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영원할까 두려운 것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한주였다. 쳇바퀴 같은 평일을 보내는 동안 즐거운 순간은 극히 드물었다. 한껏 경직된 표정과 어깨로 인해 근육은 단단히 뭉쳐 뻐근했고, 분하고 억울한 일들로 인해 회사 화장실에서 울다 기어이 팀원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다시는 회사에서 울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내 탓을 반복했다. 팀원들과 친한 대리님은 그러지 말라며 나를 달랬다. 루돌프 코가 되어버린 나를 앞에 두고서 수진이 “내 탓이 아니다!”를 따라 외쳐보라고 했고 머뭇거리던 내가 이어서 발음했다.
착한 건 나쁜 게 아닌데, 나쁜 것들 때문에 착한 것들이 당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빠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휴지로 훔쳐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맞는 말 같은데 도통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아 힘겨웠다. 친한 대리님도 퇴근길 내게 전화를 걸어 자꾸 생각하지 말라 했다. 네 탓 아니라고, 누차 말하지만 네 잘못 없다고. 잊고 생각 말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라고. 네 건강부터 챙기라고. 퉁퉁 부어버린 눈이 곡선으로 휘어졌다. 찬바람이 더해 콧물을 훌쩍거렸다. 하지만 알았다는 대답과는 정반대로 전화를 끊고서 다시금 골똘히 생각했다. 못난 생각은 삽시간에 나를 집어삼킬 듯이 불어나 시야를 가렸다. 안아야 했다. 본인이 본인을 안아주어야 할 때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게 무척이나 매몰찼다. 차디찬 도로 위로 내 영혼을 밀쳐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씻고 바로 잠들었다. 한 여덟시 삼십분쯤인가. 그때부터 잤던 거 같다. 온몸이 무거웠다. 물에 흠뻑 젖은 솜뭉치가 된 것 같았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깨어나기도 했다. 항상 언제 잠들든 생생한 꿈을 꾸고, 그 꿈은 대개 악몽에 속하며 나를 중간에 일으켜 세운다. 묵직한 눈꺼풀을 느릿하게 몇 번 꿈뻑거렸다. 옆에 놓인 커다란 인형을 힘껏 껴안았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숨을 쉬는 매초 죄를 짓고 있는 듯한 기분을 좀처럼 씻을 수 없었다. 다음날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앉아 일을 하는 와중에도 짙어진 그림자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출근길 버스에서는 내내 당신 옆에 가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별다른 말없이, 아무런 기척 없이 그저 나란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치유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감고서 몽상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다정해진 당신이 얌전히 내 옆에 앉아있어준다. 그게 좋아, 한사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괜히 분위기를 흐릴까 밝아지려 했다. 그러나 웃으면서도 내가 웃는 게 맞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목뒤가 뻣뻣해지고 어깨가 딱딱해졌다. 긴장해야 했다. 나를 믿어주는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을, 아니 모두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유명 책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다. 모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모자란 구석들을 타인에게 들통나고 싶지 않았다. 무 쓸모 해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 팀들은 유하잖아요. 그런데 나만 예민해서 분위기 흐리는 거 같고.”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제일 유해요. 우리 중 제일 유한 사람이 그런 말을.”
두통이 이어지고 귀가 먹먹했다. 명치께를 누가 세게 누르고 있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연거푸 마른 세수를 했다. 나는 꼭 괜찮아졌다, 싶으면 이 난리였다. 어디선가 이맘때쯤 곁에 있어주던 사람이 더 나빠지지만 말라 얘기해 줄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날은 점점 더 추워지고, 추우니까 더 슬퍼지는 것 같았다.
내겐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직장 동료도 있다. 나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그들의 고운 마음씨를 필요한 순간마다 느낄 수 있다는 건 참, 축복받은 일 중 하나이다. 이 축복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억하고서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주 무너져서는 안된다고, 되뇌었다.
착하다, 네가 너무 착해서, 남들이 말해주는 착하다는 말에 신뢰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품은 마음은 매우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미안해졌다. “난 착한 게 아냐, 멍청해서 그런 거야.”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당신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게, 서운해지기도 했다. 나는 일어나야 했다.
*
거센 빗줄기 사이를 가르고 달려 편의점 앞에 도착했다. 황급히 젖은 우산을 접고서 옷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낸다. 문에 적힌 <당기시오>를 보지 못한 채 밀다가 주춤한다. 재차 당겨서 바로 연다. 사장님께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매장 안을 배회한다. 그러다 우유가 진열된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다양한 종류 앞에서 고민한다. 그중 초코우유를 택한다. 그러고 나서 옆에 있는 것도 집을까 하다가 관둔다. 괜한 친절은 책임지지 못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고 싶은 이가 있었으나 나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마땅한 인간이 아녔기에 가능한 책임져야 할 사태를 피하는 편이 나았다.
우유 한 개와 빵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놓고서 카드를 꺼낸다. 사장님과 시시콜콜한 대화 몇 마디를 나누며 봉지를 받아든다. 편의점을 나온다. 다시금 우산을 펼쳐든다. 한동안 멍하니 내리는 빗줄기를 응시한다. 공허하다. 구멍 난 가슴 끌어안고 사는 게 이리도 공허하다. 사랑하는 사람, 더불어 사랑해 줄 사람 전부 떠나갔다. 내겐 남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조금씩 좀먹었다. 잘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어디서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법만 얘기하지 잘 포기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동안 잘못 포기해온 일들이 머릿속을 즐비했다. 가득 메웠다. 코끝이 매웠다.
