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3년을 맞이하며 어떻게 해도 다시는 이십 대가 될 수 없는 만 서른 살이 되었다. 나의 생일은 1월 첫째 주에 있었기에 해가 바뀐 후 바로 삼십 대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나이는 진작에 서른이었지만, 나는 만으로는 아직 스물아홉 살이라며 애써 그 사실을 부정했었다.
그저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뿐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십 대였다고 해서 하루하루를 뭔가 더 특별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엔 서른이 되면 마치 나의 청춘이 다 끝나버리는 듯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서른이 되기 한 해 전인 2012년 내내 상실감과 비슷한 감정에 빠진 채 괜히 울적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연말이 되자 그러한 상황은 최고조에 다다랐고, 결국 해가 넘어가 서른이 되었을 때에는 실제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뿐이지 매일매일을 속으로 울면서 보냈다.
그 시작만 봐서는 어쩌면 2013년은 내 인생 최악의 시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허우적대고 있던 그 시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아니 오히려 2013년을 지금까지 나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 중의 하나로 만들어 준 특별한 순간들이 다가와 주었다. 그 순간들은 마치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한 바다를 표류하다 만나게 된 등대의 작지만 반짝이는 빛처럼 다가왔다.
2013년이 시작된 후 며칠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한 영화 채널에서 방영되는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는 몇 년 전 개봉했을 때 이미 봤던 영화였고, 이십 대였던 당시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막 삼십 대가 된 그 순간의 나에게는 그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영화를 본 뒤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그것을 거부할 순 없다는 사실이었다. 영화 속에서 평범하게 시간이 흐르는 데이지든, 아니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벤자민이든 그 사실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일 더하기 일은 이’처럼 부정할 수 없는 명료한 수학적 정의 같은 것이었다. 영화를 본 뒤 그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자 그때까지 엉망이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되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차차 무던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더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자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영과 달리기를 시작했고(꽤 열심히 했고, 덕분에 그해 가을 처음 해본 10㎞ 달리기에서 50분 초반대의 기록으로 완주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악기를 배워보자며 어릴 적 잠깐 배웠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2013년을 특별하고 의미 있는 순간으로 채워 나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2013년에 내게 다가왔던 가장 특별한 순간은 바로 그녀와 함께한 순간들이었다. 2월 말에 만나 12월이 되기 전에 헤어졌으니 그녀와 함께 한 순간은 10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2013년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내는 동안 그녀가 나에게 새긴 흔적들은 지금도 바래지 않은 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해 2월, 서른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자 나는 문득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직장 동료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을 알고 있다며 본인의 대학 선배였던 나와 동갑인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의 연락처를 받은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돌아오는 토요일로 약속을 잡았고, 그녀가 고른 광화문 인근의 한 작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며 난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짧게 자른 검은색 단발머리와 하얀 피부, 그리고 날렵한 콧선이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홍차를 주문하고(사실 우리가 만난 카페는 홍차 전문점으로, 커피는 팔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둘 다 서른 살에 관한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 중 이렇게 처음부터 호감을 느낀 적은 없었던 듯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며칠 뒤에 그녀에게 사귀자고 했고, 다행히 그녀도 수줍게 웃으며 나의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그녀가 대화할 때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며 왼쪽 귀를 내미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사실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적에 어떤 사고를 당해 고막을 다쳤는데, 그 이후로 청각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로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도 오른쪽 귀에는 마치 물속에서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건 아니어서 보청기를 사용하면 오른쪽 귀로도 일상생활에 불편 없이 들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보청기를 통해 듣는 소리가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워”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잘 듣지 못해 내가 불편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 말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여태까지 그녀의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는데 불편한 게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오히려 왼쪽 귀를 내게 내밀 때마다 보이는 발그스레한 왼쪽 볼과 가느다란 하얀 목이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고, 왼쪽 볼에는 작은 보조개가 옴폭하게 생겼다.
“난 어떤 면에서는 고집이 조금 있는 편이야.”
어느 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관해 얘기할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면에서?”
