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싼타페 Jun 04. 2020

나는 아빠다 No 4

아빠? 엄마?

    오늘은 오랜만의 휴일이다.  느즈막하게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랑말랑한 거리를 두고 자고 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는 게 일상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간 이루어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는 줄 알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함께 자고 있던 내가 신기했나보다.  두 녀석과 본의 아니게 눈싸움을 하게 되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돌기에 어떻게 장난을 쳐줄까 고민하려는데 두 녀석이 동시에 일어나 ‘엄마’하며 밖으로 나간다.  어라?  이건 뭐지?

- 오, 우리 강아지들 일어났쪄?  언능 세수하고 와.  밥 먹자.

    벌써 아침을 차렸나보다하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두 녀석이 앙증맞은 손으로 세수를 하는데 눈, 코, 입만 손이 왔다 갔다 한다.  아니 손이 움직인다기 보다는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여 손을 닦는 듯하다.  두어 번 그러더니 이번엔 손과 얼굴을 동시에 움직여 작은 원을 그린다.  나름 얼굴 옆까지 닦는 스킬을 터득했나보다.  하, 언제 이렇게 컷다냐.

    나도 대충 씻고는 식탁에 앉았다.  오늘 아침 메뉴는 계란밥이다.  갓 지어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쌀밥에 노른자는 익히지 않은 계란 프라이를 얹어 고소한 마가린과 참기름을 듬뿍 넣고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 후 깨소금으로 마무리하면 완벽한 계란밥이 된다.  무척이나 간단한 요리지만 요게 만만치가 않다.  배합이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맛이 영 안 살아나는데 내가 그런다.  그래도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내가 차려먹는 게 아니니 맛있게 먹었다.  요리는 나보다 잘하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데 보자하니 이것들이 입만 벌리고 앉아서 떠먹여주는 밥을 낼름낼름 받아먹고 있질 않은가?

- 애들 알아서 먹으라 하지 당신은 왜 떠먹여 주는데?

- 그냥.

    헐...

- 당신도 해봐.  받아먹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 줄 알아?

    또, 헐...

    다 먹고 나니 휴지로 아이들 입을 닦아준다.  또 다시 헐이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겠다싶어 밥상을 정리하고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오늘은 절대 깨뜨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이상하게 설거지만 하면 서너 번에 한 번은 꼭 그릇을 깬다.  미칠 노릇이지만 한 번 ‘헤~’하고 웃어주면 그냥 넘어가주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설거지하는 동안 아이들이 옷을 다입고 어린이 집에 갈 준비를 마쳤다.  신발까지 신고는 문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외친다.

- 엄마, 안아주고 뽀뽀!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모습을 보니 샘이 난다.

- 잠깐만, 나도 해줘야지.

    녀석들이 서로 마주 보고 씨익 웃더니 내 말을 가볍게 씹어버린다.  아오, 저것들을...

    옆에서 킥킥대는 저 인간이 더 얄밉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 한숨 더 자고, 며칠 미루었던 집안일을 해봤다.  어지간히 해서는 안될 만큼 많아진 일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다 할 수 있을까싶었지만 욕심내지 말고 하는 만큼만 해야겠다.  이 인간은 나 좀 도와주지 자는 사이에 쏙 빠져 나갔단 말이지.  들어오기만 해봐라.  


    어느새 시간은 흘러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인가보다.  밖에서 어린이 집 차량이 빵빵 크락션을 울리며 나를 부른다.  얼른 나가보니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 선생님 손을 꼭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꼭 잡고 있던 선생님의 손을 놓고는 어마어마하게 맑고 밝은 소리로 외친다.

- 엄마!

    그리고는 달려가 안기는 것이 아닌가.  아침부터 시작된 열기가 극에 달한 나는 뚜껑이 열려 냅다 소리를 질러 버렸다.

- 야, 이것들아. 내가 엄마거든!


하아, 이런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아빠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