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주간 단편

보름달이 뜨는 밤, 이스트엔드 (1)

by 주얼


그가 처음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건 중학생이 된 열네 살 때였다. 당시 같은 반이었던 한 아이가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짓궂은 장난을 치며 놀렸고, 그의 물건을 빼앗아 가서는 돌려주지 않곤 했다. 때때로 그를 때리기까지 했다. 그는 그 아이가 정말로 미웠지만 맞서기에는 너무나 유약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과 분노를 안으로 삼키며 눈물을 훔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또 괴롭힘을 당하고 방에서 혼자 눈물을 훌쩍이고 있던 어느 날 밤, 그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거기에는 기묘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그 분위기에 이끌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 바라본 밤하늘에는 달이 있었다. 환하게 빛나고 있는 커다랗고 둥그런 보름달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빛을 발하고 있는 보름달은 외로워 보이면서도 따스해 보였다. 부드러운 달빛은 그 어떤 때보다 세상을 아늑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가만히 달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눈이 어느새 달빛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그는 달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애를 사라지게 해 주세요. 제 주위에서, 영영.”

달빛이 소리 없이 그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며칠 뒤 그를 괴롭히던 아이는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이건 분명 달에게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를 괴롭히던 아이는 전학을 가기 전날 그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며 자신이 쓰던 검은색 모나미 제도 샤프를 선물로 주었다. 그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다리 위에서 그것을 흐르는 하천을 향해 던져버렸다. 점점 어두워져 가던 동쪽 하늘 저 멀리에 오른쪽이 이지러진 손톱만 한 달이 어슴푸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보름달이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매번 보름달이 뜰 때마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기를, 짝사랑하는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항상 술에 취해 계신 아버지가 제발 술을 그만 마시기를, 그리고 그가 어릴 적 집을 나간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기를.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 이루어진 소원은 없었다. 시험 점수는 언제나 공부한 것에 비해 시원치 않게 나왔고, 그가 좋아하던 그녀는 항상 다른 남자애를 좋아했다. 술을 마셔야지만 행복하다던 아버지는 결국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고, 끝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기적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점점 달의 변화에도 무뎌져 갔다. 그리고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달을 보며 소원을 빌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희망을 품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그에게 쉽지는 않았다. 세상의 흐름은 너무나 빨랐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건 버겁기만 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무의미하게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그러한 날들이 지속되던 어느 날 그는 자신 안의 어떤 중요한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뭔가 단단한 알맹이 같은 것, 자신을 정의해 줄 수 있는 본질적인 것, 어쩌면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 그 알 수 없는 무엇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모습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어버린 껍데기 안에는 점점 허무와 고독, 슬픔만이 쌓여갈 뿐이었다. 그게 무엇이든 그는 그것을 꼭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평소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밤, 하천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그는 문득 어떠한 기운을 느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분위기가 어딘가 생소한 듯 하면서도, 분명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다리 아래로 흐르고 있는 물을 바라보았다. 물비늘이 반짝거리는 검은 물의 표면 위로 둥그스름하고 환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반사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구름 한 점 없는 까만 밤하늘에는 그가 여태껏 본 적 없었던 커다랗고 밝은 보름달이 떠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달이었다. 하천변의 키가 낮은 수풀 위로, 골목길에 이어진 낡은 담벼락 위로, 그 골목길의 끝에 있는 붉은 벽돌 교회의 첨탑 위로, 그리고 다리 위에 홀로 서있는 그의 머리 위로 밝은 달빛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이 달의 제국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달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달은 일정한 주기로 차오름과 기울어짐을 변함없이 반복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내면의 어떤 것을 잃어버린 채 예전과는 너무도 크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달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이 부드러운 달빛으로 가득 찼다. 그는 다리의 난간을 잡고 달을 올려다보며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찾고 싶어. 사라져버린 나 자신을 찾고 싶어.”

