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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Apr 19. 2024

12_글쓰기와 엉덩이



회사에 다닐 때, 필요한 자료는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은 멀리 딴 곳에 가 있고 집중력은 바닥일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땐 작업 능률이 최악이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작업의 진척이 매우 더디게 된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신을 차리고 집중력을 높일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했다. 첫째,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나 자신에게 욕하기―자학을 통한 정신 차리기. 둘째,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당류 섭취하기―혈당 급상승을 통한 정신 차리기. 셋째, 화장실이나 옥상에 가서 잠시 바람 쐬기―멍때리기를 통한 정신 차리기. 어느 하나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꼽기는 어렵다. 대부분 순서에 상관없이 세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정신을 차리곤 했으니 말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마음을 편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피아노 연주 영상을 보는 것인데,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방랑자 환상곡(Wanderer Fantasy in C major D. 760, Schubert) 실황 연주 영상이다. 1976년도에 촬영된 이 영상은 아무래도 화질이나 카메라 워킹 등이 지금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옛날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건 이 촌스러운 영상에서 연주에 몰입한 피아니스트의 열정이 오롯이 나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특히 4악장을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신들린 듯한 손가락의 움직임, 온 힘을 다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몸의 반동, 그리고 무아지경에 도달해있는 그의 표정까지. 영상을 보고 나면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다. 정신 차리고 이제 나도 집중해야지.


어떤 행위에 집중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집중력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단 꾸준한 연습과 반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건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지속시킨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거쳐 몸과 마음이 단련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의 아름답고 뛰어난 연주는 선천적 재능도 분명 큰 역할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극한의 연습을 통해 체득되는 고도의 기교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러한 단련을 거쳐 확보된 집중력을 기반으로 표현되는 예술적 감정에 우리는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난데없이 이렇게 집중력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요즘 내가 소설을 쓰는 데 전혀 집중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에 신작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으니(이건 미룰 수도 없다!) 지금쯤은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신나게(라고 쓰고 ‘괴롭게’라고 읽는다.) 쓰고 있어야 하는데 도통 그러질 못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멍하니 진공상태가 된다. 겨우 정신을 차려 문장을 깨작거려 보지만 다시 읽어보면 처참할 정도로 형편없어서 모조리 지우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들을 아무리 사용해 보아도 효과는 미미하다. 정말 미쳐버릴 노릇이다.


도대체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겠지만, 아무래도 긴 시간 집중해서 글 쓰는 것에 단련이 덜 된 게 주요한 원인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 다니며 짬짬이 글을 쓸 땐 시간이 워낙에 짧아 집중력이고 뭐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갑자기 엄청나게 늘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글을 쓴 경험이 부족하니 자꾸만 잡생각에 빠지고 엉덩이는 들썩거리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쓴 글이 마음에 들 리 없는 건 자명하다.


예전에 석사 논문을 쓸 때도 자주 들었던 말인데, 글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있다. 진득하게 책상 앞에 붙어있는 시간만큼 글도 써진다는 의미이다. 시간과 글이 완전 정비례는 아니겠지만, 엉덩이가 가벼울수록 글의 분량과 깊이는 가벼워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가에겐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뛰어난 문장을 쓰는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능력이며, 그 능력은 분명 연습과 반복을 통해 단련시켜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은 힘들기도 하고 몸이 배배 꼬일 만큼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리고 작가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이겨내야만 하는 고통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집중력이 떨어져 앞서 말했던 피아노 연주 영상을 다시 보았다. 이렇게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까지 피아니스트가 겪었을 연습의 시간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끝내 통과해 내었기에 도달한 성취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확인했다. 나도 언젠가 내가 이룰 성취를 상상해 본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들썩들썩하는 엉덩이를 열심히 달래가며 의자에 붙어있다. 쿠션이 그다지 편하지도 않은 의자에 앉아 있는 엉덩이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엉덩이도 분명 익숙해질 거라 믿어본다. 그때쯤 내가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룬다면 엉덩이를 위해 좋은 의자를 선물해줘야겠다.



_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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