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은 핑계고

어쩌다 보니 김씨단합회

by 주디터

MBTI가 유행을 하던 몇 년 전 온 가족 모두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나의 MBTI는 I**J (중간이 **인 이유는 할 때마다 바뀌어서...)

평소에 일을 할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매번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움직였던 나의 성향을 파악했을 때 내가 J가 나온 건 당연지사였다.

자, 그러면 나와 아빠의 MBTI 끝자리를 공개하자면? 아빠도 J, 나도 J.


어릴 때부터 가족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아빠의 시간 단위로 짜인 계획표로 여행을 하곤 했었다.

J 아빠 밑에서 자란 J 딸에게 여행=계획표는 당연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고, 계획표에 맞춰 함께 여행을 했고. 어느샌가 나 홀로 여행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도 자연스럽게 여행을 갈 때면 가장 먼저 여행 계획표를 짰고, 계획표에 짜인 시간대로 움직이며 여행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도 3n살... 다년간의 여행으로 여행의 고수가 되어버린 나에게 시간 단위로 쪼개어진 계획표는 계획이 틀어졌을 때 나에게 스트레스만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고, 여행에 한해서는 최소한의 계획만 짜는 "여행에서만 P이고자 하는 J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여행(a.k.a 김씨 단합회)은 11월 셋째 주.

11월 첫째 주까지 내가 예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제주도니까 비행기 표도 시간대별로 많이 있을 테고, 숙소 역시 우리 가족 쉴 곳 한 군데 없을까. 그리고 해외도 아니고 국내잖아? 말도 통하겠다, 로밍도 필요 없겠다, 그냥 신분증이랑 카드만 있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거 아니야?

여행 얘기가 나왔던 10월부터 약 한 달 동안 여행 장소 외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그렇게 11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소환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딸, 비행기 표 예약 했어? 숙소는? 한라산 정상까지 가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더라. 차 렌트도 해야지, 운전은 네가 할 거지?

여행이 2주나 남았지만 (아빠에게는 2주"밖에" 였겠지만) 정말 단 하나도 예약된 것이 없어 걱정하던 아빠에게 소환당한 그날, 한 시간 안에 모든 예약이 완료되었다.


이미 출발과 도착 시간을 정해놓으셨던 아빠의 계획 하에 비행기 표는 10분 만에 결제까지 완료.

숙소는 저번에 부모님 두 분이서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묵으셨던 숙소로 예약 완료.

한라산 탐방예약은 검색 후 예약까지 5분 만에 완료.

렌터카 역시 이미 생각해 놓으신 차종이 있으셨던 아빠의 의견에 따라 가격 비교 후 20분 만에 예약 완료.


모든 예약이 완료되고 나서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예약하느라 고생했다."라고 말씀하셨던 아빠는, 역시 J가 맞다.






여행에 필요한 필수 예약은 완료되었지만 아직 여행 계획이라고는 둘째 날 한라산 등반 외 정해진 게 없는 우리의 제주도 여행. 첫째 날이랑 마지막날은 뭐 하지? 식당은 어디를 가야 할까. 음.. 제주도면 말도 통하겠다 한국이겠다, 그냥 가서 고민하는 걸로.


그나저나 우리 여행, 이대로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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