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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27. 2023

우린 거창하고 흔한 거 하자

넌 가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 내가 한 번도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너를 보며 우린 이렇게나 다른 세상을 사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나 의문이 든다. 너에게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장 중요하단 너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으면서도 청개구리인 양 반대로 굴었다.


사랑을 말하면. 덜컥 사랑을 말해버릴 시엔 우리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듯했다. 사랑은 언제나 나한테 무거워서. 길고 무거웠던 날들을 청산한 뒤로는 줄곧 가볍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마음에 안착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 나의 마음에 발을 들이도록 호락호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감정에 관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한 너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부단히 골몰한다. 운명은 너무 거창하고 인연은 몹시 흔한듯한데. 우리는 우리로 정의 내려야 할까. 사랑한다는 고백마다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는 내게, 이 역시 대답이란 걸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도 있다.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할 때 대꾸하겠단 태도는 어쩌면 핑계일 테다. 이미 시작한 감정을 입 밖으로 발설할 경우 그게 정말로 커져버릴까 봐 망설여지는 면도 있다는 거다.


요새는 너와 같이 있는 게 나의 유일한 평안이다. 그리하여 혼자 있을 적에도 시도 때도 없이 너를 그려놓는다. 너랑 만난다. 내 옆에 나란히 앉은 너의 허상은 날 지긋이 바라보며 애정 어린 손짓으로 흘러내린 앞 머리칼을 쓸어올려준다.


이토록 네가 나한테서 서서히 영역을 넓힌다.

서툰 포옹도 아프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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