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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쟁이 Aug 06. 2024

이란과 이스라엘의 혐관 로맨스


솔직히 혐관 로맨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로맨스는 자고로 애정을 기반으로 해야하는데 혐오감에 기반한다니, 사람들은 참 이상한걸 재밌게 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접한 킬링이브의 빌라넬과 이브의 관계성을 보며, 혐관 로맨스를 이상하게 치부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이게 정말 재밌고 훌륭한 클리셰라는 것에 동의를 표하며, 현실 세계의 다른 영역들에 이 클리셰를 적용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혐관 로맨스의 핵심은 서로 죽일듯이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엮어 점차 로맨스에 빠져드는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관계성에 있다. 킬링이브의 두 주인공 역시 서로를 여러번 죽이려고 하지만 죽이지 못하며 그렇다고 가까워지지도 않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일방적 공습이후, 이란과 이스라엘은 빌라넬과 이브처럼 본격적인 혐관 로맨스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물음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혐관 로맨스의 정의가 저렇다하더라도, 상호 미사일을 주고 받는 관계가 어떻게 로맨스에 비유될 수 있을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국가는 완벽한 항복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한 전면전을 수행할 수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형태의 제한적 형태의 전쟁역시 발발하기 어렵다. 서로에게 미사일과 사이버 공격만을 감행할 뿐, 서로를 절멸시키지 못하고 관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 이란과 이스라엘은 그래서 혐관 로맨스이다.


두 국가의 혐관 로맨스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중동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동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변화


역사적 합의에 준하는 평가를 받았던 2015년의 이란 핵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이후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란 핵합의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략적 포석의 본질은 같다. '중동에서의 미국 자원 철수'가 그것이다.


2015년 당시의 이란과 미국의 니즈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정치적 불안정성을 경제성장을 통해 돌파하고자 했던 개혁파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는 이란 핵합의를 바탕으로한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를 원했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는 Pivot to ASIA 이후, 중국과의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중동에 집중된 자원의 재배분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시간마저 요식행위로 여긴 것 같다. 흔히들 트럼프의 변덕과 이스라엘을 위시한 네오콘들의 요구 때문에 이란 핵합의를 탈퇴했다고 여겨지지만, 어짜피 자원의 재배치가 예정된 상황에서,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가속하기 위해 중동 정세에서 손을 빨리 떼고자 한 것에 가깝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미국은 정파를 떠나 ASAP하게 중동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헀다.



워싱턴의 속마음


미국이 중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유보다, 석유라는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담보하기 위함이었다. 셰일 혁명 이후 석유의 초과공급을 넘어 수출을 하는 상황에서 중동은 아마 워싱턴에게 있어 '계륵'과 같은 위치, 미국이 자원을 집중해야 할 실체적 이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수준으로 지정학적 가치가 급락했다. 가치는 떨어지는데 투자해야 하는 자원은 그대로인, 한마디로 ROI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치의 금언처럼,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자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영향력을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전략적 조정자로서의 역할 자체를 포기할 생각이 없던 미국은, 이에 맞서 중동에서 미국을 대리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힘을 실어준다.


문제는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대리인인 이 두 국가의 내부가 너무나 시끄럽다는 것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내부 정치는 불안정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Mohammed bin Salman Al Saud)의 왕세자 등극 이후 대숙청으로 인한 정정불안이 가중됐다. 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러시아는 2011년부터 지속되던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여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이뤄냈으며, 중국은 2018년 발생한 자말 아흐마드 함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인해 벌어진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를 치고들어와 중동에서 새로운 조정자로 기능하고자 노력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중동에서의 미국의 대리자는, 전통의 우방 '이스라엘'만 남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빠른 중동에서의 탈출이라는 목표 하나로 권력의 공백에 따른 중동에서의 세력변경을 눈감았다. 이런 흐름은 바이든 정부에서 계속되어 최악의 정책 결정이라 비판받는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이어진다. 그렇게 무리한 속도이지만, 자원을 재배분하여 중국과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워싱턴의 생각은 성공하는 듯 했다.



