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恨自家汲繩短 只恨他家苦井深
불한자가급승단 지한타가고정심
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은 것은 탓하지 않고, 남의 집 우물 깊은 것만 탓한다.-명심보감 성심편
남의 집 우물이 깊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레박 줄이 짧아서 물을 얻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홀로서기 심리학>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분노를 낼 때, 상황과 대상만 바뀔 뿐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관계를 망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고 했다. 즉 그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민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큰 딸은 아직도 사춘기가 진행 중이다. 주로 내가 분노했던 부분은 싸가지 없는 말투였다. 그럴 때마다 엄하게 혼을 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가 머리가 커져 가니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아이는 아주 신랄하게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올해 초, 거실 서가를 정리하고 있는데 98년도 교무수첩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수첩을 뒤적거리니 갑자기 섬광처럼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유달리 큰 아이의 말투와 눈빛에 민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발령을 받았다. 경기도 소재 도시였는데, 하필 그 지역에서 제일 악명높은 남중이었다. 그곳에서 한 3년, 나는 죽다 살아났다.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속칭 ‘일진’이라는 아이들에게 교권침해를 많이 받았다. 내가 만만 하단 이유로 수업시간에 대드는 것은 기본이고, 내 앞에서 난동을 부린 일도 종종 있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가슴에 피가 맺힐 정도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후 경력이 쌓이면서 그러한 고민은 자연스레 없어졌다. 오히려 아이들을 잘 다루는 교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상처는 제대로 치료가 안 된 상태로 반창고만 붙여져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큰딸의 말투는 사춘기 아이들의 전형적인 유형일 것이다. 오히려 내 자식한테 만큼은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엄하게 혼낸 것 같다. 그날 오후, 아이에게 나의 상처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초임 시절의 받은 상처로 인하여, 너의 말투에 너무 예민하게 굴었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아이도 조용히 나의 말을 듣고는 그런 상처가 있는지 몰랐다며 본인이 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아직 나의 그 시절 상처는 다 아물지는 못했지만 예전보다 많이 단단해졌다. 내 상처가 단단해질수록, 나의 두레박 줄도 조금씩 길어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