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눈을 떠 서랍장 위의 탁상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따로 알람을 맞추지 않았아도 그녀는 이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이제는 주말에 늦잠을 자고, 침대 위에 누워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걸 할 수 없었다. 엄마의 간병을 시작한 이후로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엄마에게 가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가봐야 했다. 어제 놓은 수액의 바늘을 빼야 하는데 아빠는 아직 서투르고 못 미더웠기 때문에 그녀는 직접 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마음을 다 잡고 이불속의 포근한 유혹을 힘겹게 뿌리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정신은 아직 이불속에 있는 듯했다. 그녀는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물을 한잔 따라 마시고 욕실로 향했다.
빠르게 세수만 하고, 로션을 바르고, 편한 옷으로 가볍게 입었다. 준비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서는 남편이 양팔을 앞으로 모으고 엎드린 채 미동도 없이 자고 있다. 어떻게 저런 불편한 자세로 잘 수 있을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에게서 술 냄새가 약하게 올라왔다. 어젯밤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남편이 그녀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만 고생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그를 불렀다.
“자기야.” 그가 순간 몸을 움찔하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으응? 음, 지금 몇 시야?”
“8시 조금 넘었어. 나 다녀올게.”
그는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낮고 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 자기 진짜 고생이다. 토요일인데 이른 아침부터.” 그는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힘내고. 잘 다녀와.”
“응.”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따 5시쯤 올 거지? 출발할 때 연락 줘. 더 자.” 그녀는 방문으로 나갔고,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현관문의 도어록을 밖에서 잠그는 소리가 나자 그는 다시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청량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해가 조금 더 높이 떠오르면 공기는 빠르게 더워질 것이다. 엄마의 집은 그녀의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다르자 그녀는 잠깐 멈춰 섰다. 그녀는 갑자기 오늘이 토요일이 맞는 건지 헷갈렸다. 머릿속으로 달력을 떠올리고 날짜를 세어보았다. 토요일이 맞았다.
어딘가에서 검정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그녀의 앞으로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
고양이는 멈춰 서더니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를 보며 가녀린 울음소리를 냈다.
“나중에 우리 집으로 놀러 와. 밥 줄게.”
고양이는 앞발을 앞으로 길게 뻗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며 특유의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나선 다시 가던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고양이는 어느새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녀는 고양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짧게 숨을 내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엄마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어제 놓았던 수액은 이미 끝나 있었다. 그녀는 알코올 솜을 주삿바늘이 꽂힌 부위에 대고 바늘을 부드럽게 빼내었다.
“엄마, 잘 잤어? 어젯밤에 비가 와서인지 아침 공기가 참 좋아. 근데 아마 낮에는 어제보다 더울 것 같아.” 그녀는 주삿바늘과 수액 주머니를 정리했다.
“엄마, 잠깐만. 등 좀 볼게요. 나 좀 도와줘요.” 그녀는 엄마의 어깨와 허리 밑으로 손을 넣고 들어 올려 엄마의 몸을 옆으로 눕게 하였다. 엄마는 가녀린 오른손을 들어 왼편 침대 난간을 잡았다. 엄마의 오른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옳지, 엄마. 고마워요.” 그녀는 엄마의 상의를 걷어 올리고 등에 붙어 있는 커다란 패드를 반쯤 뜯어내었다. 그리고 욕창이 생긴 부위에 분말 연고를 발랐다. 아무렇지 않으려 애쓰지만 엄마의 욕창을 볼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너무나 아펐다. 그녀는 다시 패드를 붙이고, 옷을 내렸다. “엄마 이제 다 됐어요.” 그녀는 천천히 엄마를 원래의 자세로 눕혔다.
“수정아, 아침 안 먹었지? 뭣 좀 먹을래? 사과 깎아줄까?” 아빠는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생각 없어요.” 그녀는 침대의 등받이를 조금 세워 엄마가 등을 기대고 앉아 있을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물에 적신 수건으로 엄마의 얼굴과 손을 닦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목 안 말라? 물 좀 줄까? 어제 백화점 가서 과일 퓌레를 사 왔는데 그거 드셔 볼래요?” 그녀는 오른쪽 귀를 엄마의 입 가까이에 갖다 대었다. 엄마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괜찮아? 알겠어. 이따 먹자 그럼.”
그녀는 엄마의 다리 위치를 다시 잡아 주었다. 그리고 선풍기를 가장 약하게 틀어 엄마를 향하게 놓았다.
“엄마, 나 오늘 이따가 저녁에 시댁에 가요. 지훈이 형이 곧 생일이래. 그래서 같이 모여서 저녁 먹기로 했어. 형님네 못 본 지 꽤 됐는데. 거의 반년 만에 보는 거 같아.”
아빠가 어느새 그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몇 시에 간다고?”
“여기서 5시쯤 출발할 거예요. 지훈이가 이따가 여기로 올 거야.”
“차 가지고 갈 거지? 아빠가 반찬이랑 과일 좀 줄 테니까 가지고 가. 처형들이 또 이것저것 반찬을 많이 해 갖고 왔어.”
“응, 좋아요. 이모들이 매주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이시네.”
