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여름이 지나면 정말이지 일 년이 훌쩍 아닌가.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처서가 지났다고 하네. 잘 지내지? 아픈 곳 없고. 인스타그램으로 보니까 살 많이 빠진 것 같더라. 밥 잘 챙겨 먹어.]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서 모로 누웠다.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이 배가 되었다. 쓸데없는 망상은 기본이었고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내용이었다. 이렇다 보니 채원은 “내가 생각해 봤는데.”라고 운만 띄워도 딱 잘라 “넌 생각 좀 그만해야 돼.” 꾸짖었다.
진짜 그래야 하긴 했다. 맨날 최악만을 떠올리고서 미리 불행해 하는 탓에 매일을 온전히 행복한 적 없었다. 상상 속 미래를 앞선 나와, 현실 속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내가 잘 분리되지 않았다. 몹쓸 경험이 바탕이 되기도 했다. 행복은 곧 불행이 몰려올 거란 징조와도 비슷했다. 발가락과 손끝도 둥그런 나는 왜, 삶마저 둥그렇지는 못한 것일까. 심지어는 콧방울 역시 동그란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말이야. 수시로 잠이 몰려왔다. 걸어 다니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최근에 편지를 받았다. 마지막 문장이 꽤나 잔상이 남는데, 우울한 글도 잘 쓰지만 행복한 글도 쓰는 나를 보고 싶다는 식이었다. 종종 들어본 말이었다. “너는 왜 행복한 글은 안 써?” 가장 친한 소연 언니 또한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나는 글쎄,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행복할 때는 글이 잘 써지지 않을뿐더러 행복한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행복은 금방 휘발되고 불행이 오래 남는듯해요.”라고 했던 것 같다. 굉장히 분위기가 싸해지기 좋은 답변이었다고 여태 생각한다. 언니가 성격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아녔더라면 한 뼘 이상 멀어졌을 법한 대답이 되었을 거다.
가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이 글을 적은 다음날 회사에 연차를 내고서 쉬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밀려들어오는 가을 냄새를 맡았다. 용케 알고서 타이밍 맞춰 동생이 방문 앞에 등장했다. 동생은 부스스한 까치집 머리를 한 채로 중얼거렸다. “가을바람이 부는 것 같네.” 도로 시선을 창 너머로 던져두었다.
좋은 제안을 받았으나 머리가 복잡해지는 하루였다.
진짜 여름이 가버리면 어쩌지.
난 가을 엄청 타는데.
게다가 여름이 지나면 정말이지 일 년이 훌쩍 아닌가.
원치 않는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