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밥을 자주 먹고 있다. 직장인이나 자취를 하는 학생들에게 집밥은 자극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바깥 음식과 반대되는 순하고 건강한 식사를 의미하곤 한다. 때론 어머니의 사랑 또는 행복한 가정과 같은 낭만적인 의미로 여겨질 때도 있고. 그만큼 집밥은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인 면으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 그랬다. 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간 음식에 질렸을 때, 또는 사회생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심신이 피로할 때 나도 모르게 “아, 집밥 먹고 싶다”라고 자주 탄식했다. 그래서 가끔 먹는 실제 ‘집밥’이, 아니면 집밥 같은 식사를 파는 식당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 며칠 집에서 계속 밥을 먹고 있으니 집밥은 그냥 말 그대로 집에서 먹는 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집밥은 이제 질려서 식당에서 파는 과도하게 맵고 짜고 단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집밥을 원했던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리 소중하고 고마운 것도 흔해지고 쉽게 접하게 되면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걸 또다시 느끼게 된다.
집에서 밥을 해 먹으며 가장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가 두부와 계란이다. 특히 두부는 거의 빠지지 않았는데 때로는 생으로(물론 김치와 함께), 때로는 부침으로, 그리고 때로는 조림으로 그 형태를 다양하게 변주해 가며 식탁 위에서 듬직하게 자리를 지켰다. 꼭 주 반찬이었던 것도 아니다. 종종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에 과하지 않게 살포시 들어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맛과 식감을 풍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두부라는 식재료가 그런 것 같다.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메인 원톱으로 나서도 부족함 없이 훌륭하고, 다른 식재료 또는 양념과 어울리면 화려하진 않지만 든든하고 단단하게 받쳐주는 존재. 마치 주연으로도, 그리고 조연으로도 확실하고도 안정적인 존재감과 능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배우 같다고나 할까. 가히 식탁 위의 안성기와 윤여정이자 로버트 드니로와 메릴 스트립이라 부를 만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두부를 칭송하는 건 사실 두부를 많이, 아니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굉장히라는 부사가 중요한데, 사전적으로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게’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난 두부를 보통 이상으로 대단하게 좋아한다. 내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을 때 난 삼겹살과 평양냉면이라고 답하곤 하지만, 사실 그건 가끔 먹는 ‘특별한 음식’으로서 좋아하는 것이다.(물론 삼겹살은 가끔 보다는 자주, 아니 솔직히 말해야지, 아주 자주 먹기는 한다.) 두부는 뭐랄까 내게 있어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한, 그래서 특별함을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오래된 친구 같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가 그러하듯 두부는 내게 뜻하지 않은 따듯한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언젠가 고된 야근을 끝내고 10시가 넘어 퇴근한 날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데 불쑥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이렇게 살고 있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씁쓸하고 우울했다. 헛헛해진 기분을 달래야 했고 무언가 먹고 싶었다. 아마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배달 음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마트에서 두부 한 모를 샀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두부조림이 먹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쳤다. 그리고 두부를 잘라 밑간을 하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렸다. 두부가 구워지는 사이 잘게 썬 파를 듬뿍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고, 노릇노릇 구워진 두부에 부어 뭉근한 불로 조렸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조리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무거운 피로감도, 울적한 기분도 두부조림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잊었다. 마침내 완성된 두부조림을 접시에 덜었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홀로 식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 위에 양념이 알맞게 밴 두부조림 한 조각을 얹어 입안에 넣었다. 그 순간, 난 분명 느꼈다. 두부가 날 위로한다는 걸. 포근하고 부드러운 식감과 짭조름한 양념을 머금어 밥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박한 풍미로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너의 삶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그러니 근심하지 말고 맛있게 먹고 힘내라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그때 느낀 두부의 위로는 분명 흔치 않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두부는 다시 그저 편하고 익숙하게 즐길 수 있는, 그래서 어쩌면 소중함을 잊은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살아가다 지치고 외롭고 흔들리는 순간을 맞이한다면, 난 그때처럼 두부를 찾을지 모른다. 그러면 두부는 언제나 그랬듯이 가만히 내게 다가와 다양한 형태로 작지만 다정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
비록 잠시 잊을 때도 있지만 늘 곁에 있기에 진정 필요한 순간에 함께 하는 존재. 소중한 건 그렇다.
_2024.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