미국이 초래한 미국을 향한 의심


소련의 붕괴 이후, 21세기는 미국의 세기라는 것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며 두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21세기는 미국의 세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22년 2월, 미국과 EU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격적인 침공을 개시하며 미국의 세기는 막을 내린다.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축소했음에도 유럽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행동을 막지 못한 미국의 역량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강한자가 힘이 약해지는 순간,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그만이라는 생각 혹은 착각은 널리 퍼지기 쉽다. 결국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하면서, 동시다발적인 국제 문제를 조정하는데 한계에 직면했다는 명확한 시그널이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에게 발신된 것이다. 이는 맹방이라 불리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오래된 해법


이스라엘은 우선 4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감정의 골이 깊은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며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이란 핵합의에서 극렬한 반대를 한 전력과, 실제 이란 영토에 있는 핵시설을 폭격한 과거떄문에라도 이란과의 전향적 관계 개선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스라엘과 이란의 위정자들은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비판적으로 바라 본다면, 외부의 적을 상정한 채 내부의 단합을 추구하는, 권력을 유지하고 내부 분란을 감소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선전도구이다. 따라서 위정자들은 경제 성장 둔화 등의 이유로 내부의 불만이 커지고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때, 외부 위협을 확대 해석하는 형태로 불만을 효과적으로 감소시켜왔다.


이스라엘은 인구 및 영토에 비해 많은 기술과 고급 인력이 밀집된 주요 국가이지만, 과도한 고부가가치 지식 서비스 산업에 의존하여 실업률이 높다. 고용유발계수가 낮은 이런 산업들의 경우 소수는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지만, 다수는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파생시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및 협력업체가 고등교육 이수자들을 흡수할 수 있지만,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내수시장이 우리에 비해서도 너무나도 작은 이스라엘의 실정상 다수의 이스라엘 청년들은 실업으로, 생계형 창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의 부패스캔들을 비롯 지도층의 부패는 내부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기폭제로 기능해 왔다.


이란은 오랜 기간동안 핵개발로 인한 경제 제재와 이란의 라흐바르(최고지도자)인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Sayyid Ali Hosseini Khamenei)의 보수적인 성향에 따라 자유롭던 사회를 경직적으로 만들고 청년들의 요구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에 집중했다. 특히 2015년의 짧은 희망의 시기는 이란 국민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더 큰 박탈감을 가져다주며 2017년 이후 국민적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이란혁명에 참여한 혁명수비대를 비롯한 특권층의 경제적, 사회적 자원 독점이 이어지며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는 형태였다.


서로의 종교와 역사를 제외하고 경제와 정치상황만 놓고 본다면 두 국가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따라서 두 국가의 위정자들은 내부의 불만을 어딘가로 돌려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상대방 서로의 두 국가, 다름 아닌 일상적 긴장관계였다.



블록버스터화 된 이란과 이스라엘의 혐관 로맨스


미국을 통해서 대결하던 기존 질서에서 미국이 빠지면서 이란과 이스라엘이 직접 격돌하는 듯한 현재의 상황은 새로운 것이 아닌 오래된 것이며, 기존에 인디영화에 머물던 이들의 혐관 로맨스가 블록버스터화 된 것에 불과하다. 실제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란과 이스라엘은 독한 말을 주고 받으며 긴장을 고조시켜나갔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주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는 등 마치 이란과의 전면전을 각오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진실의 약속 작전'을 수행했다.


물론,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참여국의 훌륭한 방공 시스템으로 피해가 경미했지만 이란의 군사 작전은 마치 '약속 대련'과 같은 형태를 보였다. 즉, 서로를 적으로 호명하며 으르렁거리지만 서로가 없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혐관 로맨스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이번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암살에 따른 보복이 12일 ~ 13일로 예상된다는 평가와 함께, 다시금 중동 지역의 전운이 깃들고 있다. 약속 대련 수준이었던 4월의 폭격에 비하면 그 강도가 강해지겠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전면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쪽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되면 양쪽의 위정자들 모두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그렇다. 더불어 이란의 페르시아 고원까지 도달할 이스라엘의 군사력도, 이스라엘에 전면 침공할 이란의 보급력도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 두 국가의 혐관 로맨스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혐관 로맨스의 결말


