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컵 한 잔

by 주또

오늘은 진짜 진짜 몸 상태가 너무 안 좋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내내 앓다가 기어이 조퇴를 하고야 말았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시야가 어지럽고 귀에선 삐이- 거센 이명 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근육통도 동반했다. 속도 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변기를 부여잡고서 속을 게워낼듯했다. 매일이 이별 연습이다. 그래서 아픈 건가 싶다. 익숙해진 풍경들과 환경. 사물들. 잇따라 가장 슬플 이름들. 멀어져야 하는 건 알고 있다만 도무지 마음을 단단히 먹을 방도가 없다. 담담해질 줄도 알아야 한다며 소연 팀장님은 수진에게,


“수진이가 좀 알려줘. 어떡하냐 주영이. 이렇게 여려서.”

부탁하며 날 향한 걱정을 한시름도 놓지 않았다. 곧 소연 팀장님이 퇴사를 한다. 난 이곳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아주아주 오래 이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싶으나 허락되지 않은 것도 같다. 서글픔이 오래 이어졌다. 잡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상상은 상상으로. 생각주머니가 잔뜩 부풀어 조만간 터질듯했다. 이리도 걱정이 많아서야 되려나.


[물컵 한 잔이 가벼워 보여도 계속 들고 있으면 무거워. 작은 것도 계속 생각하다 보면 무서운 거야. 빨리 비우고 내려놔.]

외려 당신의 친절이 독이 되다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짐작이나 할까? 전하지 못한 진심만 늘었다.


이틀 전. 오후 6시 40분경 버스 안. 난데없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다른 의심의 여지없이 덜컥 받았으나 연이어 이어지는 동생의 울음에 한껏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울어. 속상하게.”

허둥거리며 동생을 위로했다.

“누나.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멀어졌어.”

일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띵했다. 내가 정의 내리지 못한 감정을 상대로부터 전해 듣게 된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요 근래 어두침침했던 이유가 이별 연습과 아울러 멀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가까스로 가까워졌다고 여겼는데 딱 그만큼 더 멀어졌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남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 또한 청승맞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도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버스에서 우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도 없으리라. 물론 숱하게 그러한 장면을 보이긴 했다만 동생을 위로하며 우는 건 누나 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는 평소에도 애정을 듬뿍 주려 나름 노력하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은 노상 의아해했다.


“동생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어떻게 그렇게 친해?”

난 매번 같은 답을 했다.

“학창 시절에 굉장히 못해줬거든. 그래서 지금이라도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좋은 거 많이 해주려고 하지.”

실로 그랬다. 거짓 한 점 없는 깨끗한 본심이었다. 동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만일 앞으로 살아가며 겪어야 할 어려움과 슬픔, 난제가 있다면 모두 다 내가 대신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랐다. 동생의 울음소리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친구 올 때까지만 전화해 줘.”

그으래애.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둥 잠옷을 버리게 되었다는 둥 구시렁거리는 동생에게 용돈과 잠옷을 보냈다. 녀석이 길게 슬픔을 달고 있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에서였다.


*

시도 때도 없이 운다. 이 정도면 수도꼭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울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울고 심지어는 유튜브로 웃긴 영상을 보다가도 운다. 사소한 다정에도 예외는 아니다. 누가 조금만 다정하게 말해주면 금세 울먹거렸다. 이번에도 속수무책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랑곳 않고 웃으려 했다. 캡처를 해서 보관을 하려다 말았다. 두고두고 꺼내보고픈 말마디들을 당신은 어쩜 이리도 딱 알고서 스스럼없이 해주는 걸까? 애꿎은 덕현에게 메시지를 보내 칭얼거렸다.


[나 진짜 나이 들었나. 눈물이 너무 많아졌어. 어떡해?]

2분 만에 답문이 도착했다.

[또 울어? 이번에는 뭐야.]

[너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이 원래 이렇게 슬픈 말이었나.]

[슬픈 거야, 감동인 거야?]

[복합적이랄까.]

[복잡 미묘하구먼. 그래도 감동의 눈물이면 좋겠네.]

일찌감치 잠에 들어야지. 이 끝없는 우울감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연신 잠만 잔다는 내 말에 수진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대꾸했다.


“현실도피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단 대답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

수진은 날 앉혀놓고서 담담해지는 방법을 설명했다.


“널 항상 우선순위로 둬. 남들보다 네 행복이 우선시 되어야 해. 난 중심에 내가 있으면 이외 것들은 다 쪼꼼쪼꼼하거든. 예를 들자면 회사, 인간관계, 이런 거. 근데 넌 그런 것들까지 자신이랑 동일하게 두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쌓여서 네가 깔리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물음표들이 쉴 새 없이 피어올랐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좋아했던 이는 거듭 물 한 잔에 관한 얘기를 하며 내게 얼른 마셔버리라고 했다. 고민들을 어서 비워버리라고. 나는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야 하는 건 아는데 막상 그걸 어떻게 실천해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들이 나를 좀 먹었다.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더니만 기어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친했던 이와 연을 끊었다. 어느 날 문득 싸한 느낌에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았다. 팔로워가 삭제되어 있었다.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분노가 들끓었다. 우리가 이토록 쉬이 생판 남이 될 사이였나? 내 딴에는 켜켜이 쌓아온 우정이라고 치부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내가 커다란 걸 원했나. 먼저 언질이라도 주었으면 한 게 욕심이었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전부 차단했다. 카카오톡 프로필도 멀티 프로필로 바꾸었다. 올해는 이별이 잦은 해라고 초점이 나간 동공으로 웅얼거렸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귀여운 거 봐.]

금요일 밤 11시 59분. 주말을 1분 앞두고서 온 인스타그램 DM을 다시금 꺼내보았다. 토실토실한 갈색 토끼 영상도 함께 왔다. 분홍색 코와 혓바닥. 한 번쯤은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무심코 했다. 본래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이처럼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하는 건 괜찮다만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다. 괜히 물릴까 봐 다가오면 뒷걸음치고 애써 용기 내 손을 뻗다가도 이내 주춤거렸다.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점들이 문제가 되지 않아 곧잘 복슬복슬한 털을 매만졌던 것도 같은데. 어째 어른이 되며 겁만 더해졌을까?


“나이를 먹으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돼.”

과연 그 말은 참말이었나. 아무리 나이를 먹고 한 해를 보내도 마음의 적당량이란 터득할 수 없었다. 적당히 정 주고 적당히 사랑하는 것. 그걸 어른이 되는 길이라 할 수 있나. 고로 난 아직도 미성숙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모했던 그가 사용하는 향수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구매했다. 향도 같은 거였다. 바이레도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 이런 향이 났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뒤숭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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