최근엔 책을 읽어도 읽는 둥 마는 둥,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이마를 짚는 일이 잦다. 적어내려가는 모든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매끄럽지 못하다. 아주아주 쉬운 수학 문제를 풀려 해도 몇 시간 동안 애를 먹는다. 시도 때도 없이 상황에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말을 더듬고 수시로 있었던 일들을 까먹는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데, 이게 맞는 일인가 모르겠다.
편의점에서는 왜 행복을 팔지 않을까?
*
어제와 오늘. 엄청나게 춥지도 않고 바람만 조금 부는,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네요.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치과에 들러 교정기를 제거했어요. 훨씬 홀가분해진 치아와 마음으로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 파마를 했어요.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생겼거든요. 그러나 파마는 잘 되지를 않았어요. 컬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거든요. 미용실엔 열한시에 들어가 네시까지 있었어요. 미용사분의 민망한 웃음과 다음 주에 오면 다시 해주겠다는 약속에 우선은 예약을 잡고서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었어요. 이러는 중간중간, 역시나 뜻대로 되는 일은 없구나. 불행의 사고로 연결되려는 것을 가까스로 끊어냈어요.
밥을 먹은 후로는 일본 드라마를 시청했어요. <사랑은 계속될 거야 어디까지나(恋はつづくよどこまでも)>였는데요. 학생인 여자 주인공은 의사인 남자 주인공을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그가 일하는 병원에 취업하기 위해 간호사로 진로를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주인공은 그 병원에 신입 간호사로 입사를 하게 되어요. 그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다소 뻔하고 유치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만, 그 안에서 나는 현재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항상 자책을 일삼는 여자 주인공. 열심히 노력하며 분투하나 늘 결과는 따라주지를 않고 자괴감만 늘어가는 장면을 보며 자연스레 나를 연상하게 됩니다. 또한 더불어, 여자 주인공은 자신보다 완벽한 남자 주인공을 향해 번번이 본인의 부족함을 털어내고 움츠러듭니다. 그러한 점을 보며 난 나를 떠올렸어요. 자꾸만 줄어드는 나를 여자 주인공에 대입하여 눈물짓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응원을 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로는, 실수를 한 뒤 울고 있던 여자 주인공에게 어린아이가 울 곳을 안내해 주곤 휴지를 건네며 했던 말입니다. “다들 울면서 성장하는 거야.” 나는 그 대사를 듣고 일순간 멍해졌다가, 불쑥 묻고 싶어졌어요.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양의 눈물을 흘려야 단단해질 수가, 어엿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가 있는 것일까? 작은 고슴도치가 된 듯한 기분이에요. 가시를 달고 살며 누군가를 찌르지 않도록 혹은 본인 스스로가 찔리지 않도록 부단히도 노력해야 해요. 조심해야 해요. 어떤 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인지라 재미있다고들 하던데. 난 전혀요. 예측할 수 없어 숨이 막혀요. 오늘은 어떠한 일들이 나를 괴롭게 만들지. 그리고 나는 그 어떠한 일들 앞에서 얼마나 괜찮은 척을 해 보여야 할지. 친한 차장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착하면 살아남기 힘들어. 네가 너무 다 받아주고 애가 순둥순둥하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야. 그러면 너만 힘들어져. 참으면 골병 나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아프지. 그러지 마.”
언제부터일까요. 착한 건 나쁜 게 되어버린 것이. 실제로 난 착한 것도 아녜요. 단지 멍청한 거예요.
대각선으로 희미해지는 잔상에 저절로 눈길이 돌아가요. 바로 한 달 전까지 끈질게 따라붙던 얼굴이 기억나지를 않아요. 새로운 두근거림에 오로지 단 하나의 얼굴이 마음에 입주했음을 암시해요. 누군가가 나가며 누군가가 찾아왔습니다. 기쁘지 않아요. 이번에도 고통의 길로 안내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어림없지요. 내게 행복이란, 꿈도 꾼 적 없는걸요. 제발 단 한 번쯤은 사랑이 내 편이 되어주기를-바랐으나 한사코 들어주신 적 없으세요. 온갖 신께 다 빌어보았으나 받아주지를 않으세요. 그러니 누군가가 마음속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다짜고짜 제 짐을 내려놓고서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겠다 통보하면, 무작정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태껏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 혹여나 사랑이 아니라면 어떡하지? 했던 적은 몇 없거든요. 손가락이 접히지도 않아요. 그런데 반대로 사랑이라면 어쩌지, 어떡하지, 정말 어쩌면 좋지, 했던 적은 무수합니다. 줄곧 그래왔어요. 내 모든 사랑은 실패를 반복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으니까요. 기필코 유한한 마음이라고. 마음엔 총량이 있는데 그걸 다하면 사랑할 수 없는 거라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주지도 못한다고 믿고 싶은데. 불시에 찾아온 얼굴엔 한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네요. 이토록 사랑엔 면역이 없어요. 당신 앞, 상실하는 모든 언어를 제쳐두고서 오롯한 눈빛만을 보낼 수밖에 없어요.
있지요. 다른 팀 대리님은 나를 걱정하여, “자존감은 타인을 통해 채울 수 없어.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아닌 스스로가 채워야만 하는 거야. 네가 너를 사랑해야 해. 그래야 달라질 수 있어.” 하세요. 난 한참을 침잠해요. 붉어진 눈시울과 코끝으로 땅바닥을 응시하며 오랜 시간 가라앉아요. 그러면서 생각해낸 거라고는 고작 ‘만일 당신이라면?’입니다. 당신을 나를 사랑해 준다면.
해가 짧아지고 밤은 길어졌어요.
오래오래 잠에 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