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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Oct 01. 2023

나는 네가 좋고 밉다

네가 빌려준 책에 그어진 밑줄이 좋아 한 아름 생글생글한 미소를 띠고 있다가도 별안간 네가 미워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남이 될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머잖아 찾아올 것 같단 불안감에 휩싸였다. 난 생각보다 너를 오래오래 좋아할듯하다. 내가 너를 떠나거나 혹은 네가 나를 떠나고 난 후에도 내가 남아 널 간직할 심정이다.


너는 빛바랜 것들을 사랑했을까. 한때 선명하고 반듯했으나 이내 구겨지고 흐려진 것들.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을까. 네가 포옹할 때마다 왜 이리 슬퍼지는지 모르겠어. 줄 달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한참을 제 글 적기 위해 몰두하는 너를 힐끔 바라보다가 그리워졌다. 하얀 피부. 짙은 눈썹. 똘망똘망한 눈빛. 동그란 콧방울. 고집스레 앙 다문 입술. 난 기억력이 좋지 못하니까 길게 봐 둬야 했다.


우리는 무진장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우 사랑할 시 잇따라오는 아픔도 딱 그만큼은 될 터이니 말이다. 나는 네가 좋고 밉다. 미움도 좋아하는 감정에서 비롯되는 거라 하더라. 좋아하지 않으면 미워할 수도 없는 거라고. 뭐든 적당히 하고 싶다. 깊어지지 않는 선에서 본인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싶다. 나를 잃어가며 열렬히 사랑하잔 말은 사양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영원을 꿈꾸게 되면 어쩌나.

그게 두렵다.

네 마음은 가끔  반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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