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by 주또

“회사 다니기 힘들어.”

웅얼거리자, 동생이 날 힐끔 바라보고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다들 그렇지.”

난 그 심드렁함이 마음에 들지 않아, 퍼석한 건조함이 심기를 건드려 “위로해달라고!” 빽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여전히 부동자세로 핸드폰을 응시했다. “왜 이렇게 우울해해.“ 이번엔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섣불리 입을 열 경우 왈칵 눈물이 날 듯했기 때문이었다. 동생 앞에서조차 울음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동생은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챘을까. “콩나물 알지. 콩나물에 물 주듯 다 자라는 겨.” 뭔가를 빼먹어도 한참 빼먹은듯한 문장을 툭 던졌다. 입술을 비죽거리며, “난 콩나물이 아닌데 뭔 소리야.” 툴툴거렸다. 동생은 일말의 타격감도 없다는 듯, 곧이어 “미운 오리 새끼도 오리 아녔어. 누난 백조인가 보지 뭐.” 낄낄 웃었다. 그러고는 안경을 가지러 간다며 제 방으로 튀었다.


난 혼자 덩그러니 된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전기장판 온도를 40도까지 올린 뒤 주황색 불빛 하나를 켜놓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몇몇 얼굴들이 어지러웠다. 내일이 오면 다시금 회사를 가고 일을 하고 하기 싫은 것들을 하며 보기 싫은 얼굴들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 숨이 막혔다. 누군가 내 위로 올라와 가슴 언저리 부근을 묵직하게 누르는 듯했다. 답답해졌다. 당장 내려와, 고함을 지르고팠으나 목울대가 꽉 막혔다. 오늘은 채원과 인영을 만났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을 얘기했다. 채원은 “너처럼 순한 애가 어딨다고 너한테 그러냐.” 내가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듯 대답했다. 옆에 있던 인영이 한술 더 떠 욕을 해주었다. 채원은 언제까지 그곳을 다닐 거냐 했다. 인영도 맞받아쳤다. 글쎄. 딱히 정해둔 것은 아녔다.


처음엔 2년. 2년이 조금 넘은 시기가 되니, 한 3년은 다녀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다른 곳을 가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거기서 또 새롭게 적응해서 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찔하다. 더 나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현재에 안주해 살고 싶진 않고. 처음 입사했을 적, 1년 정도 위염 약과 역류성 식도염 약을 달고 살았다. 그 안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 메니에르라는 병의 약까지 복용하게 되었다. 그에 더불어 두통약도 챙겨 먹고 이것저것, 늘어나는 약의 개수를 세지 않고서 밥 먹듯 먹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은 “약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혀를 찼다. 게다가 입사 초반엔 2주 만에 7kg이 빠지기까지 했었다. 나날이 아파서, 주말엔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약속을 모두 취소한 상태로 집에서 앓아누웠다. 화장실에서 울고 버스에서 마스크를 눈까지 올린 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울고 집으로 돌아와 잠들기 전 몰래 울었다.


예민한 기질을 달래지 못해 성한 곳이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사람의 눈빛이 조금만 어긋나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내가 뱉은 말들을 반성하고 별거 아닌 일들을 자책하며 나를 좀먹었다.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살아야할 자신이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 짧게 만났던 이에게도 툭하면 화를 냈고 언성을 높였다. 미안한 일인걸 알면서도 못되게 굴었다. 다른 이들에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쩔쩔매기만 하면서 내가 유일하게 분풀이 할 수 있는 곳이 녀석이었다. 다수에게 물이었지만 녀석에겐 불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 타버렸다. 사랑도 무엇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에도 버거웠던 시기였다. 그렇게 1년이 좀 지나니까 나아지는 듯했다. 전혀 무관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고 날 괴롭게 만드는 일들은 널려있었으나, 그럼에도 차츰 괜찮아지고 있었다. 하나하나 다 이겨내며 버텼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2년을 버티고 이제 2년 4개월정도 된 것 같다. 일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사고를 해결하는 범위 또한 넓어졌다. 그러나 나는 여태 회사 화장실에서 울고 회사에서 나오면 흐리멍텅한 눈으로 거리를 거닌다. 옳지 않은 것들에 반박하지 못하고 수긍한다. 열심히 하다가도 회의감을 느낀다.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는 건 안다. 누누이 말했듯이, 다들 이렇게 산다는 건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한다. 도리어 화가 된다. 다들 그렇게 살아, 이 말을 들을 시 힘이 빠진다. 신은 대체 무엇을 누리기 위해 다들 이렇게 살도록 만들었나.


