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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l 07. 2023

매미 우는 소리

수진의 마지막 날 올여름 처음으로 매미가 우는소리를 들었고 이후로는 듣게 된 적이 없었다. 바로 옆자리 수진의 자리를 보지 않으려 애써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 자리에 다른 팀 친한 사람들이 종종 놀러와 빈틈을 채울 시에만 마주했다. 출근을 하며 지나칠 때에도 일부러 마주하지 않았고 가방을 내려놓고서 물을 뜨러 가는 시점에도 힐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이상한 끌림에 출근을 하자마자 자리에 앉아서는 대놓고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애당초 주인이라고는 없었던 듯이 말끔히 잘 정리되어 있는 책상 위. 와중에 무슨 심보였는지 제 폴라로이드 사진을 놓고 갔더라. 예쁘장한 녀석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습관처럼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황급히 천장을 응시해 눈가를 진정시켰다.


이번에 소속이 바뀌면서 나의 부서장이 되신 부장님은 틈날 때마다 날 신경 써주신다.


[주영아 멘탈 안 좋으면 꼭 얘기해야 한다..]

메신저에 도착한 문장을 곱씹으며 답장을 잠시 미뤘다. 이야기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항상 이러한 상황에선 개선되어야 하는 건 본인 스스로란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벌어진 사태나 형편 따위는 해결되지를 않았다.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인해 매일이 곤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꾹 다물고서 참다가 겨우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열었을 적엔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날 위해 그랬단 말은 따질 기력도 없게 만들었다.


이런데 또 누군가에게 힘듦을 털어놓아도 안전하나. 걱정을 말하고 나면 해결책을 얻게 되거나 해소되거나 둘 중 하나는 했었어야 했던 거 같은데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경험담이기에 모두가 미심쩍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부장님께 불신을 품었단 의미는 아니다. 너무너무 잘 챙겨주신다. 이곳을 떠나게 될 경우 말씀드리기 죄송할 정도로 감사할 따름이다. 비록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이긴 하나 난 아직 그럴 이유를 못 찾았다.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되도록 노력해 보겠단 내용이었다. 스스로가 읽어도 애매-했다.


*

때마침 민경의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언니 표정 누가 봐도 우울해.]

[헐랭, 아니야 나 밝아. 해피 주영이야^_^!]

어설픈 숨김이었다. 민경 외 다른 이가 읽어도 눈치챌 법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민경에게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 날아왔다.

[언해피 주영이야.]

솔직히 회사에서 친한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다만 홀로 이방인 같은 기분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전부 다 통틀어 불편해졌다. 그나마 제일 편한 건 민경과 지훈 과장님, 아라 씨. 셋뿐이었다. 셋과 대화를 할 시엔 한시름 놓았다가 또다시 경계 태세와 바짝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화장실을 가는 일도 어색해졌고 물을 마시러 가는 짓도 낯설어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였더라면 나았을 터였다. 이게 애초에 혼자인 것과 여럿이다 혼자가 된 건 사뭇 달랐다. 홀로 감당해야 할 업무도 시시해졌다. 부담보다는 지겨워졌다.


수진의 퇴사 직전까지 고민했던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었다. 일이야 어떻게든 해낼 테지만 너 없는 쓸쓸함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줄줄이 나간 사람들 덕에 심적으로 많이 힘겨웠다. 이 시기를 버텨 적응을 해낸다 하면은 그건 내가 성장한 게 아닌 무감해지려 애써 무뎌진 것일 테다. 아니다, 이 역시 성장이라 할 수 있으려나. 어른이 되는 과정 안에 무뎌짐도 속해있는가. 회사는 인원 충원은커녕 인건비가 줄어 만족하더라.


상아는 하루빨리 퇴사를 하라고 설득했다. 휴식이 필요하다 했다. 누구보다 내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녀석이기에 하는 말이었다. 다만 고집불통인 나는 내내 이직처를 찾아두고 그러겠다며 손을 저었다. 만일 이직할 곳을 구하지 않고 행동해버린다면, 것도 그것 나름대로 불안할듯했으니 말이다. 난 늘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인간들보다 널널하고 헐렁하며 걱정은 금방 잊고서 본인 행복이 우선인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간들과의 정에 끌려 이별이 어려웠는데 오늘은 희한하다. 얼른 내가 벌려놓은 이 관계들을 눈치 봄 없이 거리 두고 싶다. 그간 사람과 친해지는 일이 좋아 여기저기 친분을 쌓고서 사적인 영역까지 공유하고자 하였으나 이젠 그게 후회가 된다. 적당한 선을 그어놓고 볼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저것 많이 사줬다. 뭔갈 해주려 했다. 근데 가끔은 그것이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단 걸 알아챘다. 적당히 마음 주는 법을 몰라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단 걸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켜졌을 때 최고로 안정감이 든다. 허물을 들킬 수 있는 친구는 단 1,2명만으로도 족하다. 충분하다. 그 외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날 아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그들의 시선 따라 해석되는 내가,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과해질 경우 곧장 몸으로 반응이 왔다. 몸살 기운이 몰려왔다. 어지러웠다. 메니에르 약을 먹고서 몸살 약 두 알을 더 먹었다. 효과가 없었다. 무거운 눈꺼풀만 반쯤 더 감겼다. 내일 상아와 단둘이 경주 여행을 떠나기로 했는데 큰일이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지.


“경주 가서는 행복한 얘기만 하는 거야. 경주 가서도 회사 좆같은 거 끌고 올 순 없어. 힐링하러 경주 가는데 좆같은 얘기하면 여기 인천이랑 다를 게 없다고! 알아들어?”

웅. 알아들어. 다 조까탱. 이러고서 일 년 뒤에도 이 회사에 있으면 어쩌지. 웃기겠다. 아니네. 웃을 일이 아니겠구나?


*

몰아치는 업무를 하나둘씩 정리해가던 참이었다. 불쑥 옆자리 지훈 과장님이 책상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엥? 의아해하며 시선을 옮겼다. 지훈 과장님의 손이 왔다간 자리에는 엽서가 놓여있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주시했다. 가만 보니 글씨가 적혀있었다. 주영이의 생일,이라는 아주아주 귀여운 글씨체와 문장이었다. 하지만 느닷없었다. 생일은 아직 한 달이나 더 남아있는 상태였다. 한데 왜 이거를 지금? 순간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짓궂은 웃음을 흘리며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 과장님 생일 당일에 줘요. 너무 이르잖아요.”

과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유의 은은한 미소를 걸친 표정과 잔잔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7월 7일. 주영이 음력 생일.”

헐랭.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머리가 띵했다. 달력을 보았다. 진짜 7월 7일이었다. 음력 생일을 챙김 받는 건 난생처음이었기에 얼떨떨했다. 다시 보니 엽서도 과장님이 찍은 사진이라던 것으로 만든 엽서였다. 직접 디자인 문구로 새겼던 happy birthday 문장까지. 괴거에 어떤 친구가 맘에 들어 하여 선물로 주었단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듯했다. 맞나? 코끝이 찡했다. 에어컨 바람이 몹시 차가웠단 핑계를 대려 했다.


세상에 과장님처럼 따뜻한 사람들만 넘쳐났으면 좋으련만.

이런 류의 다정은 생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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