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모닝

by 주또

시간이 상당히 빠르게 흘러 무섭다. 점점 더 속도를 올린다. 이대로 남겨질 후의 시간들이 벌써부터 고통인지라 지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본다. 다리를 떤다. 손톱을 뜯는다. 굳게 다문 잇새로 탁한 숨이 뿜어져 나온다. 옆에 소연 팀장님이 있었더라면,


“이주영 한숨 좀 그만 쉬어! 생각 그만.”

한소리 했을 거였다. 이제 내가 감당할 아픔을 헤아려줄 이가 없다. 막막한 얼굴로 슬픔을 견뎌내는 짓을 해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정작 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한결 홀가분해짐을 느끼긴 했다만 아직 부족했다. 여행 중에도 불안 증세가 끊이지를 않았다. 초조한 눈동자는 몇 번이고 갈피를 잃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과 하나가 된 핸드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도 강화유리 필름만 깨져있었다. 툭툭 털고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은 나중에 벌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손가락을 베었다. 역시나 깨진 필름을 떼어내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피 묻은 핸드폰 케이스를 쓱 문질렀다. 닦아냈다. 예상하지 않은 건 아녔다. 꽤나 이리저리 깨지고 날카로운 조각도 보였기에 언젠가 일어나겠더니 했다. 하나 이렇게 빨리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연락하던 사람에게 이 일을 얘기했다. 필름을 버리라 했다. 그의 말대로 했다. 진작 이럴 걸 왜 무심한 척했나.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다칠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감정이 켜켜이 쌓였다. 여태 그만하라는 싫증을 듣게 될까 두려워졌다. 전화를 하지 않아야 한다.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야 한다.


거진 일 년 반 만에 마주한 세진 팀장님은 당당해지기 위해 출근 곡으로 IVE(아이브)의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신이 난 듯 마음에 들었던 가사를 읊어주었다. 그 가운데,


[네가 보낸 DM을 읽고 나서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

란 가사를 곰곰이 되새겨봤다. 그의 답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수 있겠구나. 알고 보니 답이 없는 게 답일 수도 있겠구나. 침묵은 다양한 이유로 생성되고 해석된다. 무관심에 대해 골몰했다. 간혹 그는 나의 뻔한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놀아주는 건가? 누구나 할 만한 말들을 하고 누구나 하지 않을 만한 상상을 한다. 실은 난 겉만 멀쩡한 인간인지도 모른다. 멀쩡하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동떨어진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배회하니 공허해진다. 얇아진 지갑 따라 얄팍해지는 마음이다. 애정이 충족되긴커녕 결핍이 자꾸 드러나 부끄러워진다. 원하는 상대에게 받지 못하는 사랑인 터라 그러한가. 급격히 빠진 살로 인해 건강에 더 무리가 간다. 억지로라도 더 먹고 금세 포동 포동 해진다. 취침시간이 늦어졌다. 캘린더엔 누구를 만났다는 표시가 늘어났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좀 쉬어라. 안 좋아 보인다는 둥 요즘 쓰는 글이 더 우중충해졌다는 둥 이상하다는 둥. 과연 차차 좋아질 일이 남았나. 나빠질 일만 늦추면 다행일 텐데.


[태생부터 잘못된 게 아니라 태생부터 사랑이 많은 아이로 태어난 게 아닐까요? 세상에 줄 사랑이 넘쳐흘러 사랑을 안 줄 수 없는 사람 같은 거요! 저도 이런 제 성격이 단점이라고 책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 사랑이더라고요. 사랑하는 본인을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요. 어떤 모양이든 이 세상은 사랑이더라고요.]

글에 달린 댓글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었다. 내 세상은 사랑 빼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 진저리 난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 또한 제대로 된 사랑을. 사랑 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서로가 사랑해서 하는 연애가 부러워. 난 늘 짝사랑에 익숙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될 수 없었거든. 그래서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고 좋아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그리고 질투가 날 때마다 마음껏 질투할 수 있는 점도.”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머리맡에 흩어지는 숱한 슬픔 뭉텅이들. 한 움큼 쥐어다가 탈탈 털어내버리고 싶다. 깨진 액정필름을 떼어내듯 떼어버리고 싶다. 새로 시작하면 다시금 빛날 수 있을까. 반짝반짝 순하고 예쁜 마음으로. 내면을 잘 갈고닦는 사람이 되려 했었는데. 번번이 실패에 가까웠다. 한동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머물러야지, 계획을 세우고 관뒀다. 태엽을 감아 앞으로만 가는 시간을 잡아둘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만일 그럴 경우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듯하다.


