찾기에, 어찌보면 우리와 일본, 그리고 가오카오(高考)에 문과, 이과적 요소가 남아있는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특이한 문화로 치부할 만 하다. 이에, 본 글에서 정의하는 문과는 인문학, 상경, 사회과학 전반을 포함한 분야, 이과의 경우 공학, 자연대 전반을 포함한 분야와 같이 우리 상식적 수준을 기반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학부생 및 고교생들이 믿지 못할 사실 하나는, 놀랍게도 얼마전까지 이공계열은 '공돌이'라는 인식과 함께 기피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에도 의대와 법대가 각 분야 최상위권을 점유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대학의 정원 비중과 전체 기업들의 노동 수요를 고려할 때, 이공계열보다 상경계열과 사회과학계열이 항상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때로는 인문학에게도 이공계열 선호가 밀렸던 적도 있으니, 이공계가 문과계열에 비해 압도적으로 대학 입시 및 노동 수요 전반에서 선호되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에서 15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공계열 근로자를 표현한 인터넷 밈 (저의 개인적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이런 기피현상에는 크게 세가지 연원이 있다.

1. 실제 우리나라의 당시 직무구조상 이과의 일자리가 문과 일자리를 압도하지 않은 점

2. 현재도 이공계열 직장의 대다수가 지방에 중심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그 집중도가 더욱 심했다는 점

3. 예상생애소득 및 승진 가능성에 이공계가 불리한 것들이 많았던 점이 대표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2번의 문제를 제외하고 1번과 3번은 이공계가 아닌 문과형 직무에서 현재 직면하는 문제와 유사하다. 2024년의 문과는 이공계에 비해 현격히 적은 일자리는 물론, 예상 생애 소득에서 비교열위를 가지며 전면적인 '문과 기피 현상'이 심화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길래, 불과 15년만에 이런 변화가 파생된 것일까.




'문과형 인재'는 사실 모호하게 느껴지기 쉽다. 이과형 인재가 해당 전공의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산출물을 생산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문과형 직무는 무언가 직접적인 산출믈을 생산하진 않는다. 이에 재무나 인사, 영업 등을 평면적으로 본다면 기업의 경영활동에서 부가가치를 파생시키지 못하는, '지원'의 영역에 국한된 것으로만 보인다.


사실 문과형 인재는 정형 및 비정형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와 가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그러나 문과계열 전공자들 조차, 스스로의 학업 및 능력 고도화의 지향점에 대해 무지하다. 아마도 인터뷰어 A씨의 지적처럼 문과계열 전공자들이 스스로 학문을 고도화 하지 않은, 이공계열만큼의 치열한 배움을 하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문과형 지식의 핵심은 '유기적 연결'에 있다. 따라서 문과라는 큰 틀을 하나의 꽃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역사라는 뿌리철학이라는 줄기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고 잎사귀인 사회과학과 상경계는 광합성을 열심히 하여 문학 즉 컨텐츠라는 꽃을 피워내는 순환과정이 문과라고 말이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기생충'을 통해 이 도식을 적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되고 비가시화된 존재들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사실을 바탕으로, 철학자들은 이를 서발턴(subaltern)이라 명명한다. 그러나 소비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이들 역시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기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풍토가 강화된다. 이에 수많은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는 이들을 위한 기본적 사회 안전망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시장질서를 고려할 때 현금성 재분배는 구축효과를 발생시켜 소외된 이들이 더욱 사회 참여가 어려워지게 만든다. 그러다 어떤 한 예술가는 이런 사회 현상을 비유적인 블랙코미디로 표현하고자 한다. 예술가는 '냄새'를 키워드로 계층구분을 설명하고자 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키워드인 냄새를 바탕으로 문화를 소비하며, 향으로 계층을 파악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간단한 설명을 하기 위해 동원한 개념은 인문학, 사회과학, 경제학, 법학, 문화이론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님의 발언을 빌리자면,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넓어진다"가 문과 지식의 핵심이다. 문과 지식 한 분야를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해당 전공 만을 학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어영문학과 전공생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함이라면, 미국의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종합적이고 깊게 이해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역사 등등을 고민하고 배우는 것 역시 필수적이고 말이다. 이에 문과형 지식을 제대로 공부한다는 의미는 인간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머릿속에 문과라는 꽃나무 전체를 그려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커넥토그래피 혁명'으로 번역 출간된 책입니다. 추천 드립니다.


이공계열 지식은 습득 과정에서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두 분야 모두 일반 삶과 다른, 우리의 일반적 이해를 넘는 '새로운 언어'를 바탕으로 세계를 기술하기에, 해당 과목의 체계적 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해당 분야를 이해하기는 커녕, 독해하기도 어렵다. 반면, 문과계열의 지식은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일 필요가 없다고 착각한다. 실제 삶과 맞닿아 있거나, 과거의 어떤 것, 관념상의 것들이라 치부되기 쉽고, 이를 기술하고 이해하는 언어가 '우리 삶의 언어'로 서술되어 있기에 그렇다.