예전과 같은 그런 기적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자신을 찾고 싶다는 소망을 아직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부질 없는 행동일 수도 있었지만 입 밖으로 말을 하고 나자 희미하게나마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달빛이 그의 몸을 포근하게 안아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난간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고요한 어둠으로 가득 찬 달의 바다가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집 앞에 도착하자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달사나이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전에 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거기에 있는 사람이 달사나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달사나이는 그가 온 것을 알고는 천천히 계단에서 일어났다. 회색빛 수트를 단정하게 입고 있는 달사나이는 얼핏 보면 평범한 회사원 같아 보였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손을 깍지 낀 채 기지개를 켠 달사나이는 그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달사나이의 목소리에는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울림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달사나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달사나이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는 손을 내밀어 달사나이와 악수를 했다. 달사나이의 손에선 묘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달사나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나타나 놀라셨겠지만 제가 이렇게 당신을 찾아온 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란, 혹시 나를 찾고 싶다는 걸 말하는 건가요?” 그는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달사나이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당신 자신, 당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달사나이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신뢰감이 느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달사나이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지금 당신의 영혼, 그냥 쉽게 이제부터 그 친구라 부르겠습니다. 그 친구는 원래 당신과 항상 함께였죠. 언제나 당신과 발을 맞추며 옆에서 나란히 걸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당신은 그 친구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혼자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어요.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말이죠. 그 친구는 당신을 따라가려 했지만 당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더 빠르게 앞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결국 홀로 남겨지게 되었어요. 지금 그 친구는 혼자 외롭게 당신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그 친구를 더 이상 혼자 두면 안돼요. 너무 오래 혼자 두었어요. 만약 조금만 더 지체하면 그 친구는 이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영원히 떠나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키고 달사나이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되죠? 그 친구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 친구는 지금 달이 뜨는 동쪽의 끝에 있습니다. 동쪽의 끝에 가게 되면 당신은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보름달이 뜨는 밤에 그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꼭 보름달이 뜨는 밤입니다.”

동쪽의 끝. 과연 동쪽의 끝이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달사나이가 말했다.

"걱정 마세요. 동쪽의 끝이 어딘지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치 그곳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처럼요."

그러더니 달사나이는 쟈켓 안쪽으로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검은색 모나미 제도 샤프와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한쪽 모서리를 동그란 철제 링으로 묶은 메모지였다.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절차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간단해요. 동쪽의 끝에 가면 당신의 이름을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때 이 메모지에 이 샤프를 사용해 이름을 적어서 건네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러면 당신은 다시 그 친구를 만나고 함께 돌아올 수 있어요.”

그는 달사나이로부터 메모지와 샤프를 건네받았다. 샤프에서는 오래된 기억의 감촉이 느껴졌다.

“꼭 기억하세요. 보름달, 동쪽의 끝, 메모지, 당신의 이름. 당신은 분명 그 친구, 당신의 영혼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달사나이는 말을 마친 후 다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악수를 하며 달사나이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달사나이는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나를 잊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달사나이는 몸을 돌려 천천히 골목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빛에 반짝이는 검정 가죽구두에서 또각 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소리는 달사나이와 함께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방의 창문에 커튼이 젖혀져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고 일어나 손을 뻗어 커튼을 쳤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흩어져버린 의식을 다시 모으는 데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잠시 후 그는 달사나이를 생각했다. 달사나이를 만난 기억, 달사나이와 얘기를 나눈 기억, 그 모든 것들이 몽롱했다. 어젯밤엔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면 꿈을 꾼 것이었을까. 그는 혼란스러웠다. 머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던 그는 무심코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옷가지에 눈길이 갔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거기에는 작은 메모지와 검은색 샤프가 놓여 있었다. 그는 봐서는 안될 것을 본 것 마냥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동안 가만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메모지를 들어 조심스럽게 넘겨본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 동쪽 끝, 메모지, 나의 이름’


그가 동해안 어느 해변의 작은 마을에 이스트엔드라는 이름의 사진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동쪽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고민하던 중 그는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스트엔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진관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바로 이곳이 달 사나이가 말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달 사나이의 말처럼 그곳은 그에게 스스로 다가온 듯 느껴졌다. 이스트엔드. 이곳에 가면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 상황이 되니 도대체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이라는 게 어떠한 것인지, 그런 게 과연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그는 이 모든 상황이 과연 현실인 건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이곳을 찾아가는 것에 주저함이 들었다. 그는 인터넷 지도에서 하나의 작은 점으로 찍힌 이스트엔드 사진관의 위치를 보았다. 달이 떠오르는, 바다와 만나는 세상의 동쪽 끝에 있는 사진관. 가만히 지도 위의 점을 응시하던 그는 지금 자신 앞의 상황을 미리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 부딪혀보기로, 이곳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아무것도 없다 해도, 이 모든 게 그의 꿈과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는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외투의 안주머니에 달사나이가 준 메모지와 샤프를 넣은 채 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에 맞춰 이스트엔드 사진관이 있는 해변가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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