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을 뒤로한 채 부지런히 산을 내려오니 어느덧 3시가 훌쩍 넘었다. 아침에 등산을 시작했을 때는 해도 없이 깜깜한 새벽이었는데, 등산을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라산에서 머문 지 벌써 9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 성판악 입구로 돌아와서 정상에서 미리 신청해 놓았던 한라산 등정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한라산 등정 인증서까지 발급받고 나니 내가 정말 한라산 정상까지 다녀왔다는 기쁨과 함께 오늘 등산을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오늘 등산은 어땠나, 내일은 무엇을 할까, 아빠와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며 갑자기 번뜩 떠오른 생각. 버스 탈 때 교통카드는 어떤 거 써야 하지? 제주도에서 버스를 탈 거라고 생각을 안 했어서 어떤 교통카드가 사용이 가능한지 미리 알아보고 오지 않았다. 음, 후불 교통카드는 가능하지 않을까? 전국에서 사용 가능하잖아. 다행히 나도 아빠도 후불 교통카드가 지원되는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이걸로 사용하면 되겠네, 얘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아빠가 먼저 승차를 하고, 뒤이어 내가 승차를 했다. 한 명이요, 하고 카드를 찍고 아빠 옆 좌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카드를 들고 있는 걸 보고 말하는 아빠.
너 카드 찍었어? 내가 다인승 승차로 2명 찍었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보통 서울에서는 티머니 선불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아빠는 후불 교통카드 사용을 하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카드에서 후불 교통카드 지원이 되는 카드를 찾으셨고, 이걸로 (너랑 나랑 둘이) 사용하면 되겠네, 라고 말씀을 하시고 바로 도착한 버스를 탑승하면서 2인으로 다인승 승차를 요청하신 거였다..!
아니 아빠 나도 후불 교통카드 있었다고, 나는 내 거 있으니까 내 걸로 찍었지~
아 나는 후불 교통카드 있냐고 물어보길래 너는 카드가 없는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찍어줬지.
아빠의 예상치 못한 배려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 화를 낼 수도 없고.
뭐야 나 두 명 되었잖아, 분신술 썼나 봐~ 실없는 농담을 하며 하나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