여러분은 '악의'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아마 나쁜 의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법학에서 악의는 '알고서 한 것'의 다른 말이다. 한편 비용은 어떠한가, 아마 세무영역에서는 이를 절세의 수단으로 이해할 것이며 회계에서는 차변에 기록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분명 우리가 정의한 우리 삶의 언어이지만 그 이해는 너무나도 다양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 '악의적인 이유로 비용을 발생시킨 경우'는 어떨까. 아마 세무사는 법학과 회계의 개념을, 변호사는 세무와 회계의 언어를 습득해 해당 분야의 기본적인 체계를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더하여 여기에 해당 사안에 개별성이 부여되는 순간, 즉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한 악의적인 비용 발생을 한 경우'에는 더 많은 차원의 언어와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진다. 즉, 우리의 직관적 인식과 달리 문과 계열의 지식체계 역시 언어부터 착실하게 새로이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과형 인재는 전공 분야의 언어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관된 주변 지식 체계를 빠르게 습득하여, 역사부터 컨텐츠에 이르는 문과형 지식체계의 유기적 연결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위의 설명을 통해 문과형 인재에 대한 정의를 내렸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낯설고 먼 개념처럼 느껴진다. 더욱이 저런 능력이 있더라도 B씨의 표현처럼 "문과 계열 지식은 직접적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것이 아니냐는 비판 역시 남는다.


주식을 하시는 분들은 익숙할 만한 논리 전개 과정이 있다. 2015년 브라질 마리아나시 광산 댐이 붕괴되어 철광석 수급이 어려워진 상황이 있다. 아마 이때 기업의 리스크 담당자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비하는 한편, 이로 인한 소비 축소를 고려하여 인력 효율화 등의 옵션등을 C레벨에 제시했을 수도 있다. 2021년 수에즈 운하 마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단편적인 사건이 발생시킬 수많은 나비효과들을 계산해서 대응하는 작업을 누군가는, 한다.


한편, 새로운 성장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발표된 수많은 기술과 아이디어, 기존에 존재하던 컨셉과 흐름, 문화를 선별하여 새로운 부가가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정부정책과 여론의 변화를 예측하고 선박의 탈탄소 규제를 기회로 사용해 메탄올 추진 선박의 설비투자와 관련 협력업체에 대응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이끄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최근 하이브와의 분쟁으로 이름이 더욱 드높아지는 민희진 대표의 경우,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과거의 트렌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흘리듯 지나친 정보들을 모아 그것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즉, 문과형 인재의 가치는 유기적인 연결을 바탕으로 한 지식체계 덕분에 가능한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비정형 정보를 연결하여 새로운 정보나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아마 저런 능력은 CEO와 같은 소수에게 필요한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시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은 소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런 소수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정보가 가공'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과형 직무의 대다수는 바로 이 정보의 홍수, 즉 메타데이터를 가공하여 쓸만한 것으로 만들고 이를 각 분야의 전문성과 시선을 담아 윗단계로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전에 부장들은 각 직원들의 정보를 모집하여 개별 사업부의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도모했다. 재무, 인사, 기획, 전략 등 전통적 영역에서 각자의 관점을 가진 보고서를 올리면 전체를 조망하고 방향성을 설정했다. 그런 부장이 되기 전, 각자의 영역에서 문과 계열 직무 종사자들은 정보를 습득하고 가공하는 방법을 학습한다. 단순히 엑셀이나 통계 공부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산업에 맞는 직관과 이를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학부시절 선행 되었어야 하는, 사회와 산업에 대한 이해를 직무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습득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제너럴리스트(Genaralist)'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문과형 직장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형성하고 이후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습득한다.


이에 문과를 전공하는 상당수의 학생들은, 기업에 입직한 이후에서야 세상의 관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교육 특성상, 문과 지식체계의 유기적 연결을 도모할 기회를 학생 때 누릴 수 없다. 오히려 전공을 최소화하고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상경계나 통계학 등을 습득해서 가는 것이 입직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 생각하기에 스스로의 학문에 대해 깊게 사유하지 못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C씨의 지적처럼,  AI의 변화, 그에 선행하는 정보통신의 발달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감소시켜 시장 효율화를 이끌어 냈다. 즉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의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정보가 폐쇄적일 땐, 소유하고 가공하는 것만으로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가 공개되어 정보 자체가 가지는 가치가 줄어들면 단순히 정보를 가공하는 것을 넘어, 정보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직관을 도출할 수 있는 능력, 즉 완벽한 문과형 인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에 단순히 정보를 가공하는데 그 능력을 배양한 문과형 직무의 신입사원 수요는 급감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여러 분야를 경험시켜 정보를 산업적으로 이용하게끔 길러낼 이유는 점차 사라진다. 정보를 연결해 가치를 창출할 줄 아는 '문과형 인재인 능력있는 소수'를 학습시키는 것이 오히려 나은, 그런 경제적 동인이 생긴 것이다.


