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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17. 2020

너무도 아름다운 평범한 일상

    매일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다 보니 늦잠을 자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열 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내 배위로 올라와 장난을 친다.  두 녀석이 심심하다며 일어나라고 배 위로 올라오면 안 일어날 도리가 없다.  둘이 합쳐 50㎏의 무게가 배 위에 올라 무슨 방방인양 뛰어놀면 이제는 재미있기보다 화가 날 지경이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밟히는 나는 무지 아프다.  아이들에게 인상을 쓰면서 화장실로 피해버린다.  변기에 홀로 앉아 아침마다 겪어야하는 이런 고통을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주신다.  일찍 인나라고...

    샤워하고 밖으로 나오면 밥이 떠억하니 차려져있으면 좋겠지만 아내의 손목이 두 달째 좋지 않아 주방에서 하는 모든 일은 내 차지다.  하아, 뭐 먹냐.  애들에게 물어보니 계란밥을 주문한다.  그 정도야 뭐 껌이지만 오늘은 그것도 귀찮다.  그냥 찬밥에 김치나 줬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다 콘프레이크로 때워주면 땡큔데.  나도 먹어야하니 그냥 계란밥을 해주었다.  잘 먹는다.  대충 만들었는데 맛있다며 내 몫까지 빼앗아 먹는다.  그래 많이 먹어라.  난 다이어트나 하지 모.

    커피 머신을 작동시켜 새 커피를 내리는 동안 설거지를 한다.  계란밥처럼 기름기가 많으며 꼭 뜨거운 물을 사용해야 깨끗해지니 이것도 귀찮다.  뜨거운 물 대신 휴지로 기름기를 일차 제거하고 설거지를 해버린다.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밖에서 놀지 못해 몸살 난 아이들이 아파트가 정글인양 소파 위를 뛰어다니고 좁은 복도의 양 벽면에 한 발씩 대고 천장까지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 보자며 스파이더맨 놀이를 하고 있다.  그래 나는 설거지를 할 테니 너희들은 날뛰어라.  그런 아이들을 보며 점심은 뭐 먹어야하나 고민이 된다.

    설거지를 마치고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시려는데 좁은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쉽지가 않다.  소리 한 번 빽 지르고는 다시 커피 향을 맡아보려는데 아내의 콧소리 가득한 호출이 들린다.  김치 담가야하니 장 봐오라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단골 한인마트로 간다.  배추 네 포기, 대파 한 단, 무 큰거 하나, 다진 마늘 그리고 빠진 것 없나 살펴보고 아이들 간식거리까지 챙겨 값을 지불하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커피가 다 식었다.  내 팔자에 우아한 커피 타임은 무슨...  아내의 연약한 손목으로 인해 김치를 담구는 일도 내 차지다.  옆에서 입만 가지고 열심히 도와주는 아내와 먼지 풀풀 날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방해를 사이에 두고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절이는 동안 대파 다듬고 풀 쑤고 찬장에서 갖은 양념 꺼내 놓는다.  뜯어 놓은 배추 잎들을 잘 삶아 시레기를 만드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여기까지 하면 벌써 점심시간이다.  냉동실에 조금 남은 삼겹살을 꺼내어 잘게 썰어 오무라이스를 해줘야겠다.  아까 다듬어서 잘라 놓은 대파 한 줌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부어 파 기름을 만들면 냄새부터 위장을 자극해준다.  여기에 잘게 썰어 놓은 삼겹살을 패대기치면 치이이이익하며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익어간다.  이때 간장이나 굴소스를 두어 숟갈 부어주면 비명은 사그라든다.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주다 얼추 익으면 찬밥을 적당히 넣으면 내가 먹을 게 없으니 남길 각오를 하고 많이 넣어 열심히 뒤집어가며 섞어준다.  중간 중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면서 볶다가 계란을 세 개쯤 반으로 갈라 껍질만 빼고 몽땅 넣어서 또 열심히 뒤집어주기도 하고 헤집어주기도 한다.  계란의 노른자가 밥알을 잘 감싸주면 황금색 밥알로 재탄생하게 된다.  다됐으면 프라이팬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 넓은 지단을 만든다.  그 위에 볶음밥을 적당하게 올리고 프라이팬을 들어 접시 위로 살살 흔들며 옮기면 예쁜 모양의 오므라이스가 완성된다.  케챱으로 하트나 스마일 등의 모양을 만들어주는 센스도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개뿔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니들이 알아서 케챱 처 먹어.

    다 먹고 서둘러 설거지까지 하고는 다시 김치 담그기.  절여진 배추를 물에 한 번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대야에 담아놓고 준비해놓은 양념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풀과 함께 버무린다.  자그마한 입으로 열심히 도와주던 아내는 힘이 좋으니 버무리는 것도 쉽게 한다며 도무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칭찬을 해준다.  그렇게 한참 버무리다 마지막으로 간으로 보고 괜찮으면 잘라놓은 대파를 넣어 한 번 더 뒤집어주고 김치 통에 옮기면 끝...이 아니고 저녁 준비해야 한다.  오늘도 주부는 힘들다.  근데 도대체 이 푸념을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내가 바라는 일상은 이른 아침 창문을 통해 비춰드는 햇빛에 눈을 뜨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정성스레 준비한 아침을 먹고, 커피와 함께 밤새 확인하지 못한 브런치 알림과 새 글을 읽고, 아이들은 공부하고, 잠시 후 설거지를 끝낸 아내가 예쁘게 깎은 과일을 들고 오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잡담하며 과일을 먹기도 하고 먹여주기도 하는 아름다운 모습이건만, 나의 이런 소박한 바람은 아내가 대신하여 누리고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했으니 아내의 누림이 곧 나의 누림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때려줄란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하루해가 넘어가고 가로등이 켜졌다.  벌써 저녁인가보다.  밥해야지.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펴보니 마땅한 게 없다.  그래 오늘은 특식이다.  애들아 삼계탕이다.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가격 때문에 쉽게 먹지 못하는 한국산 라면 세 개에 계란 세 개.  브라질에서 먹을 수 있는 특식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아주 특별한 메뉴다.

    큰 냄비에 물을 담고 있는데 아이들은 벌써부터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침을 흘리며 헥헥 거린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긴 한데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리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을 켠 후 아이들에게 가 양 손으로 한 놈씩 턱을 만져주며 우쭈쭈해준다.  아, 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일상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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