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

by 주또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속이는 중이다. 울 타이밍을 주지 않으려 부지런히 약속을 잡는다. 이와 동시에 주변인들에게는 맛깔나는 연기를 선보인다. 각본의 제목은 <행복한 척하기>이다. 관객을 앞에 둔 배우인 양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일부러 더 많이 과장해서 우스꽝스러운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 대화를 주도하며 자처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연신 좋아요, 이런 거 좋아해요,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그런 줄로만 안다.


“주영 씨 요새 행복해 보이네.”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감히 행복과 나란해지는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나도 당신들이 깜빡 속아 넘어가 주어 다행이야. 안도한다. 울어서는 안 된다. 울지 않기 위해 평소 듣지 않던 신나는 노래를 듣고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보고 이런 게 나아지는 길인지는 알 수 없다만 무작정 뭐든 저질러 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에는 활동적인 건 선호하지 않는 편인 내가 클라이밍에 도전했다. 강사님께서는 수업 중 넘어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넘어지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고 하셨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는 홀드에 얼굴을 부딪혀 크게 다칠 수가 있다 하셨다. 최대한 체중을 골고루 분포해 두 발바닥에 힘을 주어 땅을 디뎌야 한다고 하셨고 후로는 뒤구르기를 하고 일어서면 된다고 하셨다. 난 그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오호, 호응했다. 넘어지는 데에도 방법이 있는 거라니 신기했다. 떨어지고 넘어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시 잘 일어나 새로 시작하면 되는 점이 신선했다.


본래 같았으면 겁이 많아 높은 곳은 꿈도 못 꿨다. 물론 초보자 코스에 그다지 높은 높이는 아녔다만 그럼에도 난 겁이 많아 이런 걸 할 수 있으리란 상상도 전혀 못했던 예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죽진 않겠지. 과한 망상을 뒤로하고서 대강 걱정만 하고는 홀드를 집었다. 예상외로 제법 잘 올랐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손발을 하나씩 옮길 때마다 으악! 소리를 질러 강사님께서는,


“제가 지금 여자분을 가르치고 있는 거 맞죠?”

하여 웃음이 터졌을 뿐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단계 중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있는 영역까진 성공했다. 빨간색이 가장 쉬운 거였다. 비록 어려운 코스를 해낸 것은 아녔다만 유별나게 난리 법석을 다 떨어댄 탓이었을까. 지켜보던 여러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날렸다. 워후! 몸 둘 바를 모르겠는 나는 얼굴이 붉어져 수차례 감사합니다,를 전하고 나서 매트 아래로 내려왔다. 낙하하는 과정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질 때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발바닥 그리고 등 뒤 순차적으로 와닿는 푹신한 매트의 감촉에 중얼거렸다.


“와 살았다.”

산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으려나. 아무리 떨어지고 넘어진다 한들 잘 넘어져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오르면 되는 거 아니려나. 아울러 무서울 줄로만 알았던 바닥이 이리도 푹신할 수 있는 거라는 점. 지레 겁먹어봤자 소용없다.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걱정을 미리 결제하십니까?]

끔찍이도 애정 한 이가 보내왔던 메시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단호하게 속으로 대꾸했다.


*

매일 같은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꾼다. 그리워 깨어나면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울상이 되어버린다. 이때도 역시 울지 않으려 노력한다.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터지려 할 신호엔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한다. 차라리 나조차도 내가 울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얼굴 전체를 흠뻑 적셔버린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면 조금은 진정된 감정으로 밖을 나올 수가 있다. 보고 싶다, 솔직할 수 없다는 현실이 다소 버거워 단지 얼굴만 적셨을 뿐이나 몸이 죄다 푹 젖은 것 마냥 무겁다. 이건 비밀인데 비가 오는 날엔 당장 그 속으로 뛰어들어 모든 걸 씻어내고픈 충동이 든다.


며칠째 술이 고프다. 흐트러지는 사람이 싫다는 말만 듣지 않았더라면 현재 체질에 맞지 않고 나발이고 몸에 물보다 술이 더 많이 도는 나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술이라면 질색해 매번 거부했었다. 꼭 고통이 찾아왔기에. 그러나 지금은 그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정신을 잃고 싶다.


*

수진과 우리의 헤어짐에 관해 얘기했다. 정말 별로 남지 않았다. 한 회사에서 삼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버텨온 동무가 사라진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 알지 못하는 일을 하며 알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게 될 테지. 간간이 연락을 하긴 할 테다만 아무래도 바로 옆에서 봐오는 것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다른 곳 가서도 잘 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모르는 문제가 생겨도 둘이 머리를 맞대고서 어떻게든 해결해 나갔었잖아. 울고 웃고 의지도 참 많이 했었는데. 어디서 또 너 같은 동기이자 팀원, 친구를 만날 수 있겠어. 너 없이 해내야 한다는 게 무섭다.”

수진의 차분하지만 눅눅한 음성에 공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너 없이 시작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난다고.


“넌 어디서든 사랑받을 듯해. 뭐든 잘 해낼듯하고.”

수진도 내게 그럴 거라고 했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올해는 이별이 수두룩했다. 처음엔 가까이 있지만 멀었던 사람. 미웠던 사람. 친했던 사람. 오랜 친구. 내가 전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던 사람. 전부일 수도 있었던 사람. 등등 이별이 널려있었다. 단계별로 약한 슬픔부터 강렬한 슬픔까지. 어쩌면 내가 이리 송두리째 흔들린 이유는 모두 이별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최근 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에서 사건을 해결한 뒤 팀원을 떠나는 결말에서 울었다. 이를 안 수진은 안쓰럽단 눈빛을 보내왔다.


“넌 정말 이별에 약한가 보다.”

그런가.

허공에 부르는 이름만 늘어간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러하다.


*

상아를 만난다. 내게 실망한 일이 있어 나를 매몰차게 밀어내야 했던 상아의 마음을 안다. 반쯤 미쳐있는 나를 상아가 보기엔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을까. 오늘 그런 그녀를 삼 주 만에 만난다. 그녀가 어떠한 표정을 지으며 날 올려다볼지 모르겠다. 상아 없는 삶을 나름 잘 버텨낸 스스로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앞으로 또 이러한 일을 겪어야 한다 생각하면 가혹하다.


걷는 내내 잔기침이 터져 나왔다.

서먹하지 않게 나를 반겨주었으면 좋겠다.


*

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아님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나?


*

애인과 좋아했던 사람을 잊을 수 있는가?에 관한 토론을 했다. 둘 다 대답은 No였다. 각자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질투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애인은 마냥 이 상황이 웃긴지 한마디 했다.


“우리도 참 별나긴 하다. 지금 만나는 사람 앞에서 전 사랑 얘기를 하다니.”

“근데 난 너랑 이럴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나도.”

애인은 좋아했던 사람은 좋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기 마련이라고. 하물며 얼굴마저 희미해질수록 본인이 생각하고 싶은 얼굴로 생각하여 더 미화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잠자코 경청했다. 행복한다면 이 애랑 행복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하나 나는 무엇이 두려워 자꾸만 행복해지기를 회피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얼굴을 안간힘을 써 빡빡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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