더욱이 해당 직무에 남아 있는 개인들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게 된다. 적은 인력으로 수많은 정보를 정제하고 가공할 수 있기에 생산성을 극대화 할 수 있고 해당 인원들은 '핵심인재'가 되어 전체적인 기업의 방향을 직접적으로 조율하는 위치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다수의 고용은 어려워졌지만, 문과 계열 직무에 종사하는 개인 한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더욱 커졌다.


결국 문과형 인재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바로 이런, 중숙련 정보 생산자의 역할이 정보통신의 발달과 기술 고도화로 인해 축소되어가기 때문에 발생한다.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동향 제 42호




만일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한 이공계열 인재의 미래는 어떨까. 놀랍게도 이들은 지방 파견을 피할 수 없다. 상술한 이공계 기피현상의 2번 요건은 연구개발직의 확대로 완화되었지만, 그것은 학사 졸업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기술의 고도화는 학부 출신들의 연구개발 진입에 막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반도체를 전공한 석사급 인재인 친구는 본인의 연구 분야를, "반도체 생산 공정 가운데 얇은 막을 형성하게 해주는 물질에 대해 연구"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아주 미시적인 차원에서 기술이 고도화하는 중 이기에, 해당 학문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만 할 수 있는 이공계 졸업자의 미래는 역설적으로 '중간관리직'으로 수렴한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한국의 산업적 특성상 현장은 대다수 '기술'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이런 현장을 관리하여 정보를 생산해 내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과거에는 이를 문과형 직무인 인사나 기획, 재무 영역에서 독점했다. 그러나 점차 기술이 고도화되고 기술 그 자체의 이해가 현장에서 매우 중요해짐에 따라, 이공계에서  관리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이공계의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성장에 발맞춰 확대될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런 직무는 결국 앞서 말한 문과형 직무에서 살아남은 핵심인재들과 경쟁하는 영역에 놓인다. 분명 이공계열 직무를 전공하고 승진했으나 결국엔 문과 계열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그런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인식하는 이공계열의 정점, 연구 개발 인력의 경우는 최소 박사급 인재로 구성되어 그 TO도 적고 산업의 유행에 좌우된다. 지금 당장 유행하는 기술 분야가 미래에도 산업의 필요성이 많을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더더욱 그렇다. 이에 약 최소 6년의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는 박사에 개인들이 느끼는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다. 그러나 이 모든걸 이행한 사람들이 결국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과형 인재가 된다.




정보혁명에 준하는 디지털 영역의 발달은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하여 문과 직무를 급격히 축소시켰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이공계열 직무가 문과계열 직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진 연원이다. 이로 인해 채용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은 문과계열 직무의 예상 생애소득 전반을 감소시킨다. 특히 소위 핵심인재라 분류되지 못하면 낙오되기 쉬운 상황은 결국 고용안정성의 약화로 이어져 '문과 직무는 우선 정리 해고 대상자일 가능성이 높다'와 같은 편견을 만들어 낸다. 이에 문과는 기피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공계 역시 채용의 문턱을 넘는 것이 조금 쉬울 뿐 그 미래는 문과형 직무와 비슷하다. 연구 개발을 하거나 사업부에서 혁혁한 실적을 내지 않는 한, 그들 역시 관리자가 되어 문과형 직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물론, 가능성과 확률을 따지면 문과보다는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사람들은 이과에 몰릴 수밖에 없다.



우울한 현실이지만, 블루칼라, 문과계열을 넘어 이공계열에서조차 생산성이 높고 독창적인 '소수'만을 원하게끔 재편되는 중이다. 생산성 증가, 기술의 급격한 발전, 사회 변화 주기의 단축 등은 결국 이런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이나 독창적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아마, 결국 돈을 벌고 승진을 하려면 영업을 뛰어야 한다는 술자리의 푸념이나 문과 이과 대학 졸업자의 예정된 미래는 '치킨집 사장'이라는 자조적인 밈은 정말 현실을 철저히 반영한 해학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소수의 인재는, 살아남고 또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다수다. 그리고 그 많은 다수들 역시 공상과학처럼 소수의 천재와 기계들이 일을 하고 생산한 과실만을 공유받는 현실을 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갈수록 좁아지는 산업 역군으로 가는 길 앞에서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일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주 비관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역시 사치일뿐, 결국 우리의 예정된 미래는 대량실직 사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에겐 생산가능인구가 축소되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인적 자원이 위협받는 상태, 그 상황에서 국가와 기업은 우리를 '재교육'으로 이끌 것이다.


'(2) 하르츠 개혁 재조망'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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