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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08. 2020

하얀 쌀 밥에 자반 고등어 한 점

    좁디좁은 마루 사이로 열 살 남짓한 사내 아이 하나가 쪼그려 앉아 있다.  아이의 다리 사이에는 제 몸통만한 양은 냄비가 끼워져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여기저기 찌그러져있는 냄비 안에는 약간의 쌀과 반쯤 채워진 물이 있었다.  아이는 밥을 지으려 쌀을 씻는 중이다.  고사리만한 손으로 한참을 씻어낸 쌀을 헹구어 내더니 이번엔 아궁이 앞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길쭉하고 볼품없는 연탄집게를 집어 들어 아궁이를 덮고 있는 뚜껑을 열고는 한쪽으로 치워 놓는다.  아궁이 안에서는 시뻘건 불꽃이 그간 답답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요동을 치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내 익숙한 솜씨로 잡아먹을 듯 화를 내는 불꽃들을 냄비로 눌러 버렸다.

    친구들은 아직 밖에서 골목을 누비며 전쟁놀이에 한창이겠지만 아이는 함께 하지 못해 속상하다.  아이는 할머니가 전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집을 순회하며 용돈을 수금하는 동안 누나와 단 둘이 생활하는 중이다.  열아홉 살의 누나 역시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그 때 그 시절엔 대부분의 여아들이 학교보다는 공장에 다녔듯이 누나 역시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는 힘든 여공의 생활을 하고 있다.  때문에 동생의 밥을 챙겨주기가 너무 버거워 아이에게 밥 짓기를 요구하였고 아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늘 친구들과 놀다가도 집에 돌아와야만 했던 아이는 그때마다 괜스레 심술이 난다.  그래도 아침은 차려주고 출근하는 누나지만 아이는 아직 누나가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만한 나이는 아니다.

    잠시 후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며 구수한 밥내가 새어나오자 아이는 얼른 냄비를 꺼내고는 연탄집게로 높이를 조절한 후 다시 냄비를 올려놓는다.  뜸을 들이려는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나자 열 살짜리 아이의 솜씨라곤 믿기 힘든 새하얀 쌀밥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밥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주걱으로 휘휘 저어 밥알을 세워 놓고는 한 주걱 듬뿍 떠내어 밥그릇에 넣어보는데 나름 이쁘게 하려고 자꾸만 주걱으로 눌러댄다.  욕심껏 그릇에 퍼서 밥상 위에 올려놓고는 냉장고를 뒤져 게 중에 가장 좋아하는 멸치 볶음을 꺼내어 밥 상 중앙에 놓는다.  그리고는 수저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맛있게 먹던 밥이 반쯤 줄었을 때 문득 혼자 밥을 해 먹는다는 게 서럽기라도 했는지 수저를 내려놓고 밥상을 한쪽으로 밀어 냈다.  방 안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얼른 티비를 다.  그맘때의 아이들이 볼만한 프로그램은 이미 끝난 터라 재미없는 뉴스 같은 것들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다.  누굴까 궁금한 아이는 방문을 살짝 열고는 확인해 본다.  할머니다.  거의 두 주 만에 돌아온 할머니의 두 손에는 바구니랑 보따리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꽁꽁 싸매져 있었다.  어이구, 우리 강아지 잘 있었는가? 하며 들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한 아이는 냉큼 뛰어가 보따리를 내려놓지도 않은 할머니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이는 외할머니의 냄새를 참 좋아한다.
    보따리를 내려놓으면서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직 먹다만 밥상을 발견한 할머니는 보따리 안을 뒤지더니 신문지로 돌돌 싸맨 길쭉한 것을 꺼냈다.  신문지를 벗기니 그 안에서 거무튀튀한 생선이 반으로 갈라진 채 비린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자반고등어다.  