웹소설과 웹툰의 대가인 친구에게 "혐관 로맨스의 핵심 매력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서두의 힌트를 얻고자 던진 간단한 물음이었으나, "내 주변에 혐관 좋아하는 친구들은 혐관 끝 로맨스 본격 시작하면 탈주해"라는 기가막힌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국가간의 혐관 로맨스에서 혐관이 빠진다는 것은 더 이상 적대적 공생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사라진단 뜻이다. 적대적 공생관계로 지탱되던 균형이 어그러지는 상태, 그 상태는 곧 국가간 명운을 건 총력전을 의미하거나, 상호 화합하여 평화를 목표로 함께 걸어나가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평화와 번영이라는 상투적이지만 절대적인 목표로 모두가 나아간다면, 아마 후자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의 혐관 로맨스는 지속될 것이다. 아니, 지속되어야만 한다. 이들의 균형상태가 이탈된 결과는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적대적 공생 관계는 일반 개인의 삶에선 잘 찾아보기 어렵다. 하물며 네편과 내편이 명확하길 원하고 신의가 기본이 되는 우리네 삶의 모습에서는 너무나 낯설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저열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주를 약속했지만, 그들의 이익을 위해 협력자들을 버렸다. 이스라엘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아랍국가와 손잡는다. 중국은 사우디와, 러시아는 시리아와 터키는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EU를 비롯한 영국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현재 상황을 재단하고 평가한다.


이에 이들의 혐관 로맨스가 끝나갈 기미가 보인다면 그 끝이 왕자님과 공주님은 아릅답게 잘 살았습니다로 이어지는 것을 반길 국가는 없다. 오히려 더 많은 변수를 개입시켜 중동 정세를 흔들고 혼란을 만들면 모를까.


그리고 바로 이런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아귀타툼, 아수라판이 국제정치 혹은 외교안보라 포장된 민낯이다.



우리가 이 로맨스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소위 '한반도 천동설'에 빗대어지는 우리 대한민국의 외교는 4강(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으로 대표되어 왔다. 물론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부터, 문재인 정부의 남방외교까지 외교적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도외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외교의 무대는 언제나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를 넘어서진 않았다.


사실 대한민국 외교의 4강 중심의 외교는 국력을 고려한 최선에 가까웠다.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이었던 우리에게 다른 국가에 영향력을 투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얻는 '전략적 조정 능력'은 사치였다. 경제 순위 10위권에 안착한 2010년대 이후에서야 점차 우리의 시야를 주변으로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아귀다툼인 국제정치에서는 아무도 이해되지 않는다.


경제순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수출규모 9위인 세계 경제의 핵심, 현대 산업의 쌀인 반도체 생산에서의 절대적 위치만으로도 대한민국은 더이상 "나는 그거 잘 모르니까 내버려둬"라는 태도로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없다. 여기에 전쟁을 상정한 군대를 70년 이상 양성하며 구축한 군수물자 보급 및 생산 능력과 최근 급속도로 진행된 현대화와 첨단화로 군대의 질적 향상마저 일궈낸 우리의 군사능력은, '스윙보터'로서의 전략적 위치를 재고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성장으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갖게 된 사춘기 아이마냥 우리는, 우리의 외교는 무질서하고 협소한 관점으로 우왕좌왕 중이다. 국제 정세가 안정된 상태였다면 문제 없었을지도 모르나, 세력 균형이 격변하고 있는 현재의 이 시점에서 우리의 무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는 잘못해도 다음에 성장하면 되지만, 외교와 안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전쟁을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에 우리가 여전히 한반도 천동설에 갇혀 허우적댄다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너무나도 동 떨어진, 우리와는 너무나도 상관 없어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세계를 향해 우리의 안테나를 뻗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p.s 그저 혐관 로맨스가 재밌다고 치부하며 읽다가 기시감이 들었다면, 당신의 생각이 맞다.



참고문헌

Shivshankar Menon, “Nobody Wants the Current World Order. How All the Major Powers—Even the United States—Became Revisio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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