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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May 10. 2024

15_독립출판 장돌뱅이



장돌뱅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표준국어사전에는 ‘장돌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장돌림은 ‘여러 장으로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장수’를 의미한다. 그 유명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이러한 장돌뱅이가 주인공인 소설이기도 하다. 고정된 상점 없이 장이 서는 곳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의 삶은 어찌 보면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불안하고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그 어디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독립출판을 시작한 후 독립출판 북페어라는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립출판 작가나 출판사들이 한 장소에 모여 독자들에게 직접 책을 파는 행사이고 생각보다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규모로 개최된다. 서점에 입고하는 것만으로는 책의 홍보와 판매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북페어는 나같이 인지도 낮은 독립출판 작가에겐 분명 유의미하고 도움이 되는 행사이다. 그래서 2022년 두 번째 작품집을 발표한 이후부터 북페어 개최 공지만 보면 부지런히 신청해서 이 행사 저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위 독립출판 장돌뱅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책과 테이블보, 진열대 등 관련 물품을 바리바리 챙겨서 전국 각지의 북페어를 찾아다니는 모습은 「메밀꽃 필 무렵」 속 주인공 허생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북페어는 대체로 수도권에서 많이 개최되지만 지방 곳곳에서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지금까지 군산, 부산, 심지어 제주까지 장거리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제주도는 비행기로!) 이렇게 먼 지방을 갈 땐 마치 여행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해 나름 설레고 좋다. 물론 판매실적이 좋지 않아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시 서울로 돌아올 때의 기분은 썩 좋지 않다. 교통비와 숙식비,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하여 손익을 따져보고 있노라면 쓰린 속을 달랠 길이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부지런히 북페어에 신청하고 있다. 올해부터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기에 행사 장소나 성격, 규모는 크게 고려하지 않고 내 책을 전시하고 판매할 기회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신청부터 하고 있다. 얼마 전 다녀온 부산 행사는 판매량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별다른 고민 없이 참여를 결정하고 다녀왔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장돌뱅이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분명 사업적 측면에선 전략적이지 못하다. 어쨌든 일정 수준 이상 책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적자가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건 독립출판을 취미로 하는 게 아닌 이상 분명 어리석은 짓이다. 이러한 사실을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앞뒤 안 가리고 계속해서 북페어를 찾는 걸 보면 어쩌면 난 이미 중독된 건지도 모르겠다. 북페어가 보여주는 신기루 같은 환상을 좇아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맹목적으로 찾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직 어리석은 난 부스를 홀로 지키며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그리고 가끔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자괴감이 느껴져도 내 책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조심스러운 손짓을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면 모든 이성적 기준과 판단이 무너지고 만다. 내 책을 구매한 독자에게 사인해 줄 때면 손익이 어쩌고저쩌고하는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계속 어리석어도 좋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이런 거 보면 확실히 중독이 맞는 것 같다. 독자의 관심과 애정을 향한 중독. 희소하기에 더욱더 갈구하게 되는 중독. 이렇게 써놓고 보니 조금 애달프기도 하다.


장돌뱅이의 꿈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돈을 벌어서 번듯한 자신의 상점을 갖는 것 아닐까. 분명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하게 장사를 하지 않고 고정된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하는 장사가 최종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출판 장돌뱅이인 나는 어떠한 꿈을 갖고 있는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많은 독자가 나를 찾았으면, 더불어 책도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해볼 뿐이다. 그래서 북페어에서 돌아오는 내 두 손이 가벼울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애달프고도 순진한 독립출판 장돌뱅이의 삶이다.



_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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