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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약시 May 12. 2021

업무능력의 기준은 야근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시간이지만

우리회사 적절한 보상체계가 전무하다. 인사고과는 그저 허울뿐인 장식이다. 내가 어떤일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사에서는 알리가 만무하다. 그저 오래 자리에 앉아서 타자기를 타닥타닥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으레 일을 잘 하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최고의 사원이 되는것이고 결국 일의 척도는 야근이 되는 것이다.


아,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건 아니다.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거니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적을때는 일을 더 달라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더 얹어지는 일들을 완벽하게 해내는 내모습이 멋있어보였다. 마치 TV에 나오는 완벽한 신입사원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비록 그 모습처럼 사원증을 매고 비싼 아메리카노를 들며 외국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들며 회사근처를 휘적휘적거리는 일개 사원일 뿐이어도, 그러나 적어도 지금 내가 일에 미쳐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곤 했다.


이렇게 커피를 손에쥐고 업무시간에는 열심히 일을 해왔단말이다.


그런 환상에 갇힌 나는 일을 완벽하게 하기위해 업무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했다. 화장실이나 커피를 사러가는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업무시간은 나와 회사가 계약한 시간이었고 계약에 맞는 돈을 받는 만큼 이 노동시간을 회사에 바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안에 모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신 그 업무시간 외에는 철저히 내 시간이었다. 회사와 계약했던 9-12, 1-6시 이외에는 나의 자유를 즐겼다. 12시 이후에는 바로 키보드를 놓고 점심을 먹으러 갔고, 6시 지나면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그야말로 칼퇴를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업무에서 신입이기에 하는 큰 실수들은 몇번 한 적이 있으나 그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았다고 장담한다. 그만큼 업무에서 나의 역할은 정확히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6시에 칼퇴를 할 수 있는건 내가 하는일을 정확히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런 마음으로 회사를 다닌지 1년이 지난 후 팀미팅이 열렸을때였다.


회의 중 한 프로젝트에 관한 업무가 생겼다. 팀장은 나에게 업무를 지시하고자 했고 이미 나에게는 몇개의 업무가 있었다. 3일 후에 완성해서 전달해달라고 했는데 업무시간안에는 도저히 완성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팀장에게 업무에 관련해서 혹시 기일을 늦춰줄 수는 없는건지 여쭈어 보았다. 그때 팀장은 나에게 말했다.


"00씨, 업무를 꼭 6시에 맞추지 마세요. 업무는 마감일에 맞추는거에요"


정해진 마감일에 맞출일이면 그렇게 했을것이다. 분명히. 하지만 그게 아닌 내부프로젝트에 관련한 일이었다. 충분히 업무 기간이 조정될 일이라는걸 아는데도 저렇게 말한건 결국 나의 6시 퇴근이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라는걸 알았다. 몇번 눈짓을 주곤 했을텐데 내가 애써 무시한 것이겠지. 결국 모든게 나의 탓이었다. 내가 칼퇴한 탓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인센티브가 누락되었다. 이유는 내가 칼퇴한 탓이겠지. 융통성이 없던 사회초년생 "나"의 잘못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야근은 업무능력의 척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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