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또 Jun 30. 2023

플러스 여름

서울에 가서 라멘을 먹었다. 다음으로는 카페에 갔다. 두 장소 모두 일본 현지에 온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실제 라멘집에서는 일본인 분이 우리를 안내해 주셨다. 간간이 들리는 알아듣지 못할 일본어에 귀를 쫑긋 세웠다. 카페의 이름은 하츠 코히(はつコーヒー)로 마치 하츠 코이(はつこい)를 연상케했다. 한국어로는 첫사랑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언어유희겠거니 하며 찬찬히 인테리어 내부를 살폈다. 카메라를 들었다.


즉각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픈 충동이 들끓었다. 하나 참았다. 만일 그럴 경우 다신 돌아오지 않을 궁리를 세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여름은 한국의 두 세배 가량 훨씬 더 덥고 습하다더라. 한 5년 전쯤인가. 도쿄 여행을 갔을 적엔 겨울이 한창이었기에 그곳의 여름은 무지했다. 드라마 속에서나 본 청량감이 전부였다. 겪어보지 않아 가늠되지 않았다. 대충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쪽엔 잡지가 쌓여있었다. 별안간 마시멜로가 얹어진 초코 라테 두 잔이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도통 정이 안 가는 여름이다. 이 계절의 경우 그가 당시 입고 있던 하늘색 상의의 등짝 부분이 동그랗게 물들어 땀 자국이 남았던 걸 기억한다. 그는 참 뭐든 열심이었다. 그 모양을 가만 눈에 새기며, 아 내가 저 사람 저래서 좋아했지, 중얼거렸더란다. 여태 이와 같은 사소한 장면들 하나하나 세세하게 간직한다. 왜냐 나마저도 지운다면 정말로 완벽한 타인으로 분리되어버릴 듯하여서. 손끝을 매만지며 우매한 표정을 짓는다.


유튜브 댓글 말마따나 진짜 사랑을 하고 난 후로는 누굴 만나도 시시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딱 그 처지. 당장 보고픈 그를 데려와 눈앞에 앉혀놓고팠다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세상이 굴러가고 있단 게 이상했다. 다소 슬프지만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전쟁 난 건 내 마음이지 현실이 아녔다. 내 마음이 어떻건 간에 주변 상황은 돌아가고 난 일을 해야 했으며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 생활해야 했다. 와중에 근 한 달간 계속해서 나빠지는 기억력은 감안해야 했다. 뭐 없이 새로 쓰이는 이야기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까닭에 기억을 잘 하지 않으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가 차단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팔뚝에 기름이 튄 흉터가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요리를 한단 친구는 여태껏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단다. 내심 부러웠다. 차라리 이럴 바엔 그 시기가 한결 나은 나날들이려나. 그러면서도 인스타그램엔 나름 긍정의 어른인 양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일이란 건 흔하지 않은 기회인데, 그 사람 덕분에 경험할 수 있어 마냥 응원하며 고마워해보려고 합니다.]

작열하는 태양이 죽일 듯 열기를 뿜어냈다. 가게 앞 오토바이가 정차했고 마시멜로를 집어 들었다. 친구의 사십만 원대가 훌쩍 넘는다는 안경테가 반짝였다. 하츠 코이(はつこい) 하나로 인하여 사랑 얘기를 이만큼이나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지겨워. 무진장 한심하다. 눈을 찡그린다.


“뭐 물어볼 거 있거나 고민 있으면 연락해.”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음성.

용건이 있다면 우린 멀어지지 않아도 되나.


*

[왜 마이너스 봄이야?]

[이번 봄에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제게 마이너스 요인이 된 것 같아서요. 흠 근데 또 그만큼 성장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럼 다음은 플러스 여름이 되어야겠네.]

관찰한 지훈 과장님은 변수가 없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나와 달리 잔잔함을 유지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마치 파도 없는 물결 같달까. 누가 와 냅다 바위를 내던지지 않는 이상 내내 저럴듯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노상 차근차근할 수 있나. 평소 왈가닥스럽고 요란스러운 내가 보기엔 신기할 따름이었다. 민경이는 과장님을 보며 사회에 찌든 F라 했다. MBTI, F 이긴 하나 어딘가 감성과 현실을 타협한 것 같은 모습이란다.


난 주로 과장님에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를 쫑알거렸다. 낭만에 부푼 꿈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다지도 실없는 주제를 과장님은 경청했다. 내가 열 마디를 할 시 대개 한 마디 해줄까 말까, 였지만 괜찮았다. 이런 대화가 주는 안온함이 만족스러웠다. 아울러 은연중 영감을 얻기도 했다. 과장님은 예전에 내게 그랬다. 본인이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경우에만 고민 상담을 잘 들어줄 수 있는 것 같다고. 솔직히 난 평생 여유 넘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가 아기 새 마냥 재잘거리는 짓을 관두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끔 과장님을 장난스레 아버지라고 불렀다가 형님이라고 불렀다가 똑바로 부른다. 일곱 살 차이 친구인 셈이다. 맞나. 나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과장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암만 촌스러운 디자인 작업물을 내놓아도 박수를 쳐주는데 웃긴 점은 박수에도 소리가 없단 것이다. 이토록 조용한 사람.


다음 달엔 퇴사자가 꽤나 많을 예정이다. 얼추 헤아려봐도 족히 열 명을 채운다. 그중 우리 팀 수진과 지훈 과장님이 친한 관리부 차장님도 해당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 둘 다 동시에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싱숭생숭하다. 과장님은 동글동글한 눈매를 한껏 축 늘어뜨리며 부탁했다.


“주영이는 퇴사할 거면 일 년 전에 얘기해 줘.”

벌써 준비 중인 거 다 알면서. 개구진 웃음을 흘렸다.

“지금 말해도 빠듯한데요.”

계속될 거라 여겼던 일상이 조금씩 틀어진다. 익숙한 환경에 있음에도 사람 여럿 나간다고 어수선했다. 낯설었다. 남겨지는 역할은 언제나 서글펐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을 말했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가 아직 어리숙한 건, 고작 이런 일로

그가 몹시 보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