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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09. 2020

#6  느금마

#6  느금마

    아이는 그렇게 법적으로 가족의 일원이 되었지만 순자 외에는 누구에게인정받못했고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갔다.   설상가상으로 영숙이 돈을 벌겠다며 서울로 가버리자 남은 아이들은 이 모든게 막내 민준의 탓인양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는 순자는 가슴이 메였다.   아무리 타일러도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자신들이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하는 탓을 민준에게 돌렸다.   아이들도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은 엄마가 필요하였고, 그런 자신들의 눈에 민준의 존재는 하등의 존재 이유가 없는 그런 아이일 뿐이었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제법 귀티가 나고, 인물이 살아났다.   아이를 보는 사람마다 서로 안아보려 다툴 정도로 아이는 잘 생겼다.   동네 사람들은 민준의 부모가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멀리 일하러 갔다고만 알고 있어 쓸데없는 입방정은 떨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아이가 워낙에 잘 생긴 통에 하루에도 댓 명씩 와서 한참을 아이와 놀아주다 가곤 했다.   집에 찾아오는 이들은 죄다 아줌마들 뿐이었기에 아이는 친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동네 아줌마들에게서 대신 받았다.   그렇게 아이는 하루 하루 커갔다.
    동네 아줌마들은 민준을 안고 방 여기저기 다니며 놀다가 영숙의 사진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한 마디씩 꼭 해댔다.
- 느그 엄마다.  느그 엄마.
    그녀들이야 엄마 젖을 제대로 못먹는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엄마가 누구인지 갈쳐주고 싶은 마음에 그리 말한 것이었지만 아이는 그렇게 받아들이질 못했다.   오랫동안 엄마의 사진 앞에서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들은 아이는 옹알이를 하다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간혹 ‘느금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쩌다 아줌마들이 아이를 안고있다가 그 소리를 들으면 언능 사진 앞으로 데리고 가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 엄마, 해봐, 엄마.
    하지만 아이는 엄마라는 말대신 느금마라고 하며 좋아 손발을 힘껏 흔들어 댔다.   그런 아이가 또 이뻐서 아줌마들은 좋아라 했다.

    친척의 소개로 무역회사에 취직한 영숙은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공부했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사무적인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통역도 척척 해내니 회사에서는 무척이나 소문난 일꾼이 되어있었다.   그런 덕분에 입사 넉 달만에 이틀의 휴가를 받아 집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휴일을 하루 더하면 삼 일이니 아이들에게 맛난 것도 해주고 함께 마실도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돌아오자 집안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서울서 마련해온 생전 처음보는 쏘시지랑 어지간해서는 구경도 못할 쇠고기 굽는 냄새가 더불어 온 집안에 가득 찼다.   아이들은 그리운 엄마가 집에 온 것이 기뻐 어쩔 줄 모르기도 했지만, 부엌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온몸을 자극해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아이도 엄마가 온 걸 아는지 방긋방긋 웃어댄다.
- 느금마, 느금마.
    아이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단어를 연신 외치며 안아달라고 두 팔을 휘저으며 버둥거렸다.   영숙은 오랜만에 보는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말을 할 줄 아는게 이쁘기도 해서 안아 주며 어미에게 물었다.
- 야가 지금 뭐라는 거요?
- 동네 아줌씨들이 와서는 니 사진을 갈키며 ‘느그 엄마’라고 하니께 따라서 허네.


    ‘엄마’라는 말 대신 ‘느그 엄마’라는 말을 배워버린 아이를 보며 영숙은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애처로움이 목까지 치밀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좋다고 팔다리를 흔들어 댔다.




    2019년 10월 21일
- 아가야, 아빠야 아빠.   이제 우리 아가 얼굴 볼 날이 며칠 안 남았네.   엄마 힘들게 않게 쏙 나와야한다.   알았지?   아고, 우리 이쁜 아가.
    민준은 산달이 가까워 빵빵해진 영주의 배를 마치 금은 보석에게 하듯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뱃속 아이이에게 말을 건냈다.
- 당신 그렇게 좋아?
    영주는 자기 얼굴을 쳐다도 안보고 배만 만지며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민준이 오히려 더 든든했다.   분명 좋은 아빠가 되어줄 거라 영주는 믿었다.  민준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한 탓에 훗날 아이를 낳으면 누구보다 좋은 아빠가 되리라 다짐하곤 했다.
- 그럼, 좋지.   태어나기만 해봐라.   내 맨날 업구 댕기지.
- 그럼 나는?
- 내가 애 볼테니 당신은 쉬어.
- 에이, 그게 뭐야.
    영주는 괜시리 좋으면서도 삐친 척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본다.
- 당신은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우고 싶어?
- 어떻게 키우긴, 잘 키워야지.
- 아니, 그런거 말고.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냐고.
- 아이가 원하는대로.
-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은 아이한테 바라는 거 없어?
    민준은 영주의 말에 오히려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 아이한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신체 이상없이 건강하게 태어나 자라는 거.   그거면 돼.   아이의 미래는 아이가 스스로 결정해야지 부모가 좌지우지하면 안되지.
-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무책임한 거 같기도하고 그러네.
- 당신이나 나나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아이보고 크게 되라고 하는게 말이 안되지 않아?   그건 욕심일 뿐이야.   아이를 망치는 가장 큰 범인이 바로 부모의 욕심이라구.
 민준은 영주를 나무라듯이 말하고는 다시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 울 이쁜 아기.   아무런 이상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나고 자라주라 .  알았지.

-------------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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