냉장시설이 없던 옛날, 잡은 생선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갓 잡은 생선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굵은 소금을 집어넣는데 이를 염장을 지른다고 한다. 염장을 지른 생선은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여 꽤 먼 거리까지 운반할 수가 있다. 우리 바다에서는 고등어가 잘 잡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맛과 영양이 풍부하여 국민생선이라 불릴 만큼 인기가 좋다. 살아있는 고등어에 염장 한 것을 간고등어라고 부르고, 죽은 고등어에 염장 한 것을 자반고등어라고 하는데 자반고등어는 간고등어에 비해 훨씬 많은 소금을 넣는다.  냉장시설이 발달한 요즘은 예전처럼 소금을 많이 넣지 않기에 서로 구분없이 부르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간고등어에 비해 많은 소금을 온 몸으로 품고 있는 자반고등어는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지방까지 들어가 그들의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무척이나 짠 맛으로 인해 적은 양으로도 많은 식구들을 감당할 수 있으니 퍽퍽한 서민 살림에도 딱이었다. 간고등어만 있던 시절 깊은 산골 화전민들이 가족들에게 간고등어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자반고등어가 탄생하지 않았나싶다.


    할머니도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 어린 손주를 생각하며 멀리 여수에서부터 자반고등어를 짊어지고 서울까지 올라왔다.  어이구, 우리 강아지가 밥도 한겨? 라며  할머니는 아이의 머리와 등을 연신 쓰다듬어 준다.  할머니의 칭찬에 아이의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반고등어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의 입 꼬리가 귀에 걸려 대롱대롱 거린다.
    할머니는 밥을 먹다만 손주를 위해 서둘러 자반고등어를 석쇠에 올려 노릇노릇하게 구워내 상위에 올려놓고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이는 다시 자반고등어를 먹게 되어 좋은 건지,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좋은 건지 모르지만 그저 기분이 좋아 숟가락 가득 밥을 퍼 입에 넣는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의 입에 자반고등어를 한 점 크게 떼어내 얼른 넣어준다.  자반고등어 한 점이 그간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는 상급인양 아이는 맛나게도 오물거리며 씹었다.  구수한 막 지은 새하얀 쌀밥에 짭조름한 자반고등어의 새하얀 살점이 입에서 잘게 부서지며 무엇이 밥이고 무엇이 생선인지 모르게 섞이기 시작하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가 된다.




    오늘 아내가 시장에서 생선 한 마리를 사왔다.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가 싶더니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 소금을 친다.  아이들이 자반고등어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해준지 오래다.  모든 것이 한국과는 다른 이곳 지구 반대편에서는 자반고등어 같은 반찬은 정말 만나기 힘든 희귀 아이템이다.  아내가 궁여지책으로 한번 흉내나 내보자 시도를 해본 것이다.  나 역시 내심 어떨지 궁금했다.
저녁 시간에 압력 밥솥의 압력추가 딸랑딸랑 소리를 내더니 이내 뜨거운 수증기를 분출한다.  더불어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만드는 구수한 밥 냄새가 주방 가득 퍼져나갔다.  오븐에 넣어 둔 생선이 제 살이 익혀가며 뿜어내는 비릿한 내음과 짭조름한 바다 내음으로 우리는 이미 저녁 식사 중이다.
    잠시 후 아내가 밥을 그릇에 담는 동안 나는 오븐을 열어 생선을 접시에 옮겨 담는다.  생선요리에 어울리는 생선 모양의 접시다.  아이들이 배가 고팠는지 숟가락이 휘어져라 밥을 퍼서는 입에 우겨 넣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젓가락으로 자반고등어를 흉내 낸 생선의 하얀 살점을 크게 한 점 떼어내 입에 넣어주었다.  하얀 쌀밥과 하얀 생선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맛은 어떨까 궁금해 하는데 아이들이 숟가락을 든 손을 치켜들어 엄지를 내어민다.  그 맛이 더욱 궁금해 나도 얼른 한 점 먹어보았다.  

    순간 사십 여 년 전의 할머니가 자반고등어의 새하얀 속살을 내 입에 넣어주던 장면이 현재와 오버랩 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십여 일을 아이들만 집에 두고 자식들 집을 전전하시던 할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지, 집에 돌아와 먹다만 밥상을 한쪽에 밀어놓고 티비를 보고 있던 어리디 어린 손주의 모습이 얼마나 짠하셨을지,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제일 좋다며 품에 안기는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기분은 어떠셨을지, 그 좋아하시던 자반고등어를 당신은 드시지도 않고 아이의 입에 먼저 넣어주고는 오물거리며 맛나게 먹는 손주의 입을 보면서 느끼셨을 행복은 어떠하셨을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종종 할머니의 체취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오늘은 유독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힘없이 축 쳐진 가슴을 만지며 잠 들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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