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영유아기 시절에는 엄마가 나를 업은 채 벽에 기대어 잠에 들었다고 했다. 내가 잠에 들었다 싶어 조심스레 베개에 머리를 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서 깨어나 울어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토록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유치원에 들어서서는 더욱 심각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목청껏 울어대는 나와 그런 나를 달래며 긴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가지런히 묶어주던 엄마.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극도로 무서워했다.
엄마는 몰랐을 테지만 나는 일주일에 7번 악몽을 꿨다. 그러니까 즉, 하루도 빠짐없이 악몽에 시달렸다는 소리이다. 게다가 악몽의 내용은 잔혹했다. 그저 그 어린 나이대에 맞는 귀여운 꼬마 유령이나 호박 귀신 따위가 나오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내용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 주변인 중 한 명이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 위로 가시가 마구 달린 커다란 쇳덩이가 휭휭 소리를 내며 흔들리다가 결국은 그 사람 위로 떨어져 깔려 죽는 것이었다. 또 덧붙여 보자면, 당시 제일 친했던 친구가 유령이 되었고 몸이 투명해진 상태로 나를 찾아와 자신의 엄마를 찾아달라 했다. 하지만 이윽고 맞이하게 된 건 친구 엄마의 시신이었다.
이렇듯 꿈의 내용이 대부분 말도 안 될 정도로 잔인했다. 겁이 많아 공포물 같은 건 얼씬거리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엄마의 품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떨어지면 더더욱 불안 증세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내기 위해 “오늘 집에 안 보낼 거야!” 거짓으로 하는 말에도 다른 애들은 다 콧방귀를 뀌는데 나 혼자 심각해져서 엉엉 울었다. 심지어 더 어린 나이에는 엄마가 잠깐 은행을 다녀오겠다며 밖을 나섰는데 그새를 못 참고서 뛰쳐나가 하마터면 나를 잃어버릴 뻔했다고 했다. 그때 엄마가 은행을 나와 선 횡단보도에서 울고 있는 나를 마주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난 영영 미아가 되었을 거라고. 엄마는 아직도 그날 그 순간 심장의 철렁거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성인이 되어 스물한 살이 되는 해까지 엄마와 잠을 잤다. 나의 악몽의 특징 중 하나는 꿈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 경우 그 꿈을 이어서 꾼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난 초등학생 땐 자다가 일어나 그림을 그렸다. 꼭두 새벽 출근 준비를 하던 아빠가 다시 들어가 자라 해도 꿋꿋이 거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졸린 눈을 껌뻑이며 티브이를 보든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든가 했다. 그러다 보면 날이 밝아왔다. 그러면 조금 두려움이 걷혔다. 그렇게 커서도 난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 매미처럼 잠을 잤다. 불을 끄면 크게 들리는 갖가지 소리들에게서 무신경해지려 엄마를 세게 안았다. 세 살 어린 동생도 혼자서 잘만 자는데 이러한 면에서 난 문제아였다. 그리고 웃긴 건, 엄마랑 대판 싸우고 나서도 잠은 옆에서 잤다는 것이다. 엄마는 얼마나 미웠겠는가.
스물일곱이 된 현재, 지금은 매일 같이 악몽만 달고 사는 건 아니다. 여전히 1년 365일 중 360일 정도 꿈을 꾸긴 한다. 그러나 그게 다 악몽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제는 멀어진 초등학생 시절의 친구가 꿈에 나왔다. 난 그 친구를 붙잡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친구에게 왜 나를 버려두고 갔어야만 했는지, 여태 묻고 싶었던 말을 내뱉어야 하는데 자꾸만 뭉개지는 발음으로 인해 의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 친구는 왜 내게 울기만 하느냐고 물었다. 이전과 같이 햇살처럼 웃어주었다. 난 네가 떠나고 나서 세상만사 시시하고 공허하기만 한데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변함없이 귀티 나고 풍족해 보였다.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눈물이 나. 친구는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느껴지지 않는 온기에 놀라서 깨어났다.
아마 그 친구는 내가 힘든 시기마다 찾아오는 것도 같다. 내 꿈에 방문하여 나를 위로해 주고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눈을 뜸과 동시에 마주한 천장엔 현실만 가득해서 눈물이 가득 맺혔다. 그 친구가 나를 기억이나 할지, 까맣게 다 잊었다 치면 이건 너무나도 불공평한 건 아닌지. 짧은 이름을 고이 접어 삼켰다. 이 친구 외에도 내 꿈엔 나를 떠나간, 떠나보낸, 나를 망가뜨린 요주의 인물들이 간간이 꿈에 비친다. 이 또한 악몽인가. 이러한 꿈도 악몽이라 분류해야 하나, 쓸쓸해진다. 꿈 없이 자고 싶다. 어스름한 새벽, 그만 깨어나고 싶다. 엄마가 누운 곳 옆으로 기어들어가 중얼거린다.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재워줘.”
엄마는 내게 제일 안전한 곳, 방공호였다.
*
오전 8시 34분. 젖은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인상을 찌푸리며 마주한 방안에 공허한 눈빛을 흘려본다. 축축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악몽을 꾸는 횟수가 대폭 줄었다. 다만 당신이 꿈에 나오는 경우가 늘었다. 덕분에 두려움으로 아침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걸 감사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이제 누군가가 무슨 꿈을 꾸었냐 물으면 [무서운 꿈.]이라고 답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아주 슬픈 꿈.]
이라는 답문을 보낸다. 이러니 마냥 좋다는 말은 못 하겠다. 본래 누군가를 좋아할 때, 대개 상대가 꿈에 나와주지 않아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은 당신 꿈을 꾸게 해주세요.”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잠에 들기 일쑤였다. 그런데 당신은 딱히 그러지 않아도 눈을 감고서 몽롱한 기운에 빠져들면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며 서있다. 항상 냉랭해 보이는 그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 나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서 그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행복이다. 당신은 나를 좋아해 줄 리 만무하니까. 더 바라지 않아야 하는데 다가가 손을 뻗고픈 충동을 어떤 식으로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내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서, 대뜸 당신에게 달려가 고백을 저질러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잠꼬대마저 조심해야 하는 판국인데 말이다.
당신이 내 주변을 빙빙 맴도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러다 내 손목을 가져가서는 세수를 하고서 막 나온 제 말간 얼굴을 나의 옷소매에 비비적거린 적도 있다. 순식간에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꿈임을 알아챘다. 당신이 내게 이토록 가까울 수가 없었다. 깨어나 다시금 눈을 질끈 감았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 영영 살라면 그러라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듯한 심정이었다. 슬펐다. 당신의 꿈을 꾸게 된 날에는 꼭 울게 되었다.
상대의 보고픈 마음이 날아와 꿈에 등장하는 거라 했다. 웃기는 소리이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었다면, 이토록 미어질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