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주간

by 주또

부쩍 핼쑥해졌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공원을 한 바퀴 돈다. 두 바퀴. 세 바퀴. 시간이 간다. 어느덧 시각은 여덟시를 넘겼다. 이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은 오랜만이었다. 아니 난생처음이었던가? 누가 앞에서 보고 있든 말든 간에 쪽팔린 줄도 몰랐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댐이 허물어졌다. 눈물바다가 일어났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과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미래가 불안해졌을 뿐이었다. 불어 터진 눈가를 매만졌다.


핸드폰을 꺼냈다. 잠잠했다. 흐르는 시간. 일분일초가 피부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욕을 먹고 싶었다. 누군가 내게 와 쌍욕을 한다 하여도 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듯했다. 설령 따귀를 맞는다 하여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마냥 고개를 주억거리며 흐리멍덩한 초점으로 어떠한 것에도 시선을 바로 두지 못할 듯했다. 더는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런 건 끝끝내 오지 않았으면 하는데. 다른 팀 차장님께서 내 손바닥 안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펼쳐보니 대기번호표였다. 그곳엔 7이 적혀있었다. 차장님은 행운의 숫자라며,


“특별히 너 줄게.”

하셨다. 모니터에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행운이 오지 않을까? 한참 멀리 있는 모양이다. 오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려나. 너무 늦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초조해졌다. 사실상 이렇게 바깥으로만 나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녔다. 전혀 쉴 틈을 허락하지 않고서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덕현은 안쓰러워했다.


“이제 그만 혼자만의 시간을 다시 가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걸 회피하지 말고 정면돌파해 봐. 그러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어.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서 잊으려는 네 마음도 이해가 가긴 하는데, 지금의 넌 너무 피로해 보이고 무엇보다도 건강이 악화되니까.”

썩 안색이 좋지 않았다. 숨기려 해도 금세 들통났다. 이런 식으로 연기력이 꽝이었다. 극복할 수 있으려나. 필히 그래야만 한다. 현재 악몽을 꾸고 있는 거다. 내가 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러니 어서 깨어나야 한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이 무거운 침대 이불 속을 빠져나가야 한다. 좋은 생각을 하자. 긍정을 갖자. 상당히 가라앉은 나를 알아챈 많은 이들이 심심치 않은 위로와 안부를 물어왔다. 인스타그램 DM 알림이 울렸다.


[주영이 이번 주는 덜 슬픈 주간이 되길. 잘 자.]

퇴사하셨음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세진 팀장님이었다. 덜 슬픈 주간, 되뇌었다. 민구는 전화와 메시지로 고민을 들었다.


“네가 왜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너도 네가 딱 보고서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있듯,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왜냐하면 통틀어서 그냥 나란 사람 자체가 별로인 건데. 이렇게 말하면 이유가 될까?


[인생? 우울 속 행복 찾기 X]

[넌 행복 속 우울 찾기 중이야.]

[행복에 둘러싸여서 우울한 게 잘 보이는 듯.]

내가 받은 애정이 무소용해지지 않도록 힘을 내 봐야 한다.


*

메모장을 열었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 당신과 나란히 발맞춰 걸으며 산책이나 하고 싶어요. 이런 나의 바람은 한 평생 이뤄질 리 없다만 그래도 괜찮아요. 단순히 사랑만 하는 마음은 죄가 아니라 했잖아요. 벌써 가물가물한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몇 해가 흘러야 무미건조한 어투로 발음할 수 있으려나. 민구는 이전에 좋아했던 사람과의 연락을 먼저 끊었다고 했다. 언제 답장이 오려나, 기다리는 게 싫어 본인이 읽고 이어가기를 관둬버렸다고. 더불어 마음을 접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둘이 만났을 적, 이 사람이 본인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새삼 깨닫기 되었기 때문이라 했다. 주변 친한 사람들이라 하면 죄다 알 법한 본인에 대한 점을 하나도 몰랐었다고 한다. 그날을 이후로 마침표를 찍었더란다.


“그렇지. 뭔지 알아.”

민구의 모든 이야기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왜 나 자신은 마침표를 찍지 못해 질질 끌고 있나, 생각했다.


*

당신을 조금 더 일찍 만나지 못한 세월을 후회하며 살게요. 만일 내가 먼저 당신을 알았더라면, 비록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테지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은 자유 아니겠어요.


*

[아마 주또님께서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삶에 대해서 진중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서.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아요. 사정이 있으니까,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자신에 대해서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괜한 참견을 해봅니다.]

아침 출근길.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며 싱글벙글이었다. 몇 줄 정성스레 적혀있는 문장에 웃음이 났다.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독자라고 칭했다. 일면식 없는 이들한테서 위로를 받는 일은 참으로 신기하고 굉장한 울림을 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글을 읽고서 그 사람을 응원하게 된다는 건 대체 어떤 마음일까? 둥글어진다. 마음 하나하나 몹시 소중하다. 이러한 댓글 혹은 DM을 받을 때마다 깡그리 캡처해서 보관해둔다. 간혹가다 아주아주 힘이 든 날 꺼내볼 시 힘을 얻곤 한다.


맑은 날이었다. 따뜻했고 포근했다. 업무도 순조롭게 돌아갔다. 극도로 혐오하는 이와 대화를 나누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서 나쁘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 심박수가 증가하는 일은 없었다. 트라우마라고 했던가.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더 큰 고통을 맞이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런 걸 뜻밖의 발견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보다 더 커다란 고통이 왔다는 건 전혀 반가워야 할 만한 상황이 아녔다.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중간중간 넋을 놓는 버릇이 생겼다. 이상하고 수상했다. 두 손바닥을 펼쳐 거듭 얼굴을 묻었다.


뭐든 해석하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싶었다. 멋대로 살고 싶었다. 추억할 거리가 추가된다는 건 내게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일인가, 침잠했다. 저녁엔 세진 팀장님에게 꽃 선물을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배송지를 입력했다. 꽃은 항상 날 설레게 했다. 받은 적이 드문 선물이라 그런가 싶다. 요새 아파트 단지 내에 핀 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나도 서툴게 한 장 남겼다. 물론 그들과 달리 내 얼굴은 말고, 그저 만개한 꽃송이들만. 그들이 남기는 계절의 아름다움에 동참해 본다.


*

열시가 넘은 시각. 민경이 블로그에 남긴 나에 관한 글을 재차 정독해 본다.


[언니에 대해 할 말은 진짜 많은데 우선 너무 멋진 사람이다. 부지런하고 솔직하고 자기 내면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멋있다. 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나? 생각하게 된다. 언닌 그게 일상인가 싶다. 그래서 많이 힘들어 하나보다. 난 언니가 타인에게 그렇듯 본인한테도 유해졌으면 한다. 그게 다다.]

나를 이런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게, 상당한 행운이다. 내가 민경에게 길고 긴 시간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훗날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만, 되도록이면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관계이기를 바란다.


지난주 민경과 회사 이층 쇼룸 침대에 누워 나누었던 대화들을 되짚어본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신만의 얘기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날 민경에게 후자에 속하는 얘기 하나쯤을 꺼내놓았다. 민경이는 가벼운 얘기라 여겼을 수도 있겠다만 내겐 결코 그렇지 않았다. 가까웠던 이와 멀어진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인간관계는 종잡을 수 없다. 오늘 웃으며 본 사람이 내일은 내게 모진 말을 퍼부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토록 예측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난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마주하는 모든 인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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