“응,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조금 유별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웬만해선 양보하지 않는 고집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그녀는 커피는 마시지 않고 홍차만을 마셨다(이때 알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를 고른 이유를). 좋아하는 음식별로 자신이 선호하는 식당이 있어서 새로운 식당을 경험해 보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지하철은 웬만해서는 타지 않았고, 자가용도 없었기에 이동을 할 때면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야만 했다. 옷이나 신발 등은 한 브랜드에서만 샀다. 다니던 미용실의 디자이너가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다른 지역으로 옮겼을 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그 디자이너를 찾아갔다. 쉽게 말해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기준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에 매우 인색한 편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윤종신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고, 웬만해서는 다른 가수의 노래는 거의 듣지 않았다. 그녀가 잘 들리지 않는 오른쪽 귀에도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듣고 있을 때면 그건 십중팔구 윤종신의 노래였다. 그녀는 어릴 적 ‘오래전 그날’을 들은 이후로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윤종신 노래의 어떤 매력이 십 대 초반 어린아이의 감수성에 어필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음, 글쎄. 뭐랄까, 그냥 가사가 참 좋아.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가사가 말이야. 가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데 그 풍경 속에는 여러 계절이 있고, 일상이 있어.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한 풍경이 멜로디를 따라 하나하나 펼쳐지는 거야. 난 그게 참 좋아.”
내가 왜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 가사에 집중해 들어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의 가사는 분명 확실한 서사가 있었다. 그러한 서사에서 연상되는 풍경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도 그의 노래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의 꾸준함도 좋아. 대단한 것 같지 않아? 매달 새로운 노래를 만든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일 텐데 말이야. 뭐 팬의 입장에서는 정말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윤종신은 2011년부터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매달 한 곡 이상의 노래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었다. 2013년에도 변함없이 진행하였고, 그해에는 자신의 예전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발표하였다. 매달 그의 노래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는 하나의 이어폰으로 각자의 귀에 한쪽씩 꽂고 노래를 들었다. 그녀는 왼쪽 귀에, 그리고 나는 오른쪽 귀에.
“난 꾸준한 게 좋아. 비록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것을 꾸준하게 한다면 그건 정말 굉장히 멋진 일이고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남산타워가 보이는 경리단길의 한 와인바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 4월에 발표된 「부디」를 함께 들으며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자신에게 꾸준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매달 발표되는 윤종신의 노래처럼 변치 말고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했다. 나는 변하지 않고 항상 함께 있을 것을 약속했다. 서늘하지만 분명 봄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4월 밤의 부드러운 바람이 우리를 스쳐갔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며시 안으며 그녀에게 키스했다.
하지만 꾸준함이라는 게, 변치 않고 항상 함께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을 꾸준하게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리고 그녀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리고 조금씩 사소한 갈등이 쌓이며 우리는 서로에게 점점 소홀히 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12월이 되기 전에 우리는 헤어지고 말았다. 월간 윤종신 12월호로 발표된, 그녀가 어릴 적 윤종신을 좋아하게 만든 노래였던 「오래전 그날」은 결국 함께 듣지 못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윤종신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듣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월간 윤종신’을 진행하고 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10년 동안 매달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달 새롭게 발표되는 윤종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생각나고, 2013년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음악을 들었던 그 풍경들이 떠오른다. ‘이별택시’를 들으면 3월의 혜화동 찻집이 생각나고, ‘너에게 간다’를 듣게 되면 5월 밤의 남산 소월길 벤치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별을 앞두고’를 듣게 되면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10월의 버스 맨 뒷자리가 생각난다.
내가 서른 살이 되었던 2013년은 어떻게 보면 지금의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나는 연말이 되면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다시 보며 시간의 흐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수영과 달리기는 그만둔 지 꽤 됐지만, 피아노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리고 2013년의 그녀는 내가 얼그레이를 좋아하게 만들었고,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좋아하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윤종신의 노래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그가 보여주는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는 가끔 그녀가 지금도 윤종신의 노래를 좋아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처럼 2013년의 그 순간과 풍경을 떠올릴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