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다. 마침내.
2010년 2월 1일 첫 직장에 출근을 시작해 지금까지 총 14년 동안 끊임없이 일했다. 짧지 않은 나의 삶에서 가장 꾸준히 오랫동안 한 행위가 바로 직장생활이다. 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던 시간보다 그렇지 않았던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자신에게 작은 칭찬 정도는 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잘 버텨왔다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고.
물론 일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고생이 끝나고 안락한 삶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더 힘들고 어려운 삶이 시작될 수도 있다. 아니, 가정형으로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지. 시작될 것이다, 분명. 조직에 속해있다는 안정감,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얻은 전문성과 자부심, 그리고 많지는 않았지만 매월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급여.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모두 다 안녕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괜히 짠하고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난 퇴사를 선택했다. 선택의 이유는 확실하다. 내가 원하는 걸,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그만두었을 때 예상되는 걱정과 불안보다 설렘과 즐거움이 더 클 걸 확신하기에. 물론 인고의 시간이 분명 있겠지만, 그리고 그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도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먼 옛날 공자님께서도 그러지 않으셨던가. 즐기는 자가 최고라고.
무턱대고 즐기고 싶다고 즐길 수는 없다. 즐기기 위해서도 분명 전략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러한 전략과 노력이, 적어도 내게 있어, 대단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반복되는 불안에 잠식되어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끔만 해준다면, 반짝이던 초심이 흐릿해지지 않게끔만 해준다면 족하다. 아마도, 보통 루틴이라고 부르는, 일상에서 반복하는 작은 습관들이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뒤돌아보면 내가 지난 날 수도 없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14년 동안 견딜 수 있었던 건 직장생활 외적으로 나만의 루틴을 유지하려는 노력 때문 아니었나 싶다. 출근하기 전 최소 30분 이상은 카페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고, 비용을 들여 운동과 취미 생활을 꾸준히 했으며, 정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녔다. 반복되어 쌓인 시간은 고된 직장생활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버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제는 이전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부족해졌기에 그에 맞는 새로운 습관이 필요하다. 지금 생각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출근은 안 하지만 늦지 않게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그동안 바쁘다며 걸렀던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하기. 짧은 분량이라도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기. 시간을 내 너무 멀지 않은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숨이 찰 정도의 운동하기. 이 외에도 다양할 것이다. 대부분은 이전처럼 뭔가 거창하거나 큰 비용이 필요치 않은 소박한 습관이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내 삶의 방향을 잡아 주고 길을 잃지 않게 해 주기에 내겐 무엇보다 소중하다.
작년에 발표한 소설 「최선의 선택」에는 원하는 삶을 위해 퇴사를 하는 기혁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고,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다는 거, 그게 멋진 것 같지 않냐고.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단 선택의 순간에 느끼는 설렘을 즐기고 어떠한 결과도 담담하게 맞이하는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다. 소설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그의 그런 태도는 분명 단단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습관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삶도 그러한 습관들로 채워나가고 싶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걱정은 하지 않으려 한다. 천천히 그리고 부지런히 나의 삶을 소박하고도 소중한 습관들로 다채롭게 채워나간다면 분명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_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