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다약시 Feb 15. 2021

이름이 뭐였더라?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쯤은 있는거니까.

나에게 첫 사랑을 말하라면 어렸을때 그 남자애를 말할 것 같다. 그의 뒤에 빛이 났고 그의 얼굴만이 보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게 첫눈에 반했다라는 것이라고 하니까, 그러면 그는 나의 첫사랑이다.


그날이었다. 그가 내눈에 띄어버린건 그날이 분명하다.


선생님이 오늘 전학생이 온다고 했다. 전학생이라는건 정말 싫었다. 어린 나이에 오는 전학생이라는 친구는 챙겨줘야하고 알려줘야하는 친구일 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귀찮은 눈빛으로 턱을 괴며 앞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갑자기 주위에 모든 소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모든 배경이 없어졌다. 주위가 새하얗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새하얀 배경 사이로 어떤 남자애가 걸어들어왔다. 그애는 교탁 위에 서서 뭐라뭐라 말을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깐 귀가 먼 것 같았다. 어렴풋이 그의 이름만 들려왔다. '그렇구나 그게 너의 이름이구나.'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다른세계에 있는 듯 했다. 


우주에 우주복 하나 입지 못하고 고립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런 느낌인걸까? 소리는 파동을 전해져 온다는데 그 어떤 파동의 움직임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이런 상태라면 내가 미친게 아닐까?  이렇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난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을 떄 그 애가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헛것을 보는게 분명했다. 내 앞에 올리가 없었다. 귀도 멀더니 눈도 멀어버린게 분명했다. 내 눈 속에 점점 그 남자애가 커져간다. 미쳐버린것이다. 내가 드디어 눈까지 멀어버린것이다. 그 순간 주위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주디 옆에 자리가 없어. 주디 옆에 가서 앉아. 주디가 너에게 많은 걸 알려줄꺼야" 아무도 없었던 내 옆으로 그 애가 걸어들어와 앉았다. 그 남자애는 자기 소개를 했다. "안녕 나는 성현이야, 손성현이라고해."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어! 안녕! 나는 김주디야" 그렇게 그와 나는 인사를 했다.


우리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 지역 토박이인 나에게 성현이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은 문구점부터 큰 문구점까지 문제집을 살 수 있는 서점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노는 놀이터까지 나의 모든 동네에 관한 지식을 털어주었다.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 성현이는 나를 집에 초대해 주었다.


그는 어머니와 살지 않았다. 성현이는 고모와 함께 살았다. 성현이는 내가 준 모든 선물을 찬장에 고이 보관해놓곤 했다. 전학을 7번이나 다닌 성현이에게는 이렇게 다정히 대해주는 애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성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작은 선물부터 큰 선물까지 모든 선물을 챙겨주곤 했다. 그 모든 선물을 찬장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니. 이 보다 뿌듯할 수는 없었다. 성현이의 그런 행동은 어린 나에게 주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성현이는 2층 다락방에 자기 방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힘겹게 올라갔다. 항상 그런 방에서 자고 일어나 등교를 하곤 한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성현이의 방에는 내가 준 모든 쪽지들이 모여져 있었다. 성현이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언제 다시 전학을 갈 지 모르지만 고맙다고 했다. 뿌듯했다.




이듬해 말 성현이와 나는 좋은 감정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귄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 그런 개념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그냥 나는 성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게 좋았고 그건 성현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항상 같이 하교했고 같이 등교했다. 모든 기념일이란 기념일은 다 챙겨주었다. 서로 어린나이라 부모님, 고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렇게 작고 작은 마음을 나누곤 했다. 어느날 마술에 관심이 생긴 나에게 성현이는 본인의 쌈짓돈을 조금씩 모아 마술트릭을 모아놓은 책을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너무 어렸던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나에게는 항상 자격지심이 존재했다. 내가 먼저 좋아해버렸다는 패배자의 느낌. 내가 더 좋아한다는 미성숙한 마음이 나를 항상 덮치곤 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성현이에게 화를 내곤했다. "왜 넌 더 이렇게 하지 못해? 왜 넌 더 이렇게 해주지 못해?" 결국 성현이와 나의 사이에는 큰 균열이 생기고 말았고 그렇게 우리는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해버렸다.




결국 성현이와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3개월여의 시간이 흘렀고 성현이는 또 한번 전학을 갔다. 9개월여의 시간동안 우리 사이에 남은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흔한 사진 한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성현이의 존재는 마치 내 상상속의 허상으로 남은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마술트릭책을 볼때면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은 그저 그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자격지심이 없는 친구를 만나 행복한 삶을 꾸리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이영이, 내 친구였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