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조절을 위해 전날 일찍 잠들었지만 긴장되는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새벽 4시부터 눈이 떠졌다.
내가 오늘 정상까지 잘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한 등반 코스는 성판악 코스.
동생의 도움으로 숙소에서 약 한 시간 거리인 성판악 코스 입구까지 편안히 이동을 했다.
성판악 코스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30분. 예약해 놓은 시간이 오전 5:00~8:00 시간대여서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준비를 마치고 등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와 아빠도 부지런히 등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오늘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동생과 인사를 나누며 한라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1월의 새벽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이었다.
깜깜한 등산로를 가느다란 플래시 빛에 의지하며 걷다 보니 금세 해가 떠올랐다.
성판악 입구부터 정상까지는 약 4시간 30분의 코스. 왕복 9시간의 등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코스 초반은 어려운 길이 아니어서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올라갔다.
첫 번째 휴게소인 속밭대피소에 도착해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빗방울이 조금씩 비로 변하기 시작했다. 얼른 비를 벗어나자.
두 번째이자 마지막 휴게소인 진달래밭 대피소를 향해 다시 열심히 등반을 시작했다.
초반보다 조금 난코스였던 속밭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 코스. 이게 뭐라고 해야 되나.. 생각보다 엄청 힘들지는 않지만 힘들다(?) 등산로가 돌로 되어있어서 등산화를 신었지만 신발 밑창을 뚫고 올라오는 뾰족뾰족한 돌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등반 코스라고 해야 하나. 오르막길도 있었지만 돌로 된 등산로 때문에 힘들게 올라갔던 것 같다.
진달래밭 대피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전 9시. 벌써 2시간 반이나 내가 등산을 했다니?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진달래밭 대피소에는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휴식과 체력 보충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아빠도 구석에 자리를 잡고 미리 서울에서부터 준비해 왔던 컵라면을 먹으며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대피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구는 물 반, 스프 반! 아무래도 "산"이라는 특성상 쓰레기 처리가 어려운 만큼, 물과 스프를 반씩만 넣어서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는 의미가 느껴지는 재미있는 문구였다. 우리도 "물 반, 스프 반"으로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정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11월의 제주도는 서울보다 따뜻했지만, 11월의 한라산은 서울보다 추웠다.
볼을 스치는 바람도 차가워지고, 등산로 옆의 나무에 붙은 상고대도 보이고, 점차 정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실감이 났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고, 다시 돌로 된 등산로를 헤쳐 지나가고, 또다시 계단, 돌, 계단, 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구름이 걷히고 탁 트인 시야가 보였다. 아, 내가 지금 구름 위에 있구나. 묘한 기분이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저 위로 우리의 목적인 정상, 백록담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다시 시야를 가려버렸지만 구름을 뚫고 지나가며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이제 곧 정상이라니! 내가 정말 한라산의 꼭대기, 정상, 백록담에 오다니! 백록담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의 양옆으로 펼쳐진 상고대가 마치 나와 아빠의 정상 도착을 환영하는 듯했다.
계단 옆 상고대와 구름 위에서 바라본 제주도
정상 도착, 백록담이다! 한라산 정복!
등반 내내 구름이 많았던 만큼 백록담은 구름 사이에 숨어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게 백록담이 맞나?
하지만 갑자기 또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백록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백록담에 물이 꽉 차있지는 않았지만 백록담을 실제로 보았다는 것에 깊은 감동이 올라왔다. 내가 한라산 정상을 올라와서 물이 (약간 고여) 있는 백록담을 보다니!
언제 다시 올라올지 모르는 한라산 정상이었기에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백록담 기념비와도 함께 사진을 찍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한라산 등반 인증서 신청! 이런 건 또 놓칠 수 없지. 하산을 하기 전에 다시 배를 채우기 위해 잠시 앉아서 간식과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확실히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칼바람에 양 볼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로 손과 볼을 녹이고 약간의 휴식을 가지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백록담을 등지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