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업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이루고자 하는 중요한 목표가 설정되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바쁘게 움직이는 일. 회사에 다닐 때 나에게 주어진 업무의 주요한 목표는 제안서 작성이나 중간보고, 최종보고 준비 등이었다. 다른 업무에선 상품 제작 및 출시, 계약 성사, 행사 진행 및 완료 등이 그러한 목표에 해당할 것이다. 나아가야 할 방향과 도달해야 할 지점을 알려주는 것. 업무의 목표는 그러한 역할을 한다.
작가가 하는 업무(이 표현이 적정한지는 잘 모르겠다.)의 목표는 무엇일까? 글 쓰는 것?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므로 목표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글쓰기라는 수단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목표는 작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제일 우선되어야 하는 건 아마도 작품을 발표하는 것 아닐까 싶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깊게 사유하고 세심하게 다듬어 완성한 한 편의 글 또는 한 권의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작가가 하는 업무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부여한 목표 중 하나는 올해 두 종의 책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상반기에 단편소설집, 그리고 하반기에 경장편소설. 주위에서 책을 두 권이나 내는 게 무리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글쓰기를 직업으로 선택한 첫해부터 여유를 부리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굳게 마음먹고 자신을 조금은 가혹하게 채찍질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루기 어려운 목표여야 달성하기 위해 더 노력할 테니까. 글을 더 부지런히 쓸 테니까. 그래야 외부에서 볼 때도 얘가 전업작가를 한다더니 그래도 생각 없이 놀고 있지는 않았구나, 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꾸역꾸역 다가간 결과, 저번 달 말―공식적으로는 6월 25일―에 나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상반기 목표를 달성했다. 중간에 지치고, 느려지고, 그래서 출간을 연기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목표라는 놈이 정신이 번쩍 들도록 나의 귀싸대기를 후리고 멱살을 잡아 여기까지 끌고 와 줬다. 내가 정한 목표이긴 하지만 나를 정신 차리게 하고 움직이게 해 줘서 대견하고도 고마운 마음이다.
“목표를 달성한 지금의 기분은 어떤가요?”라는―별로 궁금하지 않을지도 모를―질문을 스스로 해 본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글쎄요, 생각보다 담담하고 왜인지 모르게 헛헛하기도 하네요.” 정도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의아하기도 하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물론 해냈다는 뿌듯한 기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해야만 할 일을 어떻게든 끝냈다는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서 일할 때도 최종보고를 마치고 나면 성취감보다는 안도감과 함께 허탈함, 허전함이 더 컸다. 그래서였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렇게 술을 진탕 마셨었다.
아무래도 지금 나에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건 이미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부정적인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좋아하는 걸 일로하고 있으니 덕업일치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스스로도―아직까지는―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다만, 전에는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들어 발표하는 일이 마치 취미로 쿠키를 구워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일과 같았다. 즐거움과 기대감, 설렘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에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절실함이 추가되었다. 목표에 어떻게든 도달해 다음 단계에 진입하고, 그렇게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어쩔 수 없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목표에 너무 집착하고 매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매번 마음먹은 대로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분명 숨이 차 잠깐 멈춰 서는 순간도 있을 테고, 미끄러져 넘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불안하고 초조할 것이다. 뒤처질까 봐. 다시 일어서지 못할까 봐. 하지만 냉정하게 내 멱살을 쥐고 다그치고 끌고 가던 목표도 그때만큼은 가만히 내 옆에 앉아 날 기다려주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는 함께 가야 하니까.
며칠 전 하반기가 시작되었고, 이제부터 난 하반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또 힘을 내서 작가의 업무를 수행하고자 한다. 나의 업무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목표에 제대로 도달할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선 당연히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어떻게든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 그뿐이다.
_2024.07.04