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by 주또

5일 만에 무려 4킬로그램이 빠졌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걸렀다. 어쩔 수 없는 식사 약속이 잡힐 경우 새 모이만큼 입에 넣고서 수저를 내려놓았다. 당최 음식물이 목으로 넘어가지를 않았다. 그나마 단것, 군것질거리는 몇 개 주워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제대로 된 식사는 불가였다. 날이 따스했다. 4월이 매우 끔찍했다. 하지만 부디 5월이 느리게 도착했으면 좋겠다. 봄을 밉다 말한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항상 어느 계절이 싫어? 라는 질문에 노상 여름이란 답변만 했지 봄이란 생각을 가져본 건 낯선 일이었다. 상아도 그랬다.


[4월이 제일 싫어.]

슬픈 일들이 사방에 깔려있었다. 꽃도 피고 새싹도 돋아나는 가운데 나 홀로 퍼석하게 메말라갔다. 당장 다음 주만 지나면 소연 팀장님은 퇴사를 하신다. 며칠 내내 퇴사 선물을 고민하다 결국엔 대놓고 물어보았다.


“팀장님 가지고 싶은 거 없어요?”

팀장님의 맑은 동공이 내게 닿았다. 지체 없는 음성이 이어졌다.

“주영이의 행복.”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건 없었다. 아마 평생을 찾아도 구하지 못할 것이었다. 씁쓸한 낯빛을 숨길 수 없었다. 산다는 게 불편했다. 가끔은 호흡하는 법을 떠올리다가 방법을 잊었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공간 안을 가득 메웠다. 삼 주째 단 하루도 쉬지 않고서 부단히 바깥으로 나돌고 있는 중이었다. 혼자 있을 시 생각에 깔려 죽을 듯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수진은 메모장을 열고서 적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을 죄다 읊어보라고 했다. 줄줄이 얘기했다. 일부러 실수인 척 몇 가지 빼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무려 열네 가지가 넘었다. 수진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짓을 멈추곤 오만상을 지으며 구시렁거렸다.


“어우, 야 이렇게 생각이 많으면 어떻게 사냐 대체. 너만 힘들어.”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미간을 긁적였다. 아직 제일 아픈 한 발은 숨겨두었다. 손바닥 안은 땀이 흥건하여 금세 끈적해졌다. 연이은 불안과 초조. 긴장감이 괴롭게 만들었다. 잇몸이 붓고 눈 밑이 퀭했다. 부품 빠진 기계처럼 굴었다. 왜 사람은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슬픔만 골라 감당할 수 없는 걸까? 해도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무엇을 붙잡고 투정 부려야 하나 골몰했다. 바짓가랑이라도 부여잡고서 늘어지고픈 심정이었다. 하루하루 생명력을 다해 가는 중. 요새는 어제 있었던 일들이 잘 기억나지를 않고 방금 내가 했던 말들도 잊어버려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 거냐, 질문한다면 글쎄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위로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왜 본인을 버리고 가냐는 아라 씨의 농담에 평정심을 잃고서 욱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요.”

정작 난 버릴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인간이었다.


*

술에 만취한 친구가 초면인 사람에게 무턱대고 시비를 걸었다. 겨우겨우 친구를 뜯어말리고 타일러 택시를 불렀다. 함께 탔다. 친구의 집 주소를 불렀다. 이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는 건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이 천방지축 아이와는. 친구가 뒷좌석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누웠다. 짧은 치마를 입은 친구의 다리 위에 코트를 얹어주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좋지 않은 일들은 왜 한꺼번에 밀려오는가. 눈물이 터질듯했다.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전부 다 버거워졌다. 내가 서있는 세계가 푹, 꺼져버릴 듯했다.


친구는 이러한 나의 심리상태를 알 턱이 없었다. 도로 일어나 속이 불편하다며 엉겨 붙었다. 따뜻한 체온과 숨소리가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연신 향기가 좋다고 했다. 아마 외출 직전 뿌리고 온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으리라. 작고 마른 친구의 등을 토닥였다. 친구가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너 취했지..”

난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은 맨정신이었다. 어처구니 없다. 대꾸하기에도 지친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응, 내가 많이 취했어.”

쏟아진 눈물이 얼굴을 흠뻑 적셨다.


*

잠이 든 친구를 깨워서 코트를 입히고 가방을 챙겼다. 택시에서 내렸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친구는 계속해서 비틀거렸다. 팔을 잡아 부축했다. 집 앞까지 데려갔다. 친구는 어서 너의 택시를 잡으라 재촉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널 집에 데려다주겠니.”

추억 삼아버리기로 했다. 친구가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후 나도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주저앉았다. 다 포기 하고 싶었다.


사탕을 빼앗긴 아이인 양 엉엉 목놓아 울었다.


*

[주영님 요즘 수업 계속 취소하셨는데 일이 바쁘신가요~? 아니면 또 어지러우세요..~?]

카카오톡 대화 목록을 정리하다 문득 필라테스 대화방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연달아 수업 취소를 한 까닭에 온 연락이었다. 본래 더 가지는 못하더라도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는 곧잘 나갔던 터라 강사님께서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답장을 보냈다. 대충 별 일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주엔 꼭 잘 나가겠다는 내용도 덧붙였던 것 같다. 맞나?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되짚어볼 수록 흐려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불과 십분 전에 일어났던 일들마저도 십년전 일 마냥 가물가물하다.


전화가 울렸다. 받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을뿐더러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슬퍼하고자 했다. 바쁘게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찾아오는 공허함. 다른 누군가와 슬픔은 나눌 수 없는 걸까. 내가 나를 속이고자 노력했다. 기쁨의 가면을 쓰고자 했다. 하나 잘 되지를 않아 빈번히 실패했다. 난 감정이 뒷모습에서도 묻어나는 인간이었다.


“요즘 너 이상해.”

수진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렇지. 요즘 나 이상하지.”

어설픈 웃음으로 마무했다. 드라마 <서른, 아홉> 대사가 떠오른다.


“낙엽만 뒹굴어도 웃는 게 아니라 울게 생겼어, 너는.”

몸을 새우처럼 둥글게 말았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었다.


*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기억이 있는데 이마저도 새하얗게 바래질까 봐 두려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