그녀는 침대 옆의 소파에 앉았다. 엄마의 눈은 TV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도 가만히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뭐 했어, 집에서?” 시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가 남편에게 물었다. 그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요일의 거리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모두들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리도 주말에는 저렇게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었는데. 그녀는 거리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별거 있나.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세탁기도 돌리고. 이런저런 집안일 했지 뭐.” 남편은 라디오의 볼륨을 줄이며 말했다.
“또 혼자 청소했어? 내일 같이 하지. 나 내일 오전에는 시간 괜찮았는데. 혼자 하느라 힘들었겠다.”
“크지도 않은 집 청소하는 거 힘들게 뭐 있어. 힘든 거야 자기가 훨씬 힘들지, 아침 일찍부터. 졸리진 않아? 집안일은 내가 할 테니까 자긴 신경 안 써도 돼.”
그녀가 주말에도 엄마의 간병을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집 청소는 남편이 계속 혼자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 주 집 청소는 꼭 자기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반찬도 좀 했어. 자기가 좋아하는 미역국도 끓였지.” 남편은 교차로에서 신호를 대기하느라 잠시 차가 멈춘 틈을 타 컵 홀더에 꽂혀 있던 생수병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자기도 마실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님이 미역국을 드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고기도 많이 넣고 진짜 맛있게 끓여졌거든. 진작에 어머님 좋아하시는 거 많이 좀 만들어 드릴걸 그랬어. 갑자기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아지실 줄은.” 남편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녀는 말없이 바깥 풍경만을 바라보았다. 길가의 아이스크림 판매점 안에서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가 저기 아이스크림을 참 좋아했던 게 떠올랐다. 신호는 파란불로 바뀌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머리를 뒤로 기댔다.
“나 눈 좀 감고 있을게. 미안해.”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남편은 오른손을 뻗어 라디오를 껐다.
“많이 먹어라, 수정아.” 시어머님이 직접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시어머님이 주시는 음식의 양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대로 받았다. 엄마의 상황을 아시고 자신을 생각해서 챙겨주시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머님도, 그리고 아버님도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엄마의 상태를 직접 묻지 않았다. 아마 지훈이를 통해 따로 들으실 것이다. 두 분 다 겉으로 내색을 안 해 주시니 그것도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생일 케이크까지 먹고 나니 그녀는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쌓였던 피곤이 갑자기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어서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그녀는 본인도 모르게 크게 하품을 했다. 눈치를 채신 건지 시어머니가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다들 빨리 집에 가라고 얘기했다. 아버님도 피곤할 텐데 어서 가서 쉬라고 거드셨다. 남편은 일어나서 가방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고 방에서 시어머님과 뭔가를 얘기하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버님과는 인사를 나눴고, 어머님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며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형님 가족과 어머니는 1층에서 내렸고, 그녀와 남편은 지하 1층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차에 타서 핸드폰을 찾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 하얀 종이로 투박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뭐야?”
“그거 엄마가 자기한테 주래. 나도 뭔지는 몰라.” 남편이 차의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리고 자기한테 힘내라는 말을 전해 주라고 하셨어.”
하얀 포장지를 뜯어내니 빨간 상자가 나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열쇠 모양의 순금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일이 잘되기를 바라거나 행운을 빌 때 선물로 주는 그런 것이었다. 상자가 낡은 것을 보니 새로 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어머님이 예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을 준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머님도 참.” 그녀는 포장지와 상자를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남편은 그녀를 힐끔 본 뒤 말없이 차를 몰아 주차장의 램프를 올라갔다. 램프의 입구에 다다르자 건너편에 어머님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님의 손에는 아직 음식물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어, 엄마다.” 남편이 창문을 내렸다. “엄마, 저희 갈게요.”
어머니는 미소를 띈 얼굴로 손을 흔들면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수정아, 우리 힘내자.”
그녀는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그리고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차가 사라질 때까지 이쪽을 보고 계신 어머님을 보았다.
다음 날에도 그녀는 엄마 집에 왔다. 어제보다는 늦은 시간에 여유 있게 왔다. 엄마 집으로 오는 길에 그녀는 며칠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교회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예배를 마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그녀 엄마의 집 앞까지 와줬다. 간병 때문에 몇 달째 보지 못했던 언니를 보니 그녀는 반가웠다. 언니는 엄마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기를 온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와줘서 응원을 해주는 언니가 그녀는 너무나 고마웠다.
“엄마, 오늘 여기 오는 길에 미경 언니를 만났어. 미경 언니 기억하지? 언니가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대. 고맙지?” 그녀는 헝클어진 엄마의 담요를 다시 잘 펴서 덮어주며 말했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어제 어머니께서 나한테 금으로 된 열쇠를 선물로 주셨어. 무려 다섯 돈이나 되는 거야. 그리고 힘내라고 응원도 해 주셨어.” 그녀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 그녀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시어머니도, 미경 언니도, 그리고 아빠랑 이모들이랑 지훈이도. 모두 모두 힘내라고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어. 정말 고마워. 정말로.”
엄마의 눈동자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그녀도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엄마, 나는 지금 이렇게 엄마와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줄 몰라. 나 하나도 힘들지 않아. 이렇게 엄마 곁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정말로 소중해.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말하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녀는 우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엄마의 얼굴 옆으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해 왔던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는 천천히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밝은 햇살이 거실 창을 통해 들어와 침대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엄마의 왼손을 꼭 잡고 있었고, 햇살은 그녀의 손등 위에서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