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이대로의 직급이 좋은데요
사원으로 근무한 지 2년이 넘어가면서 회사에서는 대리라는 직책을 달아주었다. 근데 참 모순적이게도 대리라는 직급을 받는 그 날 나는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디에다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어려운 시국에 대리라는 직급을 달고 승진을 했다는 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었지만 정말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중간 직급들이 힘들어 보였다는 것, 둘째는 내가 그만큼 회사에서 오래되었다는 것.
사원 때 대리와 과장 직급을 보면서 가장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입사 후 3개월 이내에는 주위를 돌아볼 시간과 여유 조차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했고 얼른 회사에 적응해야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3개월이 지나고 회사에서 주변을 돌아보니 중간 직급인 대리, 과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신입인 내가 나았다. 나는 신입이니까 실수를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큰 실수, 작은 실수 모든 것들이 '신입사원'이라는 위치 속에서 무마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큰 지적을 받곤 했다. 그들이 대리, 과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수는 그들의 평가에 마이너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였다. 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랫 직급인 사원과 인턴마저 관리해야 했으니 그 고충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사원에서 만 2년이 넘어갈 무렵, 회사에서는 대리라는 직책을 달아주었다. 우리 회사는 승진 체계가 근속연수로 이루어져 있으니 대리를 달면 만 2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너무나 일을 못한다면 대리 승진에 누락되는 사람도 가끔가다가 있다. 하지만 내가 근속하는 만 3년의 기간 동안 그런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거의 100%가 승진을 한다고 보면 된다. 나도 그렇게 승진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슬픈 승진이었다. 내가 업무상으로 이루어 놓은 게 하나도 없이 연차로만 승진이 되어버리니 내가 빈 깡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중간 직급이 되어버린 이상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야 될 텐데 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2년의 세월이 있으니 얼추 알 수는 있으나 아직 책임질 수준은 아닌데 말이다. 참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난 이 회사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지금 회사는 스쳐가는 버스정류장 중 하나였다. 나의 목적지는 저곳이지만 여기에 잠깐 머물렀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3년 차를 맞이해 버린 것이다. 정류장에서 그만 집을 지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대리가 되었고 지금 대리 직급을 단지 1년이 넘어간다. 처음의 부담감은 아직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보았던 것보다 대리 직급의 고충은 조금 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은 저런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그냥 애매한 일들은 다 나에게 넘어온다는 것이었다. 사원급이 하기에는 혼자 찾기에 좀 버거워 보이는 일이 생기면 대리급에게 넘어간다는 걸 이제야 알아버렸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업무 매뉴얼이 갖춰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업무를 다 하나하나 찾아서 해야 되는데 사원급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리급들은 그래도 얼추 찾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애매한 일들을 다 넘기는 것이다. 실수는 적게 해야 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일을 하게 되니 결국은 머릿속이 답답함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 누구나 책임이 많아질수록 고충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조금 더 오래 하다 보면 이제 과장, 차장, 부장까지 달 수도 있는데 그들의 책임은 얼마나 클 것이며 중간에서 얼마나 난감해질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