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또 Jul 02. 2023

참는 법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안달복달하냐 한다. 맞는 말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는 일은 없다. 다만 난 그가 있을 경우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었고 반대로 그가 없을 시에 거의 하루 종일 쫄쫄 굶어 눈에 띄게 핼쑥해지곤 했다. 현재의 난 감량된 몸무게가 다시 되돌아왔을뿐더러 밥도 잘 먹는다. 우는 횟수도 확연히 줄어들었고 정처 없이 술집이 줄지어진 위험한 거리를 걷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 또한 꾸준히 하고 있는 참이다. 보내지 말아야 할 메시지를 입력하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말다를 반복하지도 않는다. 그의 프로필 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짓도 졸업했다. 참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다.


좋다,는 말보단 좋아하지 않으려 한단 문장을 사용한다. 시간이 약이란 위로는 여태 내게 적용된 범위는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그가 얼마나 내게 커다란 존재였는지 일깨워주는 순간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를 함께 알고 있는 지인들 사이 오가는 그의 험담을 들으며 그런 그를 사랑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다. 전엔 이러한 일들로 인해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 사뭇 달라 혼란을 겪었다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속으로 전부 다 잘 모르면서 하는 소리, 대꾸하고 대충 반응하고 만다. 물론 나도 그의 안 좋은 면모를 알아 한 시기 동안은 마음을 접었단 확신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단 감정에 빠져 살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로 돌고 돌아 내 종착지는 그.


그를 믿지는 않는다. 그도 나를 반만 신뢰한다 했다. 그 답변이 내심 서운하여 내가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이냐며 싱거운 농담으로 툴툴거리기까지 했다. 난 그를 믿지 않는다만 그에게 예측 가능한 인간이 되어주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하려 했고 그가 해달란 건 뭐든 해주고픈 심정으로 지냈다. 아무 소용, 아무 의미 없긴 하다.


저저번달 금요일. 술에 취한 그는 왜 새벽에 내게 연락을 했을까. 그 뒤로 내가 일부러 늦은 잠을 자고 뒤척인단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가끔은 그가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날 책임져주었으면 좋겠단 실없는 상념에 잠기곤 한다.


바이레도 핸드크림을 마지막 한번 쓸 양까지 모두 사용하였다. 더불어 향수도 절반 채 남지 않았다. 로즈 오브 노 맨즈 랜드. 내 글을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지겹도록 봤을 향의 이름. 이 향을 몽땅 소진하고 나면 약간이나마 그리움에서 해방될 수 있으려나? 암만 씻어도 씻기지 않는 그리움. 보고픔. 밤낮 할 것 없이 떠오르는 얼굴과 하루를 공존한다는 사실이. 그가 없이도 사랑은 계속된다. 내가 그에게 덕분에 성장했다는 말을 했던가? 다 써버린 핸드크림을 차마 버리지 못해 서랍 속이 고이 넣어두었다.


괜히 버리지 못할 것들을 버리는 날에는 영락없이 체기가 올라오곤 했다.


*

기한 없는 공허를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하나요. 회색빛깔의 동네. 비는 내리지 않고 습도만 높다. 오늘 아침엔 동생이 날 깨웠다. 벌써 시간이 열한시 반이 넘었다며 언제까지 잘 거냐고 꾸지람을 놓았는데, 막상 기상해 보니 시간은 열 시도 채 되지 않았다. 같이 놀고 싶었나. 귀여웠다. 함께 먹을 노브랜드 햄버거를 주문했다.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고 장난만 쳤던 거 같다. 후로는 씻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집 앞 스타벅스에 가서 일본어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여러모로 기분이 말썽이다. 이주 정도 열심히 한 하루에 열 개씩 일본어 단어 외우기는 순탄하지가 않다. 분명 복습도 했는데 돌아보면 백지상태였다. 취미라 하기는 했지만 어지간히 답답스러웠다. 동생이 개구진 음성으로 아빠에게 물었다.


“누나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멍청하지?”

곧이어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인마, 닮긴 누굴 닮아! 돌연변이지.”

으하하하. 흩어지는 웃음소리.


작년 겨울 무렵이었나. 그때도 일본어 공부를 한다고 까부느라 이곳 스타벅스에 왔었다. 동생과 마주 보고 앉아 동생도 공부를 했던 거 같다. 한데 자리에 앉은지 한 한 시간가량 흘렀을까?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제 앞에 노트북을 두고서 일을 하는 건지 무엇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만 연신 눈물 세례였다. 진짜로 어설프게 우는 게 아니라 흐엉엉, 울었다. 울면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이별하는 중인가? 동생이랑 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 여자를 힐끔거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시켰다.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세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무엇이 그녀를 사람 많은 카페 한가운데에서 울게 만들었을지 문득 궁금하다. 마땅히 울 곳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하기야 나도 가족의 눈을 피해 바깥에서 종종 울었다. 집에서 울게 되면 다들 걱정할 테니까, 그게 뻔해서 버스, 음식점, 카페, 공원, 골목길 등등에서 숱하게 눈물을 닦았다.


엥 지금도 갑자기 눈물이 나네.

바로 위에 우는 횟수가 줄었다고 적었는데.


씩씩하게 손등으로 닦아내고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

좋아하는 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얼버무린다. 고로 당신은 내가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중에 당신을 사랑한 이 이야기들을 엮어 책을 내는 날이 온다 하면은, 당신이 구매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온통 당신인 활자들을 보고서 당신이 눈치를 챌듯하여서 말이다. 그러니 만일 그럴 경우에 나는.


뻔뻔하게 잘 읽었냐는 물음표를 던져야 할까, 아님 그저 그게 다였다는 둥 한때였다는 둥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일본 드라마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婚姻届に判を捺しただけですが)>를 인제 막 보기 시작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들키지 않고, 간섭받지 않으며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기혼자란 타이틀을 얻으려 한다. 그리하여 아무에게나 위장 결혼을 하자며 거래를 시도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방패막으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괜히 그를 잊어보겠다며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랑을 흉내 내고 결국엔 실패하고, 무한 굴레였다.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는 이유도 비슷했다. 얼렁뚱땅 빨리 결혼하여 이제 그만 흔들리기 위해, 즉 방황을 끝내고 정착하고프단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다.


옳지 못하단 것을 안다.


내 결혼식엔 오지 않을 거란 그의 말이 섭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플러스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