사람들은 늘 나를 밝은 아이인 줄로만 안다. 어떠한 말을 해도 다 받아주는 인간으로 안다. 제일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가장 친한 차장님께 “제가 만만한 스타일인가요?” 물었다. 차장님은 “네가 잘 웃어주고 리액션도 잘해주니까..” 안쓰럽단 눈빛으로 주시했다.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무얼 먹어도 속이 불편했다. 맨날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내가 고장 난 라디오 같았다. 차라리 부숴야 이 지겨운 소음을 멈출 수 있지 않나? 고민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무시하기로 했다. 신경 쓰며 감정을 버리는 짓도 질려버렸기에 완벽히 타인이기로 했다. 아니 타인보다도 덩어리로 치부해버리기로 했다. 그냥 소리를 내는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저건 인간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회사에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오셨다. 건물이 넓다 보니 혼자서 청소하시기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다가가 “힘드시죠?” 말을 붙였다.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마지막으로 아주머니께서는 “고마워요.”하셨다.


고마운 게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은 듣는 순간 도리어 내가 더 고마워졌다. 좋아하는 것들이 차츰 사라져가는 요즘. 덩달아 고마움 또한 인색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고마울 수 있는 날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

도미노 피자 포장 1+1 데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 애를 먹었다. 왜 할 때마다 이리도 방법이 헷갈리는지. 결국 수진이와 고군분투하다가 수진이가 전화로 주문했다. 팀장님과 수진이랑 나랑 셋이서 패딩을 입고서 피자를 가지러 갔다. 가는 동안에도 종알종알 떠든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이러한 순간들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 씁쓸해졌다. 좋았던 순간들은 필히 오래 지속되지를 않고 반드시 나를 슬프게 만드는 시기가 찾아온다. 쓸데없이 이런 걸 너무 일찍이 깨달아 기쁘면 불안해졌다. 영원은 슬픔에게만 붙일 수 있는 단어였다. 영원을 검색할 경우 유의어로 신이 나온다. 영원은 신이 파놓은 함정 같은 게 아닐까. 잠시나마 영원을 꿈꾸고 슬퍼하는 일이 잦다. 영원이라는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기를, 경계해야 했다.


느닷없이 팀장님께서 장갑을 선물해 주셨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다정을 받게 될 때면 마음이 한없이 포근해져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나도 더 잘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진다.


“항상 제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잘 알아주고 가까이에서 헤아려주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가 말하고 공감을 얻고 위안과 조언을 얻었었는데. 당장 이제 다음 주부터 없어진다고 하니까... 그간 정도 많이 들었고... 함께할 때 너무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인데...”

갑작스러운 누군가와의 결별을 맞이하게 되어 우울에 빠진 내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그럴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게 슬프네. 이제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해 주면 안 될까?”

우린 둘 다 안타깝고 슬펐다.


회사 사람들도 밖에서 보면 그냥 단순히 사람 한 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급이 높든 낮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그저 이 지구상에 살아 숨 쉬는 나와 같은 사람 한 명. 이러한 생각이 든 것은 2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처음이었다. 그래서 낯설었고 뿌듯했다. 만일 회사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회사에서 만나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되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준다. 알려줄 때마다 왠지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회사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대부분 활기차고 밝고 명랑한 모습들인데 글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조금도 묻어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다른 팀 과장님과 계정을 공유했다. 그분과는 사진에 대한 이야기만 한 적이 있었지 글이라든가 그림이라든가, 하는 것들에는 조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망설이다 계정을 알려주게 되었다. 과장님도 글을 썼던 적이 있는 분이었다. 혼자 끄적이는 걸, 나와 마찬가지로 하던 분이었다. 동질감이 들면서 와다다 글에 대해, 그림에 대해 약간은 진솔한 마음을 내비쳤다. 과장님이 자신이 썼던 글을 보여주었다. 그중 <냄새>라는 제목의 글이 가장 인상 깊었고 가슴에 와닿았다. 난 향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믿는 쪽이었고 과장님도 그러한 듯했다. 앞으로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는 말에 과장님으로부터 돌아온 답장은 이랬다.

[내가 존경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이 모든 이들과의 좋은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앞으로 지내다 보면 사람이기에 실망할 일도 생기고 삐걱거릴 때도 있고 그러할 테지만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라는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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