[왜 밥을 안 먹어?]

[인생이 재미가 없어서요.]


이성적인 게 어렵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맘 놓고 울적해할 변명거리가 생겼다.


난생처음 봄을

[슬픔의 계절.]

이라고 불렀다.


*

그는 대단한 사람이다. 내가 지어낸 별거 아닌 물음표들을 근사한 마침표로 매듭지어주고 지진 난 마음에 평화를 되찾아준다. 더불어 말 한마디로 결코 하지 못할 거라 했던 일들을 하게 만든다. 그는 여러모로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

소연 팀장님의 퇴사 전날이었다. 맥모닝을 먹을 거냐 묻던 그녀는 투명 유리창 앞에서 맥도날드 봉지를 들고 흔들었다. 그녀와 이층 쇼룸 소파에 나란히 앉아 포장을 풀었다. 제일 먼저 콜라를 한입 마시고 나서 해시브라운을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기름진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오래간만에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소연 팀장님은 버거를 열심히 먹었다. 그런 그녀를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았다. 참 잘 먹는다. 우리 팀장님. 귀여웠다.


업무가 시작되려면 아직 이십분이란 시간이 남아있었다. 여유로웠다. 일찍 오면 소연 팀장님과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을 시간이 있어 좋았다. 콜라 빨대를 쪽쪽 빨았다. 소연 팀장님은 버거를 다 해치웠다. 그러고는 말똥말똥 나를 보며 물었다.


“주영이 왜 안 먹어?”

의아했다. 무엇을?

“주영이 버거 옆에 놨잖아. 설마 내가 내 것만 사 온 줄 알았어?”

헐랭. 전혀 몰랐다. 그녀가 보란 듯이 버거를 집어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개구지게 한마디 덧붙였다.

“이 언니 돼지같이 혼자 먹는다고 생각했겠네!”

“아 아니에요!”

으하하하. 두 사람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겹쳐 울렸다. 다신 오지 않을 출근 시간 전 맞이한 아침이었다. 내일이면 우리가 이별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를 않았다. 이토록 영원할 것 같은데. 누가 와서 거짓말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몇 차례 되뇌었다.


아주아주 슬픈 꿈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깨어나고 싶어 손톱 밑을 있는 힘껏 꽉 눌러도 일어날 수 없었다. 수시로 멍 때리다가 지인이 다가와 어깨를 움켜쥐면 그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건 추후 좋은 일이 몰려올 거란 징조라 한다. 한데 왜 나는 꾸준히 안 좋기만 할 듯한지, 내내 불길하다. 얼마 전 새로이 맺은 인연은 내게 이러한 말을 했다.


“착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 태생이 착한 사람과 학습으로 착한 척하는 사람. 내가 보기엔 넌 전자 같아. 태생이 착해서 남을 너무 신경 쓰고 배려하는 사람.”

착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착한 건 좋은 게 아니란 판단이 섰다. 애매한 표정으로 눈썹을 긁적거렸다. 조금은 독해지고 싶다. 친한 차장님이 매일 나는 그래서 안 되는 거라 하더라. 약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물렁거리고 주위 여러 사람들의 걱정을 달고 산다.


새로운 인연이랑은 한참 대화를 나눴다. 네 시간 넘게.


“너처럼 결이 비슷한 사람을 처음 만난 것 같아. 뭔가 우주를 떠돌다가 얼떨결에 발견한 것 같고 그러네. 원시인이 불을 처음 본 느낌이 이랬을까? 되게 신기하다.”

상대는 마치 우주선을 마주한 우주인 마냥 신이 나서 말했다. 두 눈동자가 별을 품었다. 일순간 내가 일렁였다.


*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화가 많이 났니?]

[만나는 날 내가 혼자 널 계속 기다렸으면 어쩌려고.]

[그